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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여행자 Apr 30. 2021

하프타임, 잠시 쉬었다 갈께요.

쉼이 없는 나의 삶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들면서 누구나 인생에 대해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되는 걸까? 나에게 40이란 숫자는 그저 단순히 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30대 내내 일을 하면서 조금만 쉬자 정말 쉬고 싶다.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언제고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던 런던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진정한 자유란 그 누구로 부터 얻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얻어진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이고 그래야만 온전히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준 나의 정신적 안식처인 런던으로 언제고 비행기표를 끊어서 날아가고 싶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런던을 향한, 어쩌면 자유를 향한 나의 그리움의 크기만 커져갈 뿐이다. 그렇게 쉬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편히 쉴 수가 없었다. 내 몸 도 정신도 쉼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조차 내겐 사치였다.


 

@Pixabay



그도 그럴것이 나 뿐만이 아니었다. 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365일 쉬지 않고 일하시는 부모님을 포함해 나 말고도 주변에 너무 많았다. 내가 쉬고 싶다는 말은 그저 투정 정도로 치부되기 일 수 였다.



자유의지 Free Will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해 나갈 수 있는 "자유의지"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자유의지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얻어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내가 원하는걸 하기 위해 난 상대의 자유를 빼앗아야 할 수도 있고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몸도 지치고 정신적으로도 너무 많이 지친 어느 날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수건을 입에 물고 한참을 울던 날들이 반복되자 뭔가 정말 잘 못되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 인생이 정말 무언가 많이 잘 못 되었구나.


어느날 프리티 워먼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 “줄리아로버츠”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영화관에서 보게 되었고 여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를 보게 되었다. 난 영화를 보는 내내 여주인공의 깊은 감정선에 동화되었고 그렇게 영화의 첫 장면 부터 난 엄청난 몰입감을 가지고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의 성공한 작가였던 여주인공은 어느날 갑자가 이혼을 선언하고 1년동안의 여행을 계획한다. 이태리에서 4개월 인도에서 4개월 발리에서 4개월 총 12개월의 여행이었다. 여주인공 "리즈"는 그러한 여행을 계획하기 전 매일 밤 화장실에서 누구든 그게 신이든 아니든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면서 여러날 밤을 숨죽여서 울며 간절히 기도한다. 리즈가 이혼을 결심한 날 밤 화장실에서 소리없이 흐느끼며 울먹이던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거의 8년이라는 결혼생활동안 자신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조차 모르고 지나쳤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있었지만 애써 무시했었던 그녀는 그날밤 깨닫게 된다. 자신이 불행하다는 사실을... 그 장면속의 리즈의 흐느낌으로 어깨가 드러썩일 때마다 30 대 내내 나의 골방에서 수건을 입에 물고 흐느끼던 나약한 나의 모습이 데쟈뷰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영화의 장면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발리의 포춘텔러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가 정말 실화인지 아니면 작가가 스토리를 위해 가미한 픽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체구가 왜소하고 머리가 백발인 포춘텔러가 여주인공에게 해주었던 말처럼 이루어졌고 그녀는 마지막 여행지인 발리로 그 포춘텔러를 다시 만나러 가게 된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노인이 말한 대로 된 걸껄까? 아니면 그 노인의 말을 여주인공이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걸까? 가끔 궁금하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를 두 세개 드러내며 환한 웃음을 짓던 그 노인이 여주인공에게 한장의 사진을 주는데 그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다리가 네 개인 신의 그림이었다. 네 개의 다리가 상징하는 것은 발란스, 곧 균형을 잡기 위해서라고 했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균형을 잡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조금만 한쪽으로 기울어져도 균형이 모두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한 번 깨진 균형을 다시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우리 삶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듯 하다.



우리는 항상 행복할수도 항상 불행할 수도 없다. 어느날은 저 땅끝까지 떨어진 무거운 감정을 아무리 끌어올려보려 애써도 잘 안될 때가 있고 어느때는 너무 행복해서 날아갈 것만 같을 때가 있다.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 삶이란... 그래서 균형이 중요하다. 최대한 균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정도 균형을 유지해야 쓸데없는 감정소모를 줄일 수 있다. 기분이 우울하다고 해서 그 감정에 깊이 빠져 들어서는 안된다. 내 경험상 그런 날일 수록 슬프거나 우울한 감정의 영화나 노래는 멀리하고 아무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영화나 노래를 듣거나 충분히 잠을 자는 것도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던 어느날 교통사고가 났는데 아직도 그 때를 생각을 하면 몸이 떨려 온다.


그날도 여느날처럼 운전을 해서 일터에 가던 길이었다. 항상 가는 길이었는데 신호가 걸려서 멈추었는데 그 순간 "쾅"하는 굉음소리와 함께 내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쿵"하고 살짝 공중으로 몸이 붕 뜨떠니 다시 운전석으로 "탁" 순간적으로 사고를 직감했다. 전화를 해야 하는데 손이 떨려서 번호를 누룰수가 없었다. 눈물까지 막 "주루륵"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한 남자가 창문을 "쿵쿵" 하더니 갑자가 멈추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데 난 이미 다른 차원에서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순간 정신이 들면서 상황파악을 위해 나의 두뇌를 풀 가동시켰다. 난 분명 신호를 보고 멈췄고 갑자기 멈춘것도 아니었는데 상대방 운전자는 나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만들고 있었다. 전화기에 저장된 친오빠에게 전화하고 바로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고 보험사에서 도착하기 전에 움직이지 말라는 말에 움직이지 않고 차안에떨고 있었다. 혹시나 내가 일어나려고 하는데 못 일어나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한 건 보험회사 직원이 나에게 차안에서 나오라고 한 직후였다.


오빠와 보험사직원이 오고 알게 되었던 진실은 그 차가 랙카였고 정말 미친듯이 질주하다가 나의 차를 뒤에서 들이 받아버린 사건. 랙카 앞 부분은 완전히 찌그러졌는데 다행히 내 차는 뒤에 조금 푹 패이기만 한 정도 였는데 카센타 사장님이 말하길 내 차가 튼튼한 차여서 이정도지 다른 차였으면 완전 박살이 났을 거라고 하시는데 정말 하늘이 도왔다는 말은 이럴때 하는 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병원에 입원해 허리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그렇게 의도치 않게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그날은 난생 처음 자동차 사고가 난 날이기도 하지만 그토록 쉬고 싶었던 내 삶에 쉼표가 생긴 날이었다.


신기하게도 난 3일정도 입원 후 퇴원을 했고 그 날 이후로 몇 달은 통원치료를 받았지만 그 날의 그 사고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화위복이었을까..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삶인데 내가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살아왔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여주인공처럼 내가 불행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난 더이상 그런 상황을 지속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난 이제 더이상 수건을 입에 물고 혼자서 흐느껴 울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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