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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이란 무엇일까?

사랑이다.

by 글지으니


"나랑 술래잡기할 사람!" 하면서 손을 내밀지만 아무도 반응 안 한다. 내가 돌보는 아이는 엄청 빠르지만 수업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는 ADHD이다. 아이는 ADHD로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수업을 방해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선생님에게 집중하고 규칙도 잘 지킨다. 무엇을 하다가도 다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그것도 일반아이와 같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일반아이와 다른 것을 찾는다면 아주 빠르다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는 어른처럼 빨리 먹어 다행이고, 이빨을 닦을 때는 이를 닦기 싫어서 대충 닦는 일반 아이이다.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인지가 좀 약한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더듬더듬 글도 읽고 선생님의 지시로 책을 더듬거리며 읽기도 한다.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특수 판정을 서울에서까지 가서 받아 특수아이로 내가 돌보게 되었다.


이 아이는 놀이 시간이 되면 다른 친구가 만든 놀이에 함께해도 되냐고 한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아예 끼워주지 않고 그나마 여자아이들하고만 논다. 매번 다른 아이가 만든 놀이터에서 함께 놀자고만 한다. 나는 가끔 "같이 하자!" 하며 아이에게 집어 놓기는 했다.


나는 속으로 왜, 자기가 주도적으로 놀이터를 만들려고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나랑 엄마, 아빠 놀이 할 사람"하고 엄지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그 아이는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놀이터에서 교실에서 놀 때마다 여러 번 놀잇감을 사냥하기보다는 같이 노는 아이와 교섭하는 시간이 많았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놀이터에 사람들과 함께 노는 것을 소망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려워서 남들이 만든 놀이터에서 논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내가 보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 아이처럼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내 주장을 말하기보다 남의 주장을 잘 따르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바깥놀이터에서 줄넘기를 한다고 했다. 태권도에 다녀서 줄넘기도 하냐고 나는 물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하는 것 같은데 아이는 줄넘기를 못했다. 나는 줄넘기하는 것을 천천히 보여줬다. 하지만 손이 빠른 건지 발이 빠른 건지 잘 못했다. 그러나 일주일쯤 되어가니 아이가 세 개를 했다. 그래서 "오늘은 다섯 개!" 하면서 도전했다. 그러더니 다음날 여섯, 일곱을 하더니 열을 했다. 나는 할 때마다 잘한다고 듬뿍 칭찬을 해줬다.


그 아이와 놀았던 여자아이가 와서 "엄마, 아빠 놀이를 하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줄넘기를 하겠다고 사이를 두고 두 번이나 거절했다. 처음에는 흘러버렸지만 두 번째는 내 귀를 의심했다. 매번 자기와 놀자고 해주길 바랐는데 그 말을 거절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주장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는 입가에 미소가 나왔다. 줄넘기하는 것이 정말 좋아서 친구가 같이 놀자고 하는 것도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가 돌보는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존재감 있는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줄넘기가 좋아서 나는 이것을 할 거야!" 하는 그 아이만의 성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감이란, 무엇일까?" 브런치를 읽다가 글을 더 읽고 싶으면 그 작가의 책이 있으면 종이책으로 읽는 편이다. 종이책이 나에게는 더 친숙하고 편해서 선호한다.


브런치에 매일 글을 발행하는 것도 <나를 바꾸는 챌린지 100>을 읽고 100일 동안 글을 발행하고 싶어졌다. 지금은 <엄마의 유산>도 읽고 <관계의 발작과 경련>을 읽다가 존재감에 대해서 말한 것을 보며 내가 돌보는 아이가 생각나게 했다.


존재감은 자존감보다 먼저라는 말에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자존감을 만들기 위해 나는 많은 시간을 싸웠다. 하지만 존재감 없이는 자존감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 존재감을 찾을 때마다 자존감을 찾았던 것 같다.


내 아이가 정말 엄마를 사랑할 때, 엄마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내 자존감이 생겼다. 남편의 사업 실패를 딛고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그래도 남들이 사는 것만큼 이렇게 집을 화목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 내 존재감은 생겨났다.


밥도 할 줄 모르고 세상사는 것도 모른다고 시집와서 얼마나 무시를 당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사랑할 수는 있었다. 진실한 마음은 통하고 참과 거짓은 드러나기에 결혼 30년이 다되어서야 내 존재감은 빛이 나고 있다. 아직도 내 존재감을 만들기 위해 집에서도 밖에서도 고전분투하고 있다.


내가 돌보는 아이처럼 나도 내 존재감을 만들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이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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