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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dhi kim Jun 10. 2024

전국에 강한 자기장을 찾아다니다

-함께 다니는 동반자들과 함께-

히말라야에서 돌아온 이후, 그 2 명의 직장인들은 주말이면 준희가 근무했던 지역으로 찾아왔다. 강한 자기장을 찾아 에너지를 받기 위한 여정에 동참하는 것이다.


준희는 이제 가보지 않고 지도에서 지역명을 보면 금방 얼마나 에너지가 강한지 아니면 수맥인지가 구분되어 느낌이 왔다. 그것은 그냥 막연한 느낌이라기보다는 강하게 온몸의 내외부 감각이 반응하는 것이었다.


지도 놓고 찾으며 1박 2일이나 혹은 2박 3일의 일정으로 전국을 찾아 돌아다니며 에너지 수급?을 받았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이 든든하게 단백질을 먹어야 더 강한 느낌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절약정신으로 고기와 김치 그리고 밥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가 되었다. 밥솥과 가져온 김치 그리고 어디 가나 있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 와 구워 먹으면서 다녔다.

 

한 번은 강원도 지역으로 가기로 했다. 지도에서 아주 강한 곳이 있어 찾아갔더니, 거기가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 밑에 있는 하천이었다. 마침 가뭄으로 물이 바싹 말라 있었다. 거기에 낚시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예상대로 몹시 강했다. 다리 위로 지나던 사람들 그리고 지나는 버스 안에서도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며 쳐다보는 웃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도 한참을 민망해하며 웃었다. 그래도 함께 할 동반자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고 위로가 되는지 준희는 뿌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는 책이나 신문을 들고 있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하천 같은 웃지 못할 장소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올 해가 노무현대통령 서거 15주기라고 한다. 그날이 지금도 선명하다. 우리가 지리산 강한 에너지 장에서 함께 하기로 한 날이었다.  한 사람이 사정이 있어 다음날 왔다. 오전에 헐레벌떡 들이닥친 그가 한 말이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하셨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다. 막 퇴임한 젊은 대통령께서 돌아가신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냐는 것이다. 당시,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준희는 그저 젊으신 대통령의 죽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언젠가 브런치에도 글을 썼지만, 세월호 참사 이전까지는 정치라는 영역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해마다 노무현대통령의 서거일이 방송에서 나오면 그때 그 지리산에서 소식 듣고 놀라워했던 순간이 늘 떠오른다. 벌써 15년이 흘러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세월호를 계기로 준희는 사람이 '무지하다'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느 분야 어느 영역에서든지 스스로가 그 분야를 몰랐다면 그야말로 '무지몽매'한 그들의 결정과 판단이 곧 큰 '죄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결정적인 실례는 우리 일상에서 늘 마주하게 된다. 대통령 선거가 그렇고 국회의원 선거가 그렇다. 매체  기사등 어디에나 붙는 댓글이 그렇고 타인에 대한 비난이나 비하가 그렇다. 더욱이 기자라면 그 영향력이 남보다 큰데 많은 기자들의 '무지?'로부터 수많은 왜곡 기사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정말로 '죄악'이 아니고 무엇인가를 절절히 실감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대통령의 너무나 인간적인 그리고 그의 정치적 꿈이 실현되었다면 왔을지도 모를,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동등하고 평등한 사회를 상상한다. 만일 그때 준희에게 그런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정도로 그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분야가 아니어도 존중과 호기심을 가지는 습관-  


준희는 세월호라는 참사를 계기로 인간이 관여하는 모든 문화를 우리 각자가 다 잘 알 수는 없으므로 절대로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전문가 층에서도 자신의 영역이 아니면 함부로 무시하고 비하하는 일이 허다하는 것을 준희는 그동안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럴 때마다 준희는 왜 한국은 학문영역에서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없는가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제발, 각 영역의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공과 연관된 타 영역에 호기심을 가져 봐라. 그 안에 무수한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할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자신의 영역이 그 모르는 세계와 연계되었을 때 어떤 엄청난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단언하건대, 이렇게 나오게 되는 결과는 노벨상으로 연결될 것이다. 중국에서 몇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끈질기게 반복적으로 조상대대로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장인정신이 오늘날 동양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만들어 낸 것도 말이다.


준희는 한국인들에게 뿌리 박혀있을지도 모르는 사대주의, 그러니까 제 것 보다 남의 것을 더 숭상하고 좋게 보는 정신이 학문의 영역도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자기 것의 소중함 보다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의식에서 새로움에 도전하기보다는 있던 기존 영역을 숭상하고 숭배하는데 한 생을 바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새로움에 도전하는 노벨상 같은 것은 아예 꿈도 못 꾸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2016년에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을 계기로 온통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로 집중되던 시기였다. 이듬해, 한국에서 관련 학회를 하는데 발표 내용들이 거의 인공지능시대 4차원영상을 더 잘 보기 위해서 어떤 기기들이 나와야 하는가 혹은 만들어져야 하는가 혹은 머리에 쓰는 안경을 어떻게 하면 불편을 최소화해야 하는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마치 미국에서 만들었다는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에 충성? 하는 것 같은 목록 일색이었다. 인공지능시대에 과연 인간의 인지능력은 어떤 대비가 있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준희는 새로 생긴 동반자들과 다니는 동안에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그리고 준희의 실험은 계속되었다. <명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환자가 나올 때마다 스크린 하면서 몸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의 변화를 일종의 데이터로 축적시켜 나갔다. 그러면서 또 다른 실험에 들어갔다.


뉴스에서 나오는 사람들, 사기꾼 등 나쁜 짓을 했다는 사람들 그리고 재벌 등 돈 많은 사람들 그리고 피아니스트 등의 예술가들을 스크린 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을 스크린 했을 때 준희의 몸에 어떤 변화가 오는 가였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들 각각의 특징이 몸에서 각각 달리 시그널을 주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분 들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준희도 그랬다. 직접 사람들에게 말해도 전혀 믿지 않으면서도 실험 결과, 준희의 말이 맞으니 그때부터는 일종의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치부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마치 점쟁이를 대하듯이 이것저것 자신들의 일을 물어오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한국인의 특징이 아주 잘 나타난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나고 질문하는 대신에 열심히 너도나도 준희가 얻은 결실을 줍줍 하기 바빴다. 너도나도 자신들에 대해 어떠냐고 묻는 것이다. 자신들이 사는 집이 어떤가 자신들의 몸건강은 어떤 가 등등.


 반면에 아예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곁눈질도 안 하는 사람도 보았고 또는 전화통화였는데, 노발대발 격노하며 어디서 감히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극도의 흥분으로 그가 지키고픈 영역을 상처 낼 사람쯤으로 여기며 자신의 것과 연계시킬 생각조차 않는다. 그 모두가 누구라고 하면 금방 알 수 있는 각 영역의 전문가 들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마치 물에서만 살 수 있는 물고기와는 달리, 모래사장도 거닐 수 있고 물속에서도 살 수 있는 거북이가 해변의 멋진 모습을 물고기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절대 이해불가한 것과 똑같은 이치다. 물속에서만 사는 물고기는 해변이라는 단어조차 가늠할 길이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호기심이 일어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파보는 것이 바로 인간의 가장 고귀한 가치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물고기가 아니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마치 물고기처럼 하지 않으려고 하니 답답한 일이다.  


그냥 자신이 모른다고 싹을 잘라버릴 것이 아니라 무한한 호기심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 호기심에  장인정신이 덧붙여지면 마치 주사위가 쏘아 올려진 것처럼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이 바로 노벨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의 새로운 연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준희에게 이런 일들이 왜 가능하게 된 것인가 하는 의문은 바로 뇌의 영역이라는 것을 비로소 준희는 거의 10여 년을 지나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준희의 뇌에 이름만 들어도 스크린 할 수 있는  그녀 만의 길이 뇌에 열렸기 때문이다.


 준희는 자신의 끊임없는 도전이 장인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장인정신으로 늘 도전하며 하나하나 열어나가는 미지의 세계를,  각고의 노력으로 얻어낸 귀한 결과를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강력한 바람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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