brunch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

설명서가 있는 이유

by 숲속의조르바



단골 미용실 원장님이 뜬금없이 나에게 연애 상담을 한 적 있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아침이든 저녁이든 먼저 연락을 잘해줬으면 좋겠는데 당최 먼저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자꾸 말하자니 자존심 상하고 안 하자니 마냥 기다리는것이 속상하다는 것이다.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라는데 고쳐질까요?’라고 묻는다.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



사람들은 고개까지 저어가며 종종 저렇게 이야기한다. 고쳐보려는 시도가 제법 있었고 그 결괏값이 부정적이어서 저런 결론에 도달한듯하다.


개인적 습관과 가치관이 수십 년 이상 몸에 밴 사람을 어떻게 감히 쉽게 고쳐 쓰려고 할까? 발상 자체가 참 오만한 것 아닌가 싶다.


신혼부부는 치약 짜는 것 하나까지 싸운다고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수십 년을 편하게 살던 존재들이 일상에 교집합이 생겨버리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기준에서 사실 양말은 뒤집어 훌렁 벗는 것이 편하고 치약은 몸통을 꾹 눌러 짜는 것이 편하다. 십여 년 정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잔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렇다.



오죽 답답하면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물었을까 싶어 주제넘게 내 의견을 말했었다.


“고쳐 쓰는 것이 아니고 가르쳐 쓰는 것 아닐까요? 쓴다기보다는 가르쳐서 나의 불편을 줄이는 거죠.

'나에겐 이렇게 해줘, 저렇게는 하지 말아 줘'라며 가르치는 것이 우선일 것 같아요. 마음이 있다면 배울 것이고 배우지 않는다면 마음이 없는 거겠죠."


"또 하나의 다른 해결 방법은 포기예요. 그냥 저런 인간이구나 하면 된대요. 포기하는 순간 싸우거나 서운하지도 않을 수 있다네요. 그리고 그 포기나 인정은 더 좋아하는 사람 쪽에서 감수하는 것이고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약자라고 합니다."


역시 훈수는 쉽고, 남의 일에는 박사가 된다.




비슷한 맥락으로 후배의 꽃집에서 있던 일이 생각난다.


바쁜 시기에 잡부 역할로 호출을 받고 갔는데 “어떤 게 잘 안 죽어요? 관리가 쉬운 식물이 어떤 거예요? 물은 얼마나 자주 줘야 해요?”라는 비슷한 질문을 받곤 했다. 당연히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할 만큼의 지식은 없었다.


“안 죽는 걸 키우려면 돌을 키워야겠죠? 음.. 뭐든 잘 관리하면 아마 천천히 죽겠죠?”


“아마 선인장이 제일 좋겠죠? 물 주는 걸 깜빡했다고 깨달았을 때 주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대놓고 엉터리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식물에 대해서, [너]라는 나무에 대해서 너무 과하게 물을 주지 않도록, 너무 박하지 않게 햇빛을 누릴 수 있도록 제각각의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서가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설명서의 제작, 배포는 스스로의 몫인데 다들 상대가 알아서 대해주기만을 바라고 있고, 몰라준다고 삐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