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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Sep 09. 2024

미용실 가는 날

< 키워드 '미용실' >


10개월 만에 파마를 하러 미용실을 다녀왔습니다.

오늘의 키워드 '미용실'입니다.

장르: 짧은 청소년 소설



미용실 가는 날


“엄마, 미용실 갔어!”

“뭐?”

     

학원에서 돌아와 냉장고에서 제로 콜라를 꺼내 마시던 윤찬은 누나 윤지의 말에

콜라를 뿜을뻔했다.     


“너, 뭐, 사고 쳤냐?”

“아, 또, 무슨 일인데”

“그럼, 성적표 나왔냐?, 아니지 그건 아니지.”     


윤지와 윤찬의 엄마 권상아는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는 이슈가 생겼을 때, 

미용실을 갔다. 그리고, 며칠, 집안 분위기는 살얼음판이 되었다.

시작은 아빠의 바람이었다.

아빠가 동창생과 바람이 났다는 걸 알았을 때, 엄마는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왔다.

그리고, 할머니가 아빠의 바람을 엄마 탓으로 돌리고, 아빠 인생을 망쳐놨다며

집안을 뒤집어 놓고 갔을 땐, 짧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나타났다.

그 뒤로, 엄마의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는, 예기치 않은 이슈들이 발생하면, 엄마는 미용실을 다녀왔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왜 하필 미용실인지는.     


“일단, 넌 옷 갈아입고, 분리수거해. 난 청소할게.”

“알았어.”


그렇게 느리고 게으른 윤찬도 이 순간은 빛의 속도로 움직였다. 일종의 생존본능과도 같았다.

윤찬이 분리수거를 하러 나간 사이, 윤지는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었다.

윤찬과 윤지가 교복을 입기 때문에 빨래는 대부분, 수건과, 양말과, 속옷, 집에서

입는 옷들이었다.

엄마는 입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보풀이 나거나 목이 늘어난 옷은 입지 못하게 했다. 

신발도 늘 깨끗하게 세탁해 주었다. 하지만, 집에선 윤지와 윤찬이 입지 않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었다.

엄마의 속옷을 개어 엄마의 옷장 서랍에 차곡차곡 넣어놓고, 방을 나가려던 순간,

엄마의 화장대에서 무언가가 윤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얀 봉투였다. 순간 윤지는 알 수 없는 직감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실체가 있는 불행과 마주할 것만 같은

공포감이 함께했다. 윤지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


예상대로 청첩장이었다.

신랑 측 이름에 아빠의 이름 석 자가 쓰여있었다.

심지어, 신부 측 이름도 생소했다. 바람났던 여자가 아니었다.     

‘이 나이에 결혼하면서, 전 부인에게 청첩장을 전해준다고?’     

이것은 아빠의 복수일까?

만 분의 1도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혈육의 정마저 

다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법원에 가서, 엄마의 성으로 바꾸고 싶은 심정이었다.

윤지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혼 후 윤지가 아빠에게 전화를 거는 건 처음이었다.

아빠의 전화 컬러링은 어울리지 않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였다.     


“어, 윤지야. 웬일이야. 먼저 전화를 다 걸고.”

“결혼해?”

“어?”     


아빠는 당황한 듯했다.     


“아빠가, 청첩장 보낸 거야?”

“청첩장?”

“그래, 청첩장”

“설마. 아빠가 그걸 왜 보내니?”

“근데, 왜 이게 엄마 화장대에 있어?”

“그래?”


아빠도 모르는 일 같았다. 윤지는 확인만 한 채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악”     


화가 치밀어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보냈던, 아빠의 새로운

부인이 될 여자가 보냈던,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른이지 않나? 불리한 순간엔 어른을 들먹이면서, 왜 이렇게 어른답지 못하게

행동하는 것일까? 보낸 이의 악의를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었다.

엄마가 뭘 그렇게까지 잘못한 걸까?     


“이런, 십장생, 씨....”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욕이 술술 나왔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제어가 되지 않았다.

아빠가 동창생과 바람이 나고, 결국 엄마와 이혼했을 때, 아빠는 윤지와 윤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랑에 눈이 멀어, 하루라도 빨리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눈치였다.

아빠는 솔직하게 말하면 평범보다 못한, 그런 사람이었다.     

‘도대체 무슨 매력이야?’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연애할 때나 그랬지,

결혼생활에선 그 점이 최악의 단점이 되었다고 했다.

아빠로서는 어렸을 땐 좋았다.

잔소리를 하는 법이 없었고, 놀아줄 땐 정말 유치할 정도로 재밌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잔소리를 하지 않았던 건 무관심이었고, 어쩌다 놀아준 건, 

엄마에게 무언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였다는 걸 윤지는 뒤늦게 알았다.


그렇게 얼마쯤 욕을 퍼부었을까? 윤지는 뒷골이 서늘함을 느꼈다.

뒤돌아보니, 열린 방문을 통해 문 앞에 서 있는 엄마와 윤찬이 보였다.

윤지는 엄마의 머리부터 확인했다. 웬일인지, 엄마는 차분한 레이어드 컷에 C컬 파마를 하고

나타났다. 그 와중에,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엄마. 왔어?”     


윤지는 멋쩍었지만, 태연하게 물었다.     


“치킨 먹자”     


엄마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손에 들고 있던 치킨을 들며 윤지를 향해 웃었다.     


“와, 맛있겠다.”     


윤찬인 엄마 눈치를 보며 잽싸게 엄마 곁에 앉았다.     


“맥주 줘?”     

윤지가 물었다.     


“당연하지. 치킨엔 맥주지. 너도 한잔할래?”

“엄마, 나 고3이야. 아직 학생”

“왜, 민증 나왔잖아. 얘기 들어보니까 민증 나오고 딱 20살 되는 날 기다렸다가

술 마신다던데? 넌 아냐?”

“엄마한테 걸리면 죽으려고? 난, 엄마가 허락하면 마시려 했어.”

“그래?”     


엄마는 맥주를 따라 윤지 앞에 놔줬다.     


“너의 음주를 허하노라!”     


엄마가 씁쓸하게 웃었다.


“나 진짜 마신다?”

“마시래도”     


윤지는 설레는 듯, 맥주를 한 모금 천천히 마셨다.     


“아... 어른의 맛”

“진짜 처음 마셔봐?”

“어. 당연하지.”

“내가 네들을 빡빡하게 키웠나?”     


엄마는 말을 이었다.     


“엄청 눈치 주고, 강압적이고, 내가 그랬니? 진짜 궁금해서 그래. 솔직하게 말해봐”

“에이,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그지 누나?”     


윤찬이 먼저 엄마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윤찬이 말이 맞아.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엄마 말 안 들어서 엄마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윤지의 말에, 엄마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야, 오늘 맥주 맛 좋다.”

“엄마!”     


윤지가 엄마를 불렀다. 무언가 할 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이때, 윤찬이 끼어들었다.     


“엄마, 왜 화나면 미용실 가? 나 진짜 진짜 궁금했어.”     


이번엔 윤찬의 질문이 꽤 마음에 들었다. 녀석도 가끔 쓸모가 있었다.     


“도망가는 거야. 미용실로.”

“도망? 여자의 변신은 무죄. 이런 거 아니고?”     


윤찬은 엄마의 말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하지만 윤지는 말없이 엄마의 말을 들었다.     


“무서우니까. 사실, 엄마 겁쟁이야.”     


엄마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도망가는 거야. 무서우니까. 근데, 내 머리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잖아? 거기에서 있는 한두 시간 동안, 그 사람들은 정말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 스텝은 끝없이 샴푸를 해주고, 머리를 말려주고, 디자이너는 내 머리를 만져주었다가, 또 다른 손님의 머리를 만져주고, 그렇게 서 있으면 허리 아프지 않으려나?

언제 밥을 먹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차올라서, 나도 모르게 무서움은 저기로 밀려나.

그러다 보면, 머리가 완성되고, 난 디자이너를 믿고 맡긴 것뿐인데, 머리가 마음에 들게 나오지?

 그럼 또 기분이 조금은 좋아져.”

“근데, 왜 며칠 동안 그렇게 화가 나 있어?”     


윤찬이 마치 초등학생 아이처럼, 오늘은 이런저런 질문을 해댔다.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화는 화지. 그게 금방 풀리겠냐?

근데, 이젠 진짜 머리 하고 싶을 때 미용실 갈 거야. 오늘도 그랬어. 머리 하고 싶어서.”

“왜?”     


이번엔 윤지가 물었다.     


“겁이 안 나. 무섭지 않아.”     


윤지와 윤찬은 말없이 엄마의 말을 기다렸다.     


“무서울 게 없네요~그리고 집이 제일 좋아. 너희들이 있는 이 집 말이야”     


엄마는 또 한 번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엄마, 다리 먹어”     


윤찬이 엄마에게 치킨의 다리를 내밀었다.     


“근데, 윤지는 아까 무슨 말하려고 했어?”     


엄마가 물었다.     


“아니야. 치킨 맛있다. 엄마. 맥주도”

“좋다. 벌써 커서 나랑 맥주 친구도 해주고”


엄마는 조금은 홀가분해 보였다. 

어쩌면, 아빠의 결혼이 엄마에겐 미용실로 도망갈 만큼 무서운 이슈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일찍 결혼을 한 탓에, 아직도 너무 젊은 엄마가 볼이 빨개져서 윤찬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는 걸 윤지는 지켜봤다.

엄마는 어렸지만, 우리의 안전지대가 되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엄마도 무서운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숨고 싶을 만큼,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를 만큼...


어른의 시간은 어떤 것일까?

윤지는 쓰디쓴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어른이 되는 것이 조금은 두렵기도, 한편으론 기대가

되기도 했다. 

모처럼, 어울리는 머리를 하고 온 엄마와 사진을 찍어볼까?

윤지는 휴대전화를 꺼내 셀카모드로 변경하고, 엄마와 윤찬의 뒤에 섰다.     


“자, 볼하트”     


활짝 웃는 엄마의 머리에서 미용실 특유의 샴푸 냄새가 가득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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