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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잉오렌지 Mar 22. 2024

말없는 아이, 재치 있는 아이

두 개의 가면, 두 개의 본성

나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오랜 시간 동안 항상 '말없는 아이'였다. 친구가 없는 것은 둘째치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유치원 때는 무대에 나와서 단독으로 시집을 암송하는 시간이 있었고, 나는 무대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혼난 나는 복도에서 벌을 섰고, 어머니는 나를 조금 특이한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초등학교. 이때는 조금 말을 했다. 친구도 있었다. 이 시기의 나는 어디에나 있는 부끄럼 많은 아이였다. 어머니는 나를 어렸을  특이했던 아이라고 말씀하셨다.


중학교.


나는 말하는 법을 다시 잊어버렸다. 






나는 중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반 친구들과 얘길 하긴커녕 대답도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혼자였던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착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말을 못하는 게 아니었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무서웠지만, 뭐가 무서웠는지 몰랐다. 내게 말을 거는 낯선 사람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이 세상? 내가 입을 엶으로써 변화할 것들? 뭐가 무서운지도 모르고 그냥 무서움에 떨었다. 비합리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옛날 일이어서 내가 왜 그런 식으로 행동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당시의 나 또한 내가 그때 왜 그러고 있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자신이 행동하는 이유도 모르는 이유는 뭘까? 내가 나 자신의 감정도 모르는 이유는 뭘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은 왜 하고 있는 걸까? 왜 나는 항상 나도 모르게 생각에 빠져있을까? 왜 나는 생각이 많을까? 왜 나는 남들과 다르게 바로 잠에 들지 못할까? 



단서, 잿빛의 징후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을 해도 크게 즐겁다고 느끼지 못했고, 슬퍼하는 일은 더욱 없었다. 언제나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있느라 일상에 집중하지 못했고, 잠에 들기까지는 언제나 두 세시간씩 걸렸다. 어린 나이서부터 새치가 솟아나왔다.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갈 때는 긴장에 미친 듯이 배가 아팠다. 몸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딘가가 아팠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아픈 곳이 정확하게 어느 부분인지도 몰랐다.

 



나는 내 삶 자체에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내 행동에 대한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모든 것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랜덤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내 삶을 관찰하는 것 같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 자신에 대한 무수한 호기심을 안고 있었다. 부모님과 주변 친구, 세상의 불합리에 대해 따지기 전에 나는 나 자신부터가 가장 불합리하고 비합리적인 모순 그 자체라고 느꼈다.


나는 유치원에서 시집 암송 숙제를 시킬 때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부모님을 모아놓고 강당에서 영어로 발표를 시킬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떨지 않고 발표를 진행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겐 말을 잘 걸었지만, 학교에서 반 친구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무시했다. 왜 그랬을까?




어렸을 때는, 이러한 내 행동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탐구할 만한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그냥 나 자신이 한심했다. 상황대로 딱딱 움직여주지 않는 내 입을 저주했다. 비합리적으로 굴었던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나 때문에 상처를 입었을 수많은 다정한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나의 한심함으로 인해서 마음 고생을 할 부모님에게 죄송스러웠다. 무서웠다.


그런 것들이 내가 나 자신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었던 최초의 원동력. 




나는 중학교 시절, 영어 학원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변했다. 내 의지로 변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계속 무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도 내게 말을 걸어오던 한 착하고 유쾌했던 분위기 메이커 친구에게 끌려다니던 결과, 나는 학교와 학원에서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말없는 아이.

학원에서는, 재치 있는 아이.



거의 위장생활을 하는 급으로 순식간에 내 성격이 바뀌었고, 그것에 또 적응하고 몰입해서 '연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 연기가 내 생각보단 의외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는 것에 신기해했다.


학원에서 날 처음 만난 사람들은 내 '연기'를 보고 나를 말없는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내가 재치 있는 아이일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내 말없는 모습을 알고 있었던, 결국 나와 친구가 되는데 성공한 내 친구(이렇게 말해서 미안해)는 내 변한 모습을 보고도 날 놀리지 않았으며,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그 결과 나는 연기, 가식, 가면 등에 대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조금은 어린 나이에 가면놀이와 사회생활하는 법을 깨달아버린 나는, 곧 학교에서의 나와 학원에서의 나의 모습이, 모순되지만 전부 진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학교에서는 진심으로 말없는 아이가 되었고, 학원에서는 진심으로 재치있는 아이가 되었다. 마치 시스템처럼 체계가 잡혀있는 것 같이. 




그렇게 나는 가면놀이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말없는 아이, 동시에 재치 있는 아이. 둘 다 진실이라며 양쪽을 사랑하기 시작하자, 나는 이제 어느 가면우선순위에 있는지, 그것 자체를 구별하려고 하지 않았다. 


먼저 생긴 가면. 번째로 생긴 가면. 순서에 차이가 있을 나의 '성격'들이었다.



그렇게 양쪽의 가면을 긍정한 나머지, 점점 내 '본성'은 알 수 없는 개념으로 흩어져 사라져갔다. 



평생 바깥에 드러날 일 없이 숨겨져 있다면, 그게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유일하게 그 존재를 알고 있는 나마저 이를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언젠가는 드러나?


그 언젠가는 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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