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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편안 Jan 04. 2021

같은 길인데, 왜 출근길만 힘들죠?

<시에 인생을 담다_출퇴근길>

회사로 가는 길에 있는 나무는 늠름하고 굵직한 자태를 뽐내며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에 서서 사람이 태어나고, 길을 걷고, 죽는 것을 바라봤다. 내가 다니는 길도 나무의 벗이 되어 오랫동안 사람들을 이끄는 길잡이였다. 개발 여부에 따라 사라지는 것을 빼면, 같은 장소에서 달라지는 건 사람뿐이었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도 어디로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그 길로 다니는 마음마저 달라졌다.


나는 일하러 갈 때와 올 때 마음이 너무 달랐다. 모두가 그렇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로 가는 길이 힘들었다. 특히 물 한 방울 닿기 싫은 추운 겨울은 더 심했다. 그저 뜨끈한 전기장판 위에 요리조리 몸을 돌려대며 불판의 오징어처럼 굽히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랴. 사고 싶은 건 많고, 내야 할 돈은 더 많은 것을...... 그래도 다행인 건 같은 길이라도 돌아올 때는 집에서 보낼 짧은 휴식이 떠올라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며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었다.




나의 하루는 핸드폰에서 울리는 모닝콜로 시작된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어느 집에서 소리가 나나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베개 솜에 얼굴을 푹 박지만, 그 소리는 끈질기게 울린다. 문득 익숙한 소리네 하는 생각이 잠이 덜 깬 의식을 비집고 떠오르면 이내 손을 뻗어 핸드폰 알람을 끈다. 그리고 민망함에 투덜거린다.


"매일 들어도 모닝콜은 익숙해지지 않아."


화장실로 어기적어기적 걸어가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흠칫한다. 자면서 누구와 한바탕 한 것인지 왼쪽으로 솟구쳐 있는 머리와 홀라당 사라진 앞머리, 베개 자국이 찍힌 볼때기는 바로 고개를 내려 세면대에 인사하게 한다. 긴 머리를 감고, 어푸어푸 세수하고, 스킨과 로션을 대충 바른 후에 다시 거울 앞에 선다. 아까보다는 몇 분 봐줄 만한 얼굴이 된 것에 안심한다. 미백 파우더를 퍽퍽 두드리고, 빨간 립스틱을 쓱쓱 바르고 작은 원룸을 나선다.


마지막으로 일한 회사는 가는 길부터 향기로운 꽃과 싱그러운 나무가 많고, 길을 따라 강변도 쭉 흐른다. 그래서 오고 가는 길에 놀고 있는 고양이를 자주 만난다. 사랑 가득한 눈으로 나만 손을 내미는 반쪽 대화이지만, 가끔 내가 안쓰러운지 다가와 주는 귀염둥이가 있어서 행복하다. 때론 강변에 둥둥 떠 있는 오리와 학, 산책 나온 몽실한 강아지도 만날 수 있다.


퇴근길에는 자연과 동물이 모두 친구처럼 보이는데, 꼭 출근길에 보면 나와 달리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되니까 조금 부러워 보인다. 어찌 이리도 마음이 다를까.


특히 버스에 올라타면 눈높이가 맞아서 줄지어 선 나무들이 더 풍성하게 보인다. 잠시 바라보다가 갑자기 아침에 몸을 움직인 탓에 계란 프라이처럼 의자에 푹 퍼진다. 괜히 푸르른 나무와 누런 내 모습이 비교되는 것 같아 마음이 뾰로통하다. 나무는 자기 자리에 서서 아름다운 죄 밖에 없는데 나만 난리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던 출근길에 버스를 타고 나무를 보는 데 시가 쓰고 싶었다. 역시 마음은 멋대로다. 이 시에는 출근하기 힘든 마음을 담았다.


이런 느낌이었지만, 내가 본 나무는 도롯가에 있었다.

<나무와 출근길>


나아갈 힘없어 털썩 주저앉은 버스 안

같이 멈춰 선 나무가 안쓰러워 바라보니

이내 부르릉 걸을 준비를 한다


나를 제치고 가는 거 같아

부러움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도

떨림으로 전달되는 나무 발걸음


이제는 가야지 삐거덕 일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멈추는 못된 나무


나랑 안 맞아, 정말 안 맞아!

투덜대며 걸어가는 출근길




"같은 길인데, 왜 출근길만 힘들까?" 그건 자연이 갖지 못한 마음이 사람에게 있어서다. 한결같은 아름다운 자연이 좋지만, 자꾸 변덕을 부리는 우리의 마음도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이 품는 감정 덕분에 우리는 글과 노래, 춤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니까. 나는 글을 선택해서 시를 썼지만, 다른 날에는 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괴상한 춤을 출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당신도 함께 추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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