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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맛

몽생미셸 가는 길 179화

by 오래된 타자기 May 15. 2024


어느 지방에 가서 그곳만의 독특한 음식을 맛본다는 것은 여행자들 모두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꿈이 꿈으로 그친다면 얼마나 속상하고 서럽기까지 하겠는가? 반면에 여행지에 가서 꼭 그 지방만의 음식을 맛보지 못할 때도 있다. 어떤 음식이 그 지방만의 전통음식이고 향토음식인지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해 바삐 움직일 때는 대충대충 한 끼 때우는 일도 허다하다. 외국을 여행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지만 프랑스는 요리가 발달한 나라답게 지방 특유의 전통요리를 하는 곳이 정해져 있다. 아무 곳에서나 맛볼 수 없는 것이 여행자를 성가시게 만든다. 여행하다 보면 모든 식당들이 그럴듯한 간판들을 내걸고 자기네 식당 자랑을 한참 늘어놓는 경우가 태반이나 그런 집 치고 정갈한 음식을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호들갑스러운 선전 투의 구성진 말 이면에는 ‘무국적 음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 업주는 경영난을 이유로 무국적 음식을 둘러댄다. 여기서 무국적 음식이란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재료와 어느 곳에 가도 테이블에 한결같이 내놓는 판박이 음식을 가리킨다. 이러한 진부한 숨바꼭질을 되풀이하다 보면 여행 자체가 짜증 나기도 한다.


향토 음식이란 어떤 것일까? 그 지방에서 나는 재료를 갖고 요리한 음식일 것이다. 그 지방만의 독특한 요리법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향토 음식은 결코 음식을 폄하하는 말이 아니다. 프랑스의 미슐랭은 늘 이런 향토 음식을 발굴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향토 음식은 말의 어감과는 다르게 그 지방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따라서 향토 음식을 메뉴로 내놓는 식당치고 형편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프랑스 요리는 요리(料理)란 말 자체에 이들 요리만의 특징이 내포되어 있다. 요(料)라는 말은 ‘재료’를 가리키고 리(理) 자는 ‘조리 방법’을 가리키는데, 세계 요리 양대 산맥인 프랑스 요리와 중국 요리가 이 요리란 말 한마디로 대별된다. 재료에 주안점을 둔 프랑스 요리는 ‘요’ 자에 방점을 두고 있고 반면, 조리 방법에 관건이 있는 중국 요리는 ‘리’ 자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똑같은 재료라 하더라도  프랑스 요리는 재료의 신선함을 중시한다면, 중국 요리는 삶느냐, 데치느냐, 삭히냐, 굽느냐, 튀기느냐에 따라 재료의 맛이 달라진다.


프랑스 요리는 재료의 신선한 맛을 입맛 그대로 전달하는 데에 주안점이 있다. 그래서 메뉴판에는 항상 주 재료에 곁들인 부 재료와 소스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다. 퐁레베크 인근의 <르 포 데탱(Le Pot d'Etain)> 식당에서 내가 맛본 요리를 예로 들면, 전식은 말랑말랑한 꺄망베르 치즈를 곁들여 돼지 막창자를 갖고 요리한 노르망디만의 순대 파이인 ‘노르망디 앙두이유와 꺄망베르 타르트(Tarte Normande Andouille et Camember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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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막창자 누린내는 음식에 코를 들이대도 맡을 수가 없다. 곁들인 샐러드는 눅진한 파이의 맛을 상큼하게 되돌려준다. 막창자로 요리한 파이 한 조각이 본격적인 식사의 흥을 한층 돋우는 것이다. 여기에 더 곁들일 것은 없다. 만일 우리가 아는 그 흔하디 흔한 진부하기까지 한 소스를 친다면 음식 고유의 맛이 달아나는 건 물론 전혀 낯선 이상한 맛까지 느끼는 불행을 자초할 것이다. 이 음식은 매운 고추장 맛으로 먹는 음식과 다르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우리 두 사람이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은 점심 식탁엔 두 사람 분의 본식으로 인근 대서양에서 잡힌 ‘값비싼’ 생선 가자미 요리(Sole Meunière)와 두툼한 쇠고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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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레베크는 바다와 이웃하고 있지만, 목초지 한 복판에 자리한 곳이다. 이들의 낙농업은 젖소에서 짠 우유로 만든 유제품, 특히 말랑말랑한 꺄망베르 치즈가 유명하나, 드넓은 목장에서 젖소만 키우는 게 아니라 육우도 키운다. 해물 요리만 맛있는 게 아니라 고기 맛도 일품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신선한 공기를 흡입하며 자유로이 자란 24시간 방목하여 키운 소는 건강하게 자란 덕분에 고기 맛도 좋다.


이른바 토마호크로 불리는 꼬뜨 드 뵈프(Côte de Beouf)는 갈빗살이어서 입안에서 녹는 느낌이다. 질긴 맛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육질과 함께 입안에 가득 고인 육즙은 잊어버리고 있던 쇠고기만의 고소함을 되살아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접시에 곁들여진 감자튀김이나 샐러드에 굳이 손이 가지 않아도 된다. 이 입맛을 적당히 헹구는 것은 다름 아닌 적포도주다.


가자미 요리는 생선가시를 완전히 제거한 덕에 입안에서 살살 녹는 느낌이다. 싱거운 맛 때문에 느끼한 치즈 크림을 섞어 만든 삶은 감자나 당근에 손이 가지만, 백포도주를 곁들이면 외려 싱거운 맛이 더 상큼하다는 걸 깨닫기까지 한다. 그래도 뭔가 게심심하다면 레몬 한 조각을 뿌려먹는 것도 괜찮다. 머리까지 통째로 구운 걸 보니 향토 음식이 틀림없다. 셰프가 이 지방 사람이 틀림없고 그의 투박한 손맛이 오히려 음식을 정직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향토 음식이 주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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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 전에 맛보는 치즈 타임은 남은 포도주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치즈 한 조각에 곁들인 사과 한쪽도 이 지방만의 식도락이다. 존득존득한 치즈 고유한 맛을 느끼려면 바게트 빵을 멀리 해야 한다. 빵의 고소함이 치즈 맛을 감퇴시키는 주 요인이기 때문이다.


후식은 뭘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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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파이가 최고다. 노르망디 지방은 어딜 가나 사과파이가 메뉴판에 후식으로 등장한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얇게 만든 밀가루 피 사이에 역시 얇게 저민 사과 조각을 겹쳐 놓고 오븐에서 구운 사과파이 맛은 새콤달콤한 사과 원래의 맛은 사라진 채 소화제 역할을 하는 단맛으로 채워져 있다. 이 단맛이 전식, 본식에 대한 부족한 포만감을 채워주는 기막힌 역할을 해준다. 이 포만감은 다시 한 잔의 술을 부르는데, 그게 바로 이 지방에서만 생산되는 이른바 이 지방사람들이 ‘소화제’라 일컫는 사과 증류주 칼바도스다. 칼바도스를 마시는 가운데 추운 겨울날 에리히 레마르크의 소설 속 주인공 라비쯔가 개선문 앞 푸케스(Fouquet’s) 노상카페에서 홀짝이던 칼바도스를 떠올리는 것은 덤으로 주어진 포만감이다. 한 끼의 식사가 주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퐁레베크 인근의 르 포 데탱 레스토랑퐁레베크 인근의 르 포 데탱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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