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화
"안 추워?""
"아직은 괜찮아."
".. 그래도 이거 입어. 날 저물면 쌀쌀하더라."
김주원이 슬며시 덮어주는 두터운 카디건은 저무는 날과 쌀쌀해지는 날씨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었다. 우리는 벚꽃동산의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 동산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한 어느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내 대학생활은 정차하지 않는 기관차 같았다.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해야 하는 성격이라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검열하기 바빴다. 비가 내리는 캄캄한 밤처럼 마음이 항상 눅눅한 기분으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문득 여유로운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근데 너는 갑자기 왜 도서관에 매일 출석체크하는 거야?"
"아, 군대를 갔다 와보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달까."
"응? 어떻게?"
"거기는 정글이야. 제대 후에 그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어. 내가 최고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너의 행복은 뭔데?"
"열심히 해서 성공하는 거지. 돈 많이 벌 거야."
김주원의 눈이 크고 또렷해졌고 그 안에 빨려 들어가 타 죽을 것만 같았다. 그의 올라간 입꼬리에서마저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내가 그리는 미래와 성공은 절벽에 내몰릴까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왔는데 너에게 성공은 네 행복과 직결되는구나. 생각해 보니 김주원은 항상 뭔가를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나와 도서관을 갈 때 외에도 개인 공부라던지, 교수님과의 면담이라던지. 친구들도 많아서 노는 것도 참 열정적이었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올 수 있을까 항상 신기하게만 봤었는데, 순수하게 본인 행복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 생각하니 새삼 부지런한 그의 행동들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불안한 절벽으로 나 자신을 밀어 넣는 건, 내가 아니었을까. 그처럼 행복하게 열정적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마음의 시커먼 구름사이로 빛 한 줄기가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찰칵.
묵묵히 탁 트인 동산을 바라보던 김주원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 뭐 해?"
"좋잖아. 이런 건 기록을 해야 기억에 남아."
이렇게 감성적인 면이 있을 줄이야.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자니 그가 민망했는지 나한테 손짓을 하며 물어봤다.
"같이 찍을래?"
"아, 됐어.. 예쁜 벚꽃 많이 찍어"
"윤솔도 예쁜데."
폭탄 같은 말을 던져놓고 휘적휘적 걸어가 버리는 그의 뒤태를 보며 멍하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소 능글맞은 건 알았지만 저런 말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날이 저물어 기온이 떨어진 건가, 갑자기 온몸에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순간적으로 김주원의 카디건으로 꽁꽁- 몸을 더 감싸던 와중 주머니에서 작은 막대사탕 하나가 떨어졌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맛이었다.
"나 이거 먹어도 돼?!"
사진사 빙의해서 멀리서 정신없어 보이는 김주원에 대고 냅다 외쳤다.
푸하하. 그는 짝짝이의 쌍꺼풀이 없어질 만큼 활짝 웃으며 내가 앉아있는 벤치로 다시 돌아왔다.
"너 먹으라고 넣어둔 거야. 사탕 좋아하잖아."
"그럼 감사히 맛있게 먹어야지."
"그리고, 너 손.."
발이 닿지 않는 유난히 높은 벤치 위에 앉는 바람에 신나게 다리를 흔들거리며 사탕껍질을 까고 있던 나를 두고 김주원이 갑자기 분주하게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인기 캐릭터가 그려진 대일밴드 세트였다. 금방 도서관에서 인쇄물을 보던 중 손이 베었었는데, 그걸 본 모양이었다.
"캐릭터 귀엽다. 이런 것도 가지고 다녀?"
"너랑 다니면 긴장을 못 늦추겠더라. 손 이리 줘봐."
사탕을 쥐고 있는 내 손의 새끼손가락만 조심스럽게 잡아서 핑크색 대일밴드로 감싸주었다.
습한 땅의 잡초 같은 나와 다르게 하늘에 떠있는 강렬한 태양과 같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김주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