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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시원 Jan 22. 2024

나의 가치를 처음 인정받았던 하루

자영업자 생존기

오늘 이른 아침부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아마도 일 전화인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다행히도 일찍 일어나 분주히 움직인 탓에 매장에 1시간 이른 출근을 해 있는 상태였다.

"여보세요"

나는 기쁘지만 차분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지금 문을 열 수 있나요?"

"네, 지금 가겠습니다"

나는 고객에게 주소를 물어본 뒤 장비를 챙겨 출발했다.

이른 아침부터 개문이라니... (개문은 흔히 열쇠업자들 사이에서 문을 여는 일이라는 뜻이다.)


지금 나에게 전화 한  고객 역시 자영업자이다. 그런데 출근해 보니 매장 열쇠를 잃어버려서 문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제시간에 문을 열지 못하면 그날 하루가 꽈배기 꼬이듯 꼬인다. 같은 동류의 마음이랄까...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던 탓에 서둘렀다.


10여분 남짓 거리에 있는 고객에 매장에 도착했을 때 나를 기다리는 고객의 모습은 초조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객의 매장은 음식점이라서 제시간에 손님을 받아야 했다. 나는 장비를 챙겨 생각보다 빠르게 문을 열어 주었다. 그제야 고객은 초조했던 마음이 가라앉는 듯 보였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마음이 뿌듯 한건 뿌듯한 거고 나는 개문에 대한 나의 가치를 고객에 말하였다.

"3만 원입니다"

그런데 고객은 나의 말을 듣자마자, 출장비가 왜 비싸냐며

"1만 원만 받으세요"

그렇게 조금 전 초조했던 고객은 내 앞에는 나의 가치를 마음대로 정하는 고객이 되어있었다.

나도 그 고객을 말을 듣는 순간 도움을 주었다는 뿌듯한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고객에 대해 나의 가치를 설명해야 했기에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기본 출장비가 3만 원이라서요"

"그렇게는 안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고객은 완고했다.

"저쪽에 있는 매장 사장님 소개로 했어요"

"그냥 만원만 받으세요"

고객은 누군가의 소개를 이유로 만원을 받아야 하는 것에 대해 나를 이해시키려 했다.

나는 기본을 깎으면 안 된다며 3만 원을 꼭 받아야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럼 이것만 받으세요"

고객은 지갑을 열더니 2만 원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그 모습에 언성을 높였다.

"사장님, 기본을 깎으시면 어떡해요?"

고객은 이것밖에 없다며 막무가내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들고 있는 만원 두장과 오천 원 한 장 그리고 천 원 한 장을 보여주었다.

"얼마 전에도 다른 사람한테 2만 원에 열었어요"

"그리고 가까운데 그냥 2만 원만 받아요"

고객은 여전히 이상한 논리로 나의 가치를 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고객의 모습에 인상을 구길수밖에 없었다.

"그럼 사장님, 제가 사장님 가게에서 식사를 한 뒤에 '오천 원밖에 없으니 오천 원만 받으세요' 라면 어떨까요?"

"그리고 다른 매장은 오천 원인데 사장님은 왜 만원을 받으시나요? 저희 집과 가까운데 장사하면서요"

"라고 하면 어떨 것 같나요?"

나는 더 이상한 논리를 앞세우며 말했다.

하지만 고객은 이런 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그 고객으로 인해 나의 하루를 망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는 고객이 내미는 2만 원을 낚아채고는 그 고객의 매장을 나왔다. 그리고는 여긴 다신 오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23년 차 열쇠 자영업을 하면서 이따금 오늘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직업성의 특성일까? 사람들은 열쇠업을 자신보다 밑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기술직이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런 일들 때문에 이따금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내가 23년을 하면서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오늘 이 고객은 그 고객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8년 전 무더운 여름에 일이었다. 한 남자가 개문 요청의 전화가 들어왔다. 나는 평소와 같이 장비를 챙기고 고객의 집에 방문을 했다. 그런데 고객의 모습이 좀 이상했다. 고객은 팬티와 하얀색 러닝셔츠를 입고 있었다. 한 손에는 휴대폰과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이 들려있었다. 고객은 내가 올라오자 한숨을 푹 쉬며, 자신이 신문을 가지려고 밖에 나왔는데 문이 덜컥 잠겼다고 말했다. 참으로 웃픈 상황이었다.


열쇠업을 하면 공통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이 일도 얼마 전 친한 열쇠업을 하는 사장님이 말한 것도 똑같은 일이었다. 그때 나는 너무 재미있는 일이라면서 웃었었다. 하지만 막상 웃픈 상황에 놓인 그 고객을 보고 있으니 개문을 빨리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나의 바람처럼 1분도 안되어 개문을 할 수 있었다. 그 고객을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왔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개문 비용을 말하자 고객은 버럭 화를 냈다. 나와 조금 언쟁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와 오천 원을 내밀었다. 내가 거부하자 그 고객은 내 얼굴을 향해 오천 원을 던졌다. 나는 몹시 모멸감을 느꼈다. 하지만 고객의 태도로 보아 더 이상 나의 말이 통하지 않음을 말수는 있었다.  


나는 처음 당해본 일이라서 당황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오천 원을 바라보았다. 나는 자존심을 구기며 집으라는 한 편의 이성을 뿌리치고 현관문을 나섰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본 고객은 자신이 던진 오천 원을 줍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마음의 화산이 폭발하였다. 나는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사장님 손잡이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잠깐만 나와보시겠어요"

라고 말하였다.

고객은 자신의 현관문이 이상하다고 하자 의심 없이 밖으로 나왔다.  고객이 자신의 현관문을 나서는 모습에 나는 빠르게 현관문을 다시 잠갔다. 그리고는 말없이 장비를 챙겨 내려왔다. 내 뒤로는 고객의 당황하는 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뒤를 돌아보지도 현장에서 벗어났다.


그 후에 일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고객은 나를 부르기 전보다 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고객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고객은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을 해야 한다. 이때 어쩔 수 없이 팬티와 러닝셔츠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그때 나의 이 행동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때를 돌이켜 보면 그 고객의 행동에 나 자신에 대해 자책하거나 실망을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내가 하는 일 모두 그런 일들만 벌어진다면 나는 벌써 열쇠일은 폐업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모든 고객들은 나의 일에 대한 정당한 가격을 인정해 주기에 나는 지금도 열쇠업을 하고 있다.


3년 전에 일이다. 이번 일은 처음에는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다가 나중에 인정해 주었던 일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한 젊은 고객이 전화가 왔었다. 이 역시 개문의 일이었다. 자신의 집 안방문이 잠겼는데 열어줄 수 있냐는 전화였다. 나는 흔쾌히 그럴 수 있다고 하였다. 그 고객은 지금 퇴근 중이니 오후 5시 30분에 집으로 와달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노라 말한 뒤 그 고객이 불러준 주소를 적었다. 5시 15분이 지나고 나는 고객과 약속시간을 이행하러 매장문을 나섰다. 10여 분 후 고객의 집에 도착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혹시 몰라 문도 두드려 보았지만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후 나는 고객이 올 때까지 10여분을 기다렸다. 하지만 고객은 나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고객은 10여분이면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나는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오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지 않는가?  그런 이유로 10여분은 고객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 고객은 1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지금 고객님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고객은 말했다.

"아 그래요, 그런데 어쩌죠 차가 막혀서 아직 고속도로입니다"

아 이럴 수가 아직까지 고속도로라니...

"늦을 것 같으시면 전화를 다시 주시면 되는데..."

라며, 나는 볼맨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고객은

"아 제가 차에서 깜박 졸았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고객에게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그럼 언제 다시 방문드릴까요?"

라며 제차 물었고 고객은 1시간 후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매장에서 그 고객과의 약속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얼마 후 고객과 약속시간을 조금 남겨두고 매장 문을 나섰다. 그때 그 고객이 전화를 걸었다. 나는 다시 약속시간을 변경하려나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안 오셔도 될 것 같아요"

"키를 찾았습니다"

고객의 말에 나는 허탈했다. 두 시간 남짓 고객의 약속시간을 지키려 기다렸던 것에 대한 마음이었다. 나는 고객에게 말했다.

"그럼 3만 원 입금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객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무슨 돈이요"

"사장님이 아무것도 안 하셨는데요"

예전 같으면 이런 고객의 반응에 언성을 놓이며 대응하겠지만 산전수전 겪은 내가 아니던가?

나는 차분히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이 없다니요?"

"나는 분명히 약속시간에 고객님 집에 방문하였고 거기서 15분 남짓 기다렸습니다"

"출장비는 주셔야죠"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고객 역시 자신의 논리를 펼치며 말했다.

"출장비요?"

"네 출장비요"

"아니 사장님, 저의 집과 가까운데 있는 거 아닌가요?"

"잠시 왔다 간 건데 그렇게 받으시면 안 되죠?"

이 고객 역시 나의 가치를 자신이 정하였다.

"왜요? 기본 출장비인데요?"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비싼 거 아닌가요?"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저희 집까지 3만 원이 안 나와요?"

우리는 서로의 논리에 언성이 높아져 있었다.

"어떻게 내 일을 택시와 비교를 하나요?"

"제가 고객님에게 투자한 시간이 40여분 되거든요"

"헬스 개인 PT 1시간에 8만 원 이거든요. 40분이면 6만 원 정도 하겠네요"

"그리고 골프 래슨은 30분에 5만 원이거든요"

"고객님 논리대로라면 저는 고객님에게 6만 원을 받아야겠네요?"

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고객은 다른 논리로 말하였다.

 "저희 집과 가깝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네 10여분 거리에 있습니다"

"동네에서 그러면 안 되죠"

이번에도 나는 고객의  논리에 맞대응하였다.

"고객님의 논리대로 라면 집 근처 편의점은 다른 편의점 보다 싸겠네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당황한 고객은 그건 자신의 상황에 맞지 않은 거라 말했다.

나는 길어진 서로의 논리에 지쳐있었다.


사실 정말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하자면 그만이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가치를 생각하면 이대로는 넘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줄 생각 없는 고객에게 더 이상 내 가치를 설명하긴 싫었다.

"고객님, 이상한 논리 하시지 말고,  주기 싫으면 주기 싫다고 말하세요"

"저 거지 아닙니다"

"가치를 왜? 고객님이 마음대로 정하세요?"

"저는 고객님에 대한 충분히 제가 할 도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줄생각 없으시다면 이만 끊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돈을 받지 못한 것보다, 오늘은 정말 나의 가치를 고객에 말한 것에 홀가분하였다. 한 달에 서너 번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더 이상 나의 가치를 고객이 정한 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을 결심 덕분이었다.


그렇게 일이 일단락되었다. 나는 매장문을 닫고 오늘 하루를 끝내려 했다. 그때 다시 한번 그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처음에 나는 받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가치를 말했으니 내가 피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사장님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통장번호 불러주시면 제가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뜻밖이었다. 나는 고객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나에 대한 원망을 할 줄 알았다. 나의 가치를 처음 인정받은 터나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 , 네 "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언성을 높여 정말 죄송합니다"

라며 나의 잘못을 고객에게 사과를 하였다.

고객도 자신의 입장만 생각했다며, 고생해서 오신 사장님의 수고를 생각하지 못한 것에 사과를 하였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의 가치를 인정받던 날 나는 내 직업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아니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누구나 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만든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가치 대부분은 상대방에 의해 정해진다. 이는 더 이상 문제를 키우기 싫은 마음에 내 가치를 상대방의 정한 가치로 인정하게 된다. 그것으로 오는 문제 역시 오롯이 자신이 감내하면서 말이다. 회사원들은 능력으로, 음식점은 음식맛으로, 나와 같은 기술직은 기술로 우리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지금도 나는 오늘과 같은 일이 일어나면 괴롭다. 정작 물러서야 하는 건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의 가치를 그냥 상대방 마음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오늘 일이 비록 그러했다. 하지만 오늘 일은 조금이라도 나의 가치를 그 고객이 생각한 시간으로 만들었다고 나는 자부한다. 그것으로 나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가치는 자존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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