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무지 Mar 14. 2024

듣기 좋으면 조언, 싫으면 오지랖

말할 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하죠.

하지만 우리는 ‘아’라고 말하고 싶은 걸 ‘어’라고 말했다가 고운 말이 아닌 빽- 하고 소리를 듣고는 합니다.

혹은 상대의 ‘아’가 ‘어’라고 들려 성질을 부리곤 하죠.


이런 일들이 부지기수다 보니,

사람들은 차라리 말을 아끼고 침묵하기도 합니다.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지’라며 속으로 말을 삼키죠.


때로는 속으로 참지 못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막상 듣는 이는 사건 당사자가 아닌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잘못했는가’에 대한 대답이 뻔한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이죠.

괜히 갸웃거렸다가는 불똥이 이리로 튈 수 있거든요.




우리가 인간관계를 다룬 책들을 보면 흔히 적혀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세요.’

‘당신이 하는 말은 정말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지, 상대를 생각하고 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내가 널 진짜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와 같은 말은 정말 상대를 생각하고 하는 말이 맞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어차피 그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나입니다. 어느 누구도 내 질문에 나만큼 깊게 고민해주지 않아요.’


이때만 해도 저는 이 말에 굉장한 공감을 표했습니다.

‘어머! 맞아! 걔가 그때 딱 저렇게 말하면서 지가 하고 싶은 말을 했었어!’

나는 정말 상대를 위한 조언이었는데 상대한테는 그게 아니었나?‘

등과 같은 생각을 하며 여러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 또한 늘 그래왔던 것 같습니다.

제가 듣고 싶은 말은 조언이고,

제가 듣기 싫은 말은 오지랖처럼 들렸죠.


‘저 사람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줘!’라는 것에 대한 척도는 제 응석을 받아주고 공감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의 ’아‘를 ’아‘라고 받아들인 케이스죠.


‘저 사람은 알지도 못하면서 저렇게 얘기해!’라는 것은 조언을 가장한 충고이자 오지랖처럼 여겼습니다.

상대의 ‘아‘를 ’어‘처럼 받아들인 케이스인 것이죠.


그런데 제가 이런 꽉 막힌 사고방식에서 벽을 허물며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나와 다른 의견이 소중하다.

나와 다른 것을 보는 눈이 귀하다.


물론 제게 응원을 해주는 것은 굉장히 힘이 됩니다.

또한 저를 믿는다는 것이니 뿌듯함도 있죠.


하지만 제가 이전에 오지랖이라 여겼던 것들은 제가 흐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것의 가림막을 없애주기도 하고 잘못 가고 있던 길에 나침판이 되어 길을 바로 잡아 주기도 합니다.


당연히 오지랖 중에 정말 나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들도 있겠죠. 허점을 짚거나 기분 상하라고 하는 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그들의 말에 필터를 끼워 흘려버리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안에만 갇혀있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길을 헤매게 될지도 모르죠.


어릴 적 끔찍이도 듣기 싫어했던 엄마의 잔소리,

“공부해라. 좋은 대학 가야지! “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고 그저 엄마의 못 이룬 꿈을 내게 씌우려는 심보 같아 보여서 듣기 싫었던 그 말.

나이 먹어보니 너무 이해가 가지 않던가요?


“돈 모아라. 집 사야지!”

티끌 모아 티끌인 거 같아서 여행 가고 명품 사고 차 사고 이리저리 흩어진 돈을 보며 ‘이 돈 안 쓰고 다 모았으면 얼마야…’ 싶지는 않던가요?


“운동해. 나중에 나이 먹고 고생한다.”

20대 체력 평생 갈 거 같았는데 한해 한해 흐를수록 줄어가는 기력과 늘어가는 건강식품을 보며 ’이러다 나이 먹고 병실이 집 되는 거 아녀?’ 하지는요?


우리는 먼저 간 선배들의 말을 깡그리 무시한 채

마이웨이라며 멋진 척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그늘인 줄 알고 잠시 앉았던 곳이 거대한 곰의 뒷모습이었으며

맛있는 열매인 줄 알고 따먹었다가 시름시름 앓곤 합니다.


먼저 간 선배들도 분명 똑같이 그랬을 거예요.

그래서 니들은 그러지 말라며 조언하는 걸 테지요.

하지만 말해도 할 걸 알아서 입을 다무는 선배도 있죠.

당해봐야 아픈 법을 안다나 뭐라나.


그래서 저는 선택하려 합니다.

때로는 내 쪼대로 가다가 아파보기도 하고

때로는 조언에 따라 움직여 고통을 피하기도 하며

때로는 그 조언 때문에 오히려 헤매기도 하고

때로는 조언을 안 들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거요.


그래서 조언을 들으려 합니다.

조언을 선택하든 안 하든 그건 제 몫이고 그 또한 제가 선택한 길일 테니까요.

그러나 조언을 듣는 것조차 거부한다면 그건 너무 어리석은 거 아니겠어요?

응원은 응원대로 감사해하며 힘을 얻고

조언은 조언대로 제 삶에 적용하며 흐린 눈을 번쩍 떠보아야겠죠.


여러분은 상대가 조언이랍시고 입을 뻥긋하는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답이 정해져 있는 사람처럼 귀를 닫아놓고 듣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상대가 정말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오지랖에 불과했었나요?

듣기 싫은 나와 상반된 말이라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조언을 들으면 생각의 전환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제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나 응원이 있다면 한마디라도 더해주세요!

조언이라면 쓰지만 묵은 체증을 내려주는 아메리카노처럼, 응원이라면 달디단 초콜릿처럼 받아들이며 한층 더 나아지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

이전 07화 당신은 100점 만점에 몇 점인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