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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Feb 07. 2024

2. 할머니는 부재중

[할머니의 손] Ⅱ. 나를 이룬 것의 팔할

 그해의 일은 또렷하게 남은 기억 중 하나다. 어린아이의 견고한 세상이 예고 없이 붕괴할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계기를 트라우마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일은 그렇게 이름 붙여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할머니가 붙박인 자리는 항상 집이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어떤 예고도 없이 할머니가 부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그것이 주는 대단한 안정감이 있었다. 다른 누구로도 채워질 수 없는 존재감이자, 할머니만 있으면 가득 채울 수 있는 공간감이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내게 집과 동의어였다.


 그날에는 할머니가 예고 없이 집에 없었다. 집안 분위기도 평소와 달랐다. 모두가 각성 상태를 동반한 약간의 허둥거림을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 미묘한 변화가 거슬리게 느껴졌고 갑자기 배가 아파져 왔다. 어른들은 그런 일을 아이에게 숨기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 미묘한 분위기를 정보 없이 견디어 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는 것이 백배 더 나을 것 같지만. 같은 생각이었는지 삼촌 하나가 내게 말해 주었다.     


 “할머니 좀 다치셨어. 빨래 널다가.”     


 할머니는 빨래를 널다가 다쳤다. 대체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까 싶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당시 우리가 살던 다세대 주택에는 집 건물과 담벼락 사이에 꽤 넓은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 언제부터 있었을지 모를 빨랫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빨랫줄이라 해봐야 지금처럼 전문적으로 그 용도만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는 아니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높다란 쇠봉을 적당히 안정적인 크기의 깡통 같은 데에다가 넣어 시멘트로 굳히고, 그걸 두 쌍을 만들어 적당한 간격으로 벌려 놓은 뒤 주황색 노끈을 연결해 만든 것이었다. 주로 할머니가 사용하게 되리란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빨랫줄은 꽤 높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는 뭔가를 밟고 올라가야만 빨래를 널 수 있었다. 주로 밟고 올라가는 플라스틱 의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흔들거렸다. 위태롭게 매일의 빨래를 해내는 동안 누구도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자기 일이 아니라면 으레 그렇게 되는 걸지도 몰랐다. 


 할머니는 그 빨랫줄에 이불을 널다가 다쳤다. 담벼락에는 도둑들이 함부로 넘나들지 못하도록 뾰족뾰족한 화살 모양의 철물이 줄지어 붙어 있었는데 그게 무척 위험한 위치에 있었던 거다. 할머니는 무거운 이불 빨래를 온몸을 활용해서 들어 올린다. 안 그래도 높은 빨랫줄에 무거운 빨래를 걸려면 몸을 던지다시피 힘을 주어 그것을 올려야 한다. 그가 딛고 있는 것은 고정되지 않은 플라스틱 의자. 빨랫줄 쪽으로 힘의 방향을 정하여 몸을 움직이자, 플라스틱 의자도 무력하게 그쪽으로 쓰러진다. 쓰러지는 순간 자기 보호를 하려고 무엇이든 손으로 짚으려 했고, 하필 할머니가 짚은 것은 뾰족한 화살촉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어린아이에게 숨겨진 정보들뿐이었다. 얼마나 다쳤는지, 완치하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할머니는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어린애가 신경 쓸 일 아니라며 어른들이 함구하는 동안 나는 매일 상상 속에서 병원에 누워 있는 할머니를 그려냈다. 할머니 손의 상처를 상상하려면 그가 다치던 순간을 알았어야 하므로 그 또한 나의 상상으로 채워야 했다. 뾰족한 철물에 손을 스쳤거나, 아니면 깊이 상처가 난 후에 담벼락 옆 공간으로 추락했거나, 또는 그 망할 쇠창살이 할머니의 손을 관통해 버렸을지도. 할머니가 사고로 피를 많이 흘렸다고 누군가 스치듯 하던 말을 기억하여 이내 담벼락 아래 붉은 것이 고여 웅덩이를 이루는 상상을 했다. 비가 올 때마다 물이 고이는 낮은 지대에 빗물 대신 핏물이 고여 있는 이미지가 반복해서 재생됐다. 할머니가 느꼈을 통증이 어느 정도였을지를 확인해 보려 모나미 볼펜 촉을 내 손바닥에 올려 세게 눌러보기도 했다. 촉 끝이 살갗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되자, 금세 겁이 나 펜을 치워 버리고 손바닥에 난 검은 점을 박박 문질러 지웠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더 생생한 이미지로 상상되었으므로, 나는 할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어린이에게는 병실 면회는 허락되지 않았고 강제로 할머니로부터 분리된 날들이 얼마간 지났다. 나는 한동안 집을 잃었다. 집이 없는 세상은 예상한 바와 같이 공포 그 자체였다. 나는 스스로 보잘것없고 무력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할머니는 대체 불가능한 안전 기지였다.


 퇴원한 할머니 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는데, 다행히 그 속에는 다정한 손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부엌일을 많이 하여 거칠지만 주름은 많지 않던 그 손등 한가운데 오 센티미터 정도의 흉터가 남았다. 내가 수없이 했던 상상에 비하면 사소하기 그지없는 흔적이었다. 할머니는 금세 나았고 막내 삼촌의 임관 반지를 다시 끼기 시작했으며, 다시 집안 살림과 육아를 시작했다. 보기 싫던 흉터는 할머니 손에 주름이 하나둘씩 잡혀감에 따라 마치 그 주름의 일부인 것처럼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고 할머니가 빨래를 널다 다친 적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희미해졌다. 이사를 하면서는 노쇠해진 할머니가 이불 빨래를 힘겹고 위태롭게 널어야 할 일도 사라졌다.


 지금껏 그해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할머니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음을 처음 인지한 순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학교에 가는 하루 루틴에 익숙해지며 시간을 채워나가는 방법과 바람직한 방향을 하나씩 깨우치던 어린이에게, 실은 그것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한 일이었다. 일상이 이토록 불안정한데 동그란 시계 모양의 생활계획표를 만들고 정해진 시간에 밖에 갔다 돌아오는 하루를 반복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거동이 예전 같지 않은 중년 이상의 가족들과 젊은 피가 충만하여 가끔 술을 먹다 연락이 끊기기도 하는 청년 가족들이 한 공간에 있었으므로, 위험한 변수는 늘 사방에 도사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다칠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빨래 널지 말라고 칭얼거리고 보챘을 거고, 아마 할머니는 내 말을 들어주었을 거다. 사고나 이별 같은 것은 실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걸 알게 되니 이미 나는 다 자라 버린 후였다. 


 그 후로도 할머니는 예고 없이 자주 입원했다. 나는 학교에 다녔고 졸업했고 직장을 다녔고 결혼을 했고, 할머니는 수면장애가 있어서, 위장이 안 좋아서, 팔이나 다리를 다쳐서 입원했다. 늙어갈수록 할머니는 아팠고 입원하는 기간도 점차 길어졌다. 


 할머니가 없는 집에서 그분이 남기고 간 구멍은 분명 할머니의 몸피보다 거대했었다. 마치 싱크홀이 뚫린 것처럼 휑한 공허가 집 한복판에 있었다. 할머니의 부재를 모를 수 없는 크기의 공허였다. 시간이 지나며 그 구멍은 할머니의 작은 체구만 해졌다가 할머니의 체구보다 작아졌다가, 어느덧 할머니가 계시지 않아도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될 만큼 작아졌다. 자주 아픈 할머니가 짐처럼 느껴지다 퍼뜩 밀려오는 자기혐오를 맞닥뜨릴 때 사람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 것만큼 슬픈 일이 어딨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아무래도 괜찮을 줄로 알았던 것이고 그 할머니가 영영 떠나버린 지금은…. 그가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되어서야 할머니가 남긴 구멍이 물리적 공간이 아닌 나의 마음에 나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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