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주 차, 안정기
생애 최초 임신이라는 특별한 환경에 놓이면서 매일 글을 쓰리라 다짐했는데 오락가락한 컨디션에 곧잘 졌다. 하지만 14주 차 6일째, 가을 햇살 충만한 오후였다. 컨디션이 회복되면서 오랜만에 글을 썼다.
임신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는 두 달이 넘었을 때였는데 저장된 글은 단 두 개였다. 얼마나 썼다고 초심을 잃었나. 임신으로 인한 컨디션 문제라고 둘러댈 수 있지만 핑계 아닌 핑계다. 일을 시작하는 건 쉬운데 마무리가 잘 안 되는 편.
그래도 조마조마했던 임신 초기를 지나 중기에 접어들면서 글을 쓸 마음이 다시 생겼다. 처음 임신부 신분이 된 내가 왜 글을 간절히 쓰고 싶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쓸 것인가 다시금 떠올렸다. 엄마가 되는 대모험을 시작한 나 자신을 위해 내 생각과 감정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지.
약 10주라는 시간 동안 임신 초기 다양한 증상들을 마주했다. 화장실에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건 기본. 호르몬 변화인지 가려움증에 분비물이 많아지고, 피곤해서 잠을 자고 또 자고, 입덧 대신 먹어야 속이 편한 먹덧으로 지내왔다.
그럭저럭 시간은 흐르고 임신 초기 그렇게 간절히 기다려온 안정기에 이르자 여전한 먹덧에 속이 한결 편했다. 또 뱃속에 아이가 항상 함께 있다는 게 실감 나면서 작은 행복이 마음 깊이 들어섰다.
글을 매일 쓰는 직업이었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록을 남기는 건 의외로 어려웠다. 그래도 이 시기 내 생각과 감정을 적어두는 일은 놓치지 말아야지 하며 글을 끄적였다. 밀물과 썰물 같이 반복되며 마냥 흘러가는 시간 속 순간들을 붙잡도록.
풍선을 처음 불 때와 같은 풍선을 다시 불 때는 다르다. 처음에는 힘이 많이 들어가고 어색하지만 두 번째는 좀 더 쉽겠지. 이 고되고 값진 첫 경험은 돈을 주고도 못 사기에 글을 쓰기로 했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선물같이 찾아온 아이 덕에 첫 임신 기록을 남길 수 있었으니.
이전에는 왜 글을 쓰고자 하면서도 잘 안 됐을까 생각해 봤다. 컨디션도 컨디션이지만 욕심이 문제였다. 완벽하게 기반을 갖추고 시작해야 한다는 착각이 시작과 지속을 어렵게 만들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콘텐츠를 만들려면 글도 글이지만 디자인이나 영상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일단 가볍게 글을 써본다고 생각했으면 쉬웠을 텐데 안 해본 것들에만 집착하니 시작이 어려웠다.
부담을 덜기 위해 가입만 하고 사용 안 한 사진편집 애플리케이션 구독마저 취소하고 나서야 다시금 새롭게 시작할 힘이 났다. 비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 뭔가를 더 하려고 애쓰고 집착하는 마음은 내려두기로 했다.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기억하며 꾸준함을 지속한다.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모름지기 시작이 반이다. 모든 일은 시작하기만 해도 반은 성공인 셈이다. 하지만 일을 매듭짓기 위해선 다시금 한발 한발 움직여 나머지 반을 채워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게 기세다. 임신 중반에 접어든 임신부로서 종착지인 출산까지 글을 쓰는 실천을 이어가려면 기세가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