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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나는 어떤 용도의 집이 필요한가?

by 꼬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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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농막? 세컨하우스? 주말주택을 부르는 말들

보통 기존의 전형적인 분류는 농막, 이동주택, 세컨하우스처럼 고리타분한 이름이 흔하다.

나는 농막도 만들고 건축허가로 설치하는 이동주택도 만들지만 '농막'이란 단어는 선호하지 않는다.

기존의 구분으로 보면 농막이 맞겠지만 그보다 더 적절한 단어는 없는 걸까?


요즘 사람들이 대체로 원하는 것은 캠핑이다.

캠핑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설렘을 준다.

캠핑은 돈 내고 사서 고생하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자연과 가까워지고, 안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농막이라는 단어는 마치 그곳에 가서 죽도록 일만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름 자체가 다른 행위를 허락하지 않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2. 집을 짓기 전에 고민해야 할 것

내가 새로운 집을 설계할 때 가장 큰 기준은 이 집을 그릴 때 설렘이 있는가?이다.

도면을 그릴 때부터 두근두근한 설렘이 있어야 집을 완성할 때까지 그 형태가 유지되고 더욱 견고해진다.


내가 지금까지 설계를 하면서 설렘을 느꼈던 단어의 조합은 캠핑 같은 집, 놀이터 같은 집, 단절된 은신처, 창작을 위한 오피스이다.

모두를 모아서 창작을 위한 단절된 은신처에서, 캠핑처럼 방해받지 않고 놀고 생산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겁기 때문에 내가 설계하는 집들에는 그런 요소들이 숨겨져 있거나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위의 바람은 나의 바램이고, 모두가 같은 모습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개성만큼이나 주말주택에 대한 바램도 다양하다.

창고처럼 짐을 보관하고 부담 없이 거칠게 사용할 거라면? → 컨테이너도 좋은 선택지이다.

휴식도 하고 충전해서 새로운 생산적인 일을 할 계획이라면 그 부분만큼은 아낌없이 투자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기준 없이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집을 갖고 싶어서 짓는다면? 그건 목적이 불분명한 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이 공간에서 나는 어떤 경험을 하고 싶은가? 이다.

그 고민에 충실하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집이 탄생한다.


'농막', '체류형 쉼터'라는 단어 자체는 단순히 공무원이 정한 행정적 분류일 뿐이다.

농막은 6평 범위 내에서 지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한 형태이고,

체류형 쉼터는 10평까지 가능한 또 다른 형식일 뿐이다.

이것들은 장르가 아니라, 형식적인 분류 방법에 불과하다.


우리는 6평 범위 내에서 지을 거라면 농막이라는 쉬운 선택지가 있고,

조금 더 크게 짓고 싶다면 건축허가 없이 밭에 놓을 수 있는 체류형 쉼터라는 새로운 옵션이 생긴 것이다.

집의 용도는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고, 위의 글처럼 내가 정의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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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설렘을 주는 나만의 개념

앞서 캠핑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나는 '캠핑'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나는 쾌적한 곳이어야 편하게 잘 수 있다.

캠핑은 낭만적이고 평소 사용하지 않는 캠핑용품을 다루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잠을 편하게 자야 다음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저 멀리서만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캠핑 같은 집'을 만들어보았다.

캠핑은 자연과 맞닿아 있다.

텐트의 투명 비닐창 너머로 울창한 숲과 낙엽을 보고, 그 앞에서 숯불에 고기도 구워 먹고 야전침대를 놓고 잠이 든다.

이런 장면을 떠올리며 텐트 같은 집을 만들어보았다.

왜 그동안 텐트 같은 집은 없었을까?

나만큼 쾌적한 야영을 간절히 바란 사람은 아직 없었나 보다.


이렇듯 기존의 사례에서 참고할 것이 마땅찮다면?

다른 제품이나 개념에서 원하는 모습을 따올 수 있는 것이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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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말주택은 나를 닮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쭉 나열해 보자.

나는 책 보는 것을 좋아한다.

쾌적하게 책을 보려면 따갑지도 너무 밝지도 않은 바깥도 아니고 안도 아닌 곳에서 적당한 조도가 필요하다.


주말아침에는 공복에 마시는 커피를 좋아한다.

창 너머 부서지는 햇살, 커피 수증기가 부드럽게 피어오르는 순간

그 빛이 확대되어 보이는 걸 한참 바라보는 시간을 좋아한다.


퇴근 후, 어스름한 시간.

이미 다 본 미드를 다시 보는 걸 좋아한다.

프로젝터를 벽에 비추고 익숙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는 것. 그 순간이 가장 편안하다.


이 요소들을 차곡차곡 모으면 자연스럽게 내가 머물고 싶은 집이 된다.

이 모습들을 떠올리며 하나씩 배열을 다듬어보면 집을 어느 방향에 놓을지, 최소크기는 어느 정도면 충분할지, 무엇이 필요하고, 필요 없을지 조금은 선명해진다.


평소 일상을 사는 집과 달리 주말주택은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것이다.



5. 정리해 보자.

남들이 정한 기준 안에서 그리면 그 결과도 뻔하다.

나에게 주는 선물을 굳이 남들과 비교하고 똑같이 만들 필요가 있을까?


어디서 누가 알려주지 않는 농막과 체류형 쉼터의 가장 큰 장점은

건축허가 기준에 부합해서 짓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유도가 높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날로그 한 나무문을 직접 목공으로 만들어도 된다.

창문 역시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


건축허가 절차대로라면

문과 창호가 열관류율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농막과 체류형 쉼터를 그저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지을 수 있는 집으로만 상상한다.


사실 이 둘은 해석의 여지가 충분한 집이다.

농막과 체류형 쉼터는 쉽게 생각하는 저렴한 집이 아니라, 나만의 감성과 개성을 담은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제도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주말주택을 남들이 정한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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