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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박힌 사람

시 백오십사

by 설애

못 박힌 사람


김승희


못 박힌 사람은

못 박은 사람을 잊을 수가 없다

네가 못 박았지

네가 못 박았다고


재의 수요일이 지나고

아름다운 라일락, 산수유, 라벤더 꽃 핀 봄날

아침에 떴던 해가 저녁에 지는 것을 바라보면

못 박힌 사람이 못 박은 사람이고

못 자국마다 어느 가슴에든 찬란한 꽃이 피어나고 있는데


못 박힌 사람이

못 박은 사람을 잊을 수가 없듯이

못 박은 사람도 못 박힌 사람을 잊을 수가 없다

못 박힌 사람과 못 박은 사람만 있는 곳이 에덴의 동쪽


시는 그런 사람들이 쓰는 것

아픈데 정녕 낫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쓰는 것

못 박힌 아픔 가슴 움켜쥐고도

못을 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에덴의 동쪽에서 시를 쓴다


재의 수요일은 사순절이 시작하는 날, 재를 바르고 죄를 고백하여 용서를 구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에덴의 동쪽은 카인이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쫓겨난 곳이라고 하니, 에덴의 동쪽에서 못 박힌 사람과 못 박은 사람이 있는 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는 기독교가 아니라서 성경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는 않지만 어릴 적 간식과 문구류를 모으기 위해 교회에 잠깐 다녔던 적이 있어서 아주 모르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절에 다니고 있으나, 불심이 깊지도 않으니, 종교적 의미로 이 시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못 박힌 자는 예수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못 박힌 자는 아픔을 가지고 못을 빼지 않고 못 박은 자를 용서하는 자들이고요. 그런 사람들이 시를 쓴다고 하니, 시는 고통과 아픔에서만 피는 꽃인가요?


어제의 시인도 못을 소중히 하고,

오늘의 시인은 못을 빼고 싶지 않아하니.

시인이 못 박힌 사람들이라는 것은 인정해야겠습니다.


시인의 아픔이 세상의 용서가 되기를
시인의 아픔이 세상의 위로가 되기를
시에는 그런 힘이 있음을 믿기로 합니다.


설애가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시 한 잔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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