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작 Mar 20. 2024

8. 할머니의 손님

[할머니의 손] Ⅱ. 나를 이룬 것의 팔할


 ‘도둑 손님’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도둑을 몰래 찾아온 손님으로 높이는 척 비틀어 말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거기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왔는지도 모르게 잠시 왔다 간 사람, 나쁜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당당히 오지 못하고 오래 머물지도 못한 채 슬그머니 왔다 가야 하는 사람 말이다.    

 

 할머니에게 몰래 방문하는 사람이 있었다. 돈 없는 노인들의 치아를 봐주는 ‘야매’ 기술자였다. 큰 가방을 들고 출장을 다니던 그 아저씨는 일 년에 두어 번씩 우리 집에 왔다. 할아버지의 이를 먼저 봐주고, 이어서 할머니의 이를 봐주었다. 가방이 아무리 커도 치과 의자나 치과용 조명등을 넣어 다닐 순 없었을 것이기에 할머니는 거실에 볕이 제일 잘 드는 창문가에 앉았다. 머리를 지지할 어떤 것도 없이 벽에 등만 기대고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으면 아저씨는 날카롭거나 둔탁한 기구들을 가방에서 꺼내어 할머니 입속에 넣었다. 가끔 할머니가 ‘아!’하고 소리를 지르면, 할아버지가 참으라고 타박을 했다. 하교하고 돌아와 그 아저씨가 보이면, 조금 후엔 뭔가를 뜯거나 찍어내는 듯한 소음이 들릴 것을 예상했다. 집 앞 치과에 가면 되지 왜 저 아저씨를 부르지. 할머니도 치과가 무섭나. 순진하게 생각했다. 수입도 없던 두 노인에게 치과에서 부르는 치료비는 어마어마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그걸 매번 자식들에게 손 벌릴 수 없었기에,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로부터 수소문하여 부른 사람이란 걸 생각지도 못하고 말이다. 어느 치과의사에 못지않게 손이 정교하다면서 할아버지는 칭찬했다. 할아버지가 ‘치과 가서 비싼 돈 쓰지 말고 너도 한번 받아 보라’며 손주에게 권할 정도였으니 그 칭찬은 백 퍼센트 진심이었을 거다.


 생존을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하고 밥을 먹으려면 치아가 필요하다. 치아는 노화와 함께 상해 가서 이걸 고치려면 돈이 많이 든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노화한 사람들이 몸을 쓰며 할 수 있는 일은 흔치 않다. 누군가의 금전적인 도움과 선의가 필요한데 전선에 선 듯한 삶을 꾸려가는 자식들에게 매번 손을 벌릴 수가 없다. 그래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나름대로 방법을 찾은 셈이다. 할머니는 유지하던 치아가 많이 빠져서 틀니를 맞출 때가 되어서야 아들들의 도움을 받아 전문적인 치과에 갔다. 그때까지 기술자의 방문에 대해서는 나와 동생을 제외한 가족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부담될 것 같은 일들을 으레 감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식들은 그 덕분인지 돈에 한창 허덕일 시기를 무사히 살아내고,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를 찾고 나서는 늙은 부모님을 위한 형제계를 열었다.


 할머니는 틀니를 빼면 입이 ‘옹’하는 모양새로 오므라졌다. 유리컵에 담가 놓은 틀니는 정신 나간 과학자의 연구실에 놓인 실험 샘플 같았다. 그걸 입속에 끼우는 장면도 신기했다. 할머니, 그거 다시 해 봐, 내가 장난스럽게 요청하면 할머니는 딱 한 번만 더 보여주었다. 할머니는 틀니 때문에 산해진미를 먹어도 그 맛을 모르겠다 했지만, 그와 함께 위장 기능이 약해져 애초에 그런 것들을 맘껏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몰래 방문하는 기술자 대신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오고 만 것이다.




 또 한 사람이 있다. 우리 집에 조용히 들렀다가 조용히 떠난 할머니의 손님이자, 할머니의 언니다. 내게는 없어 늘 갖고 싶던 언니가 할머니에게 있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할머니도 누군가의 딸로 태어났을 것이고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들이 여럿 있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해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할머니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자랐을 사람들이었다.


 이모할머니는 그림책에서 본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뒤통수에 조그맣게 쪽을 지어 고정한 희끗희끗한 머리와 그 소재를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생기기로는 무명옷처럼 보이는 상의와 편안한 고무줄 바지.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는 누가 들을세라 조용조용히 대화했다. 나는 그분들께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도 아니었을 텐데, 그저 우리 집에 온 손님을 해롭지 않게 바라보고 있는 아이였을 뿐인데도 말이다. 예전에 알던 누구 이야기,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 등 내가 엿들어봤자 오래 기억도 못 할 이야기였다. 이모할머니가 소파에 앉아 있는 동안 할머니는 나와 동생의 간식을 준비하거나 거실을 치우거나 하는 식으로 집안일을 하면서 다소 정신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동안 단둘이 만날 일이 거의 없었을 텐데도 두 분은 쫓기듯이 그 시간을 압축적으로 보내고 있었다.


 이모할머니의 성함이 궁금했지만, 할머니는 그냥 ‘박 씨’라고 했다. 할머니가 그동안 만나지 못한 언니의 이름을 잊어버린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이모할머니보다 신식의 노인이었다. 까맣고 뽀글뽀글한 머리에 금테 돋보기를 쓰고 자글자글한 반짝이가 붙은 화려한 티셔츠를 입은 할머니는 이모할머니와 전혀 다른 연령대의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 집에서 몇 시간을 함께하던 이모할머니는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집에 갔다. ‘집에 갔다’라고 쓰니 그 집이 어디였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먼 지역에서 동생을 보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우리 동네까지 찾아왔다면, 들인 시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만남이었을 테니까. 나는 어른이 된 후에도 동생과 가까운 곳에 붙어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엄마, 아빠의 귀가 전에 여러 실험이나 작업 같은 일들을 마치고자 했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귀가하기 전에 개인적인 일들을 마치곤 했다. 각자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가족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인데, 그런데도 몇몇 일들은 나나 동생이 가족들에게 일러바침으로써 만천하에 드러나곤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할머니의 언니가 우리 집에 들렀던 것은 비밀로 삼을 만한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만약 동생이 집에 온 나를 황급히 쫓아낸다면, 한동안 삐져서 동생과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 할머니 언니가 왔었는데 금방 갔어.”

 “할머니한테 언니가 있었어?”

 “응, 할머니네 언니라고 했어.”     


 엄마한테 털어놓고 생각해 보니 그분이 할머니의 친언니가 맞는지도 헛갈릴 지경이었다. 이후에는 이모할머니가 다시 집에 초대되지 않았으므로 그 얼굴과 목소리를 다시 떠올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할머니로부터 ‘언니’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할머니 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이모할머니가 앉아 있던 소파에 앉아 있다가 예고 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평생 고생만 하고. 그렇게 죽어 버리네….”     


 그 밖에도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 이어졌다. 할머니 울음소리와 뒤섞여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누가 들을세라 울음을 순식간에 멈추고 다시 부엌일을 하러 갔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울음을 그칠 수 있는지 신기했다. 짧게 울음을 토해 버린 후 일상을 살러 가는 할머니를 보며, 나와 할머니 또한 이런 식으로 이별할 날이 올 것을 다시 떠올렸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할머니가 애통한 울음을 칼로 자른 듯 끊어 버리고 다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두려웠다. 책이나 드라마에서 보는 죽음은 주변 사람을 오래 울게 하던데, 이런 식의 ‘종료’도 가능한가 싶어 의아했다. 나는 “할머니도 언젠가는 돌아가시잖아”라는 말에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가 눈물을 쏟는 아이였다. 할머니와 이모할머니는 오랜 정을 쌓지 못했을 거다. 할머니가 도둑처럼 왔다가 황급히 떠나야 했던 이모할머니와 함께 나눈 감정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며 그럼 이제부터 나는 할머니를 후회 없이 사랑해야 할까, 아니면 점점 메말라가야 할까 고민했다.      


 “엄마, 할머니 언니가 돌아가셨대. 할머니 엉엉 울었어.”

 “아이고…. 오래 사신 노인이 돌아가셨는데 왜 그렇게 우셨대.”     


 할머니는 오래 울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상갓집에 함께 가겠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거절했다. 아빠는 살아 있는 동안 거의 뵙지 못했던 분이라고 했다. 언니의 영정 사진도 보지 않은 할머니가 어떤 식으로 이별을 치르고 그 감정을 정리했을지 궁금하다. 그걸 물었다면 차분하고 말끔한 종료 의식을 배울 수 있었을 거지만, 그랬다 해도 할머니와의 이별에 적용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

이전 07화 7. 그 사이의 자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