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함과 낯설음의 경계

장식용 베개를 잊지 말아 줘

by 나홀로 후키맘

나는 지금도 여행을 가서 호텔에 머물게 될 때 가지런히 정리된 침대의 시트와 머리 쪽에 차곡차곡 놓여 있는 크고 작은 베개들을 보면 항상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머리뿐 아니라 다리 등 온몸 여기저기에 베개를 걸쳐 놓고 잠이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베개 중 한 두 개는 꼭 침대 아래로 떨어져 있곤 한다.

한 두 개면 충분한 베개가 많은 것은 호텔이라서 그러려니 했었는데 일반 서양 노인들 집에도 베개나 쿠션이 참 많다.


이들에게 매일 아침에 하는 침대 정리는 정말로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 나 인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많은 노인들은 모든 담요나 커버 시트를 내려놓고 매트리스 커버 등을 다시금 새것처럼 반듯하게 펼친 후 밤새 사용했던 베개를 가지런히 놓고 보통 그 베개 밑에 잠 옷을 곱게 접어 집어넣는다. 그리고는 정리해 놓은 베개 위에 또 다른 깨끗한 장식용 베개나 쿠션을 올려놓기 시작한다. 이들 베개는 보통 약간은 고급진 커버로 싸여 있거나 예쁜 수가 놓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취침 시에는 사용하지 않고 따로 보관해 놓는다. 그리고는 밤새 덮었던 담요 등을 정리하고 마지막에는 커다랗고 화려한 시트로 침대를 덮는데 이때 침대 전체를 덮거나 아니면 장식용 베개를 밖에서 보이게 놓는다. 또 어떤 노인들은 침대 하 단 부분에 따로 장식용 작은 담요 등을 올려놓기도 한다.


물론 많이들 간소화되어 가고 조금씩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겠지만 서양 할머니들이 몸을 구부려 가면서 하 나 하 나 순서를 맞춰가면서 정성껏 침대를 정리하는 모습은 마치 아침에 드리는 종교의식 같고 시간도 꽤 걸린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알아서 하는 90 세의 M은 홀로 살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침구를 꼭 2인용으로 준비하는데 침대 정리를 도와주게 될 때는 항상 장식용 베개를 잊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 인형 마니아 K는 침대 머리맡에 자그마치 21 개의 인형을 매일 아침 순서에 맞춰 가지런히 한다.


처음 support worker 일을 시작할 때 침대 정리를 쉽게 생각했었는데 침대 정리를 얼마나 할머니들이 원하는 대로 너무 급하지 않게 하느냐에 따라 할머니들과의 관계가 쉽게 풀리거나 엉켜버린다.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다르게 자신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도 많이 필요하다.


또 이들은 침대 정리를 하고 나면 밤이 될 때까지 거의 침대로 가서 눕지 않는다. 낮 잠을 잘 때도 거실에 있는 1인 용 의자에서 졸거나 작은 소파에서 잠깐 눈을 부칠뿐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각이 탁 잡힌 호텔 에서와 같은 침대 모양을 유지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의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 나인 침대 정리...서양 노인들의 하루의 기분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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