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78화
1603년 사무엘 드 샹플랭이 옹플뢰르 항구에서 선단을 이끌고 북아메리카의 뉴펀들랜드로 향하다 지금의 캐나다를 발견하고 1608년 퀘벡을 건설한 이래로 많은 숫자의 프랑스 인들이 미지의 땅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대 항해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향하는 뱃길을 열었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와 영국에 뒤이어 뒤늦게 프랑스가 뛰어들면서 대 항해 시대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떠난 선단은 바다 위에서 몇 날 며칠을 항해를 계속해야 했으므로 선원들이 마실 엄청난 양의 물과 식량을 적재하고 출항했다. 그러나 참나무통 안에 들어있는 물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부패하기 시작해 식용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더운 여름철이면 더더욱 상하기가 쉬운 게 물이었다. 파도에 흔들리는 배안에서 오랜 항해를 계속해야 했던 선원들로서는 오크 통 안의 물을 마실 수도 마시지 않을 수도 없는 지경에 처했다. 이때 그들을 위해 발명된 술이 럼(Rum)주다.
럼주는 사탕수수에서 추출된 액을 증류하여 만드는데 엄청난 알코올 도수를 자랑한다. 이 싸구려 술을 선원들은 물 대신 마셨던 것이다. 그런 탓에 럼주는 ‘뱃사람들의 술’이란 별명이 붙었다.
선원들을 고용한 선주 입장에서는 항해 중 선원들이 상한 물을 마시고 질환을 앓다가 죽어 나가는 것보다도 차라리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이 더 나은 일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수요에 부응하여 칼바도스를 생산하던 이 지역에 럼주 생산지를 점차 늘려갔다. 노르망디 지방, 특히나 칼바도스 지역은 시드르나 칼바도스를 생산하는 것이 일반화된 추세였지만, 특이하게도 선원의 술로 알려진 럼주를 생산하는 곳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르 브뢰유 앙노쥬(Le Breuil-en-Auge)에 위치한 브뢰유 양조장(Château du Breuil)이다.
외관이 뛰어난 브뢰유 성은 역사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는 이 지방 역사적 기념물로 등재되어 있다. 오늘날 샤토 뒤 브뢰유(Château du Breuil)는 증류주 칼바도스(Calvados)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양조장은 여러 다른 알코올을 생산, 증류, 정제, 숙성 및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풍스러운 성채는 16세기 초에 지어졌다. 여러 명의 성주가 그곳을 거쳐갔다. 이곳이 양조장으로 변화한 것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와서였는데, 1954년에 당시 소유주였던 필립 비주아르(Philippe Bizouart)는 시드로 제조회사를 증류주 생산 양조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양조장은 처음에 칼바도스(Calvados) 명칭에서 비롯된 오드비(eaux-de-vie)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샤토의 이름을 상표로 채택했다. 칼바도스 상표인 샤토 뒤 브뢰유(Château du Breuil)가 마침내 탄생한 것이다.
샤토 뒤 브뢰유는 AOC 뻬이 도주(AOC Pays d'Auge)에 42헥타르의 과수원(22,000그루의 사과나무)을 보유하고 있다. ‘사과 증류주’인 칼바도스(Calvados)와 ‘배 증류주’인 포모(Pommeau)의 생산량은 연간 300,000병 이상이나 된다. 적은 분량이긴 하나 이들 가운데 일부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2020년 4월 양조장을 인수한 프레데릭 뒤사르(Frédéric Dussart)는 이후 샤토 뒤 브뢰유 회사의 대표이사(CEO)이자 그의 파트너 중 한 명인 로베르토 몬테사노(Roberto Montesano)와 파트너십을 맺고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선원들의 술’로 알려진 럼주가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럼 익스플로러(Rum Explorer)는 다양한 원산지의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채로 샤토 뒤 브뢰유의 지하실에서 숙성시킨 술이다. 이 양조장에서는 르 브뢰유(Le Breuil)라 불리는 다양한 프랑스 싱글 몰트 위스키도 생산된다. 앞으로는 진(Gin)도 생산할 것이라 한다.
뚜크 강으로 둘러싸인 성채의 드넓은 정원엔 너도밤나무, 라임 나무, 주목, 플라타너스, 느릅나무, 전나무, 참나무 등 1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브뢰유 성 양조장은 가이드 투어도 있고 시음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한국어 설명은 아직 없다. 이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양조장에서 처음으로 럼주를 시음해 본다는 의미보다도 럼주를 통하여 저 아득한 대 항해 시대 또는 대 발견 시대라 일컫는 시대를 떠올려본다는 것이 더 의미로울 듯싶다.
내가 맛본 럼주는 그러나 마셔서는 안 될 술이었다. 소화제 격으로 한 두 모금 마시는 칼바도스와는 달리 글 쓰면서 럼주를 홀짝였다가는 또다시 병원신세를 질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저 아득한 옛날 프랑스 시인들이 홀짝이던 압생트 주가 그러했다. 뱃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좋은 술 놔두고 굳이 럼주를 마실 이유가 있을까마는 그래서 럼주는 선원들이 마시는 술이 아니라 요즘은 칵테일 용으로 소리 소문 없이 팔려 나간다는 풍문이다. 여하튼 럼주는 추억의 술이요,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비켜간 이름 모를 주역들이 마시던 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