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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Dec 16. 2020

유치원생에게 하느님이란?

천주교 유치원을 다닌 두 아이의 궁금증

우리 부부의 종교는 불교이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남편은 무교이고, 나는 나이롱 불교 신자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수녀님들이 직접 운영하는 천주교 유치원을 다닌다.  아이의 종교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게 맞다는 정당성을 빌미 삼아 가장 평판이 좋은 유치원을 보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냉철한 아빠에게 과학적 사실들에  대해 세뇌가 된 첫째와 달리, 둘째 아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하느님을 자연스레 받아들인 듯했다.

그리고 천주교 유치원이라고 하느님의 말씀만 전달하는 것은 아니니 그리 걱정할 일도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유치원 버스에서 내려 놀이터로 향하는 길이었다.

개천절이 다가오자, 유치원에서 단군신화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었는지, 아이는 환인과 웅녀의 이야기를 신나게 이야기해주었다.

"아이고, 호랑이가 조금만 더 참았으면 좋았을 텐데... 곰이 인내심이 아주 강하네!"

하며 나는 몰랐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내 반응에 신나게 단군 이야기를 마친 아이가 뿌듯해하며, 질문을 던졌다.


"엄마, 그러면 개천절도 하느님이 만든 거예요?"

하, 하느님이 만든 거냐고? 음......


천주교랑 대종교의 대결이 하필이면 아파트 놀이터에서 펼쳐지다니!

차라리 곰이나 호랑이를 하느님이 만들었다고 물어봤다면 좋았을 텐데...

서로 다른 종교인데, 하느님이 만들었다고 하는 것도 아이러니였다.

이건 엄마보다 선생님이 더 잘 아시니까, 유치원 선생님께 한 번 여쭤볼까?

지금도 둘째 아이는 하느님을 아주 잘 믿고 있다. 이따금 내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아주 바람직한 천주교 유치원생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둘째보다 믿음이 약했던 첫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엄마가 나중에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잖아요? 그럼 그때 내 꿈에 나와서 하늘나라에 진짜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주세요!

왜? 하느님 말씀 안 듣다가 지옥 갈까 봐 무서워서 그래?


네, 하느님이 없으면 지옥도 없을 거잖아요!


와우, 생각도 못했던 질문이다. 저 질문에 대답하려면 나는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저런 난감한 질문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천주교 유치원에 아주 만족해하며 아이를 보내고 있다. 저 질문들의 답은 결국 내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크면서 스스로 답을 찾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아이가 우리 부부와 다른 종교를 가지더라도 그건 아이의 몫이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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