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가을이 가고, 동네 개들은...
1. 자두의 늦가을
지난 10월 28일 아침
아침에 일어나니 온통 풀밭에 하얗게 서리가 내렸습니다. 올 첫서리입니다. 벌써 서리가 내리다니... 이제 정말 가을은 끝인가 봅니다. 날씨가 급격히 쌀쌀해졌습니다. 그런데 자두는 그날밤 처음으로 실내에 안 들어오고(현관에도 안 들어오고) 그냥 밖에서 잠을 잤습니다. 청개구리인가 봅니다. 한동안은 심야에만 잠을 자러 들어오고 또 눈을 뜨면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던 애가 무슨 연윤지... 아직은 한파가 올 상황은 아니라 그냥 문을 열어 놓고 자는데 그날엔 아침까지 그냥 밖에서 잠을 잤습니다(사진의 집옆 쿠션에서) 평소엔 현관에서 자거나(사진 중) 그러다 열어 놓은 문으로 들어와 침대 곁 발치에서 잠을 자더니(사진 우) 이 늦가을에 어쩐 일인지 저기서 밖의 쿠션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문은 열어 놓으라 합니다. 기가 막힙니다.
안에 들어올 것도 아니면서 문을 열어 놓으라 하고 정작 잠은 밖에서 자는 심보는 무슨 심보일까요?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자두이고 아직 영하의 심한 추위가 아니어서 괜찮겠지만요. 의사는 노령견이니 겨울엔 옷을 입히라 해서 재작년 겨울부터 옷을 입혔는데... 어쨌든 지가 괜찮으니까 밖에서 잤겠죠. 내가 못 들어오게 한 것도 아니고요. 그러면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낑낑대며... 나를 불러 냅니다. 내가 늦게 나오면 나오라고 더 끙끙대기 시작합니다. 내가 늦잠을 자는 꼴은 못 보겠다는 심보 같습니다. 아휴... 저것이 내 게으름까지 방해를 합니다. 얼마 전부터 아침 산책은 안 나가던 애 무슨 변덕인지 산책을 나가자고도 합니다. 아침엔 숨을 쉬는 내 코에서 입에서 하얀 입김이 막 나갑니다. 어이쿠... 정말 가을이 끝났구나... 겨울이 오는구나... 겨울이 온다니... 벌써... 추수를 끝낸 논과 가을 작물을 수확한 밭에는 아침이면 하얗게 서리가 덮여 있기도 합니다. 부지런하신 동네 어르신이 아침 일찍 콩밭에서 마지막 콩대를 베시다가 인사를 하십니다. 나는 추워서 몸을 부르르 떨면서 인사를 합니다.
2. 산책 가면 만나던 빽구 모자(母子)
지난겨울 동네 어떤 개가 새끼를 낳아 엉뚱한 자두가 아빠로 오해를 받은 일이 있었고 그 집 앞엔 엄마(검정개)와 아들개(백구)가 묶여 있었는데 평소 자두와 내가 지나가기만 하면 하도 짖어대서 그쪽으로 가지 않고
있다가 여름 무렵부터 간식을 열심히 주었더니 둘은 나를 기다리며 멀리서 자두와 내가 보이면 아들 빽구가 왕왕 짖고 난리가 납니다. 그럼 에미도 같이 짖고 그럽니다. 간식을 기다리는 겁니다. 요놈들이...
그러다 며칠 전 가 보니 아들 빽구는 반가움에 왕왕 짖고 빨리 간식 달라고 아우성인데 그 어미 흑구가 가만히 있는 겁니다. 저 애가 왜 저러지? 하며 가까이 가는데 예전 같으면 기를 쓰고 짖어대며 경계심을 드러내던 에미 흑구가 웬일인지 집안으로 숨는 겁니다. 아들 빽구는 천방지축 방방 뛰며 빨리 간식 달라고 난리가 났고요. 해서 어미 쪽으로 간식을 던져 주어도 받아먹지도 못하고 집안에 숨어 머리만 내밀고 있습니다. 예전 에미는 짖다가도 간식을 던져주면 날름날름 잘 받아먹었는데 말입니다. 이상합니다. 다음날에도 가니 날 보더니 집으로 쏙 들어갑니다. 빽구에게 간식을 주고 이 에미에게도 간식을 주니 나왔는데 앗... 에미가 아닌 겁니다.
수놈이었어요... 이 애는... 검정개로 외모는 비슷해 보였는데... 에미가 아니라 낯선 수놈이 그 자리에 있는
겁니다. 이 녀석은 빽구 에미보다 덩치는 조금 더 커 보이는데 겁은 많아서 나를 경계하며 먹을 걸 던져줘도 받아먹지도 못하고 눈치만 봅니다. 에미를 없애고 어디서 비슷한 검정개인 이 수놈으로 바꿨는지... 신기합니다. 어디서 암수만 바꾼 똑같은 애를 데려다 놨는지... 그렇게 의아해하던 차, 이 개 보호자를 만났습니다.
어찌 된 일이냐고... 왜 개가 바뀌었냐 하니... 이 암놈을 길가에 묶어 놓고 있다 보니 수놈이 와서 자꾸 새끼를 배게 해서 이 수놈과 바꿔 놓았다는 겁니다. 세상에... 그래서 이 모자지간을 갈라놓은 거였어요. 이 새로 수놈은 겁이 많아서 내가 간식을 주어도 먹지 못하고 피하기만 합니다. 안쓰러운 웃음이 납니다. 암캐를 길가에 묶어 놓은 게 잘못이지 개가 새끼를 밴 게 무슨 잘못이겠어요...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시던지...
올여름... 저녁이면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렇게 짖어대는 건 뭔가의 신호일 텐데... 결국 어느 날 그 소리를 찾아갔더니 우리 집 위로 조금 올라가면 그곳에 큰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 밑에 어떤 개가 홀로 묶여 있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이곳에 묶여 있었고 누군가에 의해 키워지고 있는지 밥은 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외양이 상당히 안 좋고 돌봄을 받지 못해 털 상태가 엉망이며 아무튼 전반적으로 개의 상태는 안 좋았습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눈도 먼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저녁이면 간식과 물, 때론 밥도 챙겨주었습니다. 가을까지... 눈이 보이지 않으니 소리 나는 쪽으로 짖는데 내가 다가가면 짖지만 위협적이지는 않습니다. 간식을 주면 그야말로 청소기가 흡입하듯 그냥 넘겨 버리고 제대로 씹지도 않고 허겁지겁 먹습니다. 그게... 안 돼 보여... 생각날 때마다 닭가슴살과 육포 또는 개 간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자 저녁마다 짓는 게 뜸해지고... 하니 나는 찾아가는 횟수도 줄어들고... 그렇게 가을이 끝나갔습니다. 그러던 며칠 전... 그 아이가 생각이 나 올라가 봤습니다. 자두는 그전 나무에 묶어 놓고 간식을 들고 갔는데 집은 있는데 그 아이가 안보입니다. 혹시 집안에 있을까 하여... 집안을 봐도 없습니다. 이때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드는데... 여름내 그렇게 짖으며 뭔가의 신호를 보내다 가을부터 뜸해져 나는 무심해졌는데 그게 아마도 상태가 악화되어 더 짖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열흘 전쯤 갔을 때 간식을 주고 왔는데 그때 짖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자리는 비어 있습니다. 아마도 그 아이는 영영 이곳을 떠난 것 같습니다. 인간과 함께 세상을 살았어도 인간에게 보살핌 받지 못하고 방치된 채 어떤 질병에 걸려 아파해도 병원도 아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났을 것 같은 그 아이는, 어쩌면 차라리 고통이 없고 추위에 떨고 비를 맞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갔으니 잘된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을 몰아갔습니다. 내려오는 길... 또 쓸데없는 후회를 합니다. 좀 자주 가서 보살펴 줄걸... 짖을 때만 가서 보고...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게 사실... 먹을 걸 챙겨주는 것 밖에 없었지만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주인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방치된 채 혼자 살아가던 그 아이가 이제... 다시는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은 곳으로 갔으니 다행이다... 다행이다...라고 내게 최면을 걸며, 떠나간 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면피해 봅니다. 치사하게도...
자두, 살구, 고양이에 대한 지난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