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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씨의 詩詩하게 살자(273)

제273편 : 문정희 시인의 '흙'

by 나무 위에 내리는 비 Feb 18. 2025

@. 오늘은 문정희 시인의 시를 배달합니다.


           흙
                     문정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오늘은 좀 추운 사랑도 좋아](2022년)

  #. 문정희 시인(1947년생) : 전남 보성 출신으로 여고 때부터 문재(文才)를 드러냈으며, 동국대 재학 중인 1969년 [월간문학]을 통해 등단. 여자들의 사소한 일상을 부드럽게 풀어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데, 현재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을 맡고 있으며 동국대 석좌교수로 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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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나누기>

  땅은 인류의 터전이며 뿌리며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어서, 동양이든 서양이든 땅(흙, 대지)은 여성신으로 표현됩니다. 즉 서양 신화의 ‘가이아’와 ‘텔루스’, 중국 신화의 ‘여와(女媧 : 복희 씨의 아내)’와 우리나라의 ‘마고할미’ 같은 대지의 신들은 여성입니다.
  한자 어원을 살펴봐도 ‘땅 지(地)’는 ‘흙 토(土)’자와 여성 상징의 ‘어조사 야(也)’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거기에 오늘 시인은 땅이 여자임을 우리말로 풀이했습니다. 즉 한(恨)에 맺혀 울 때 ‘흑 흑 흑’ 하고 우는 소리가 ‘흙 흙 흙’에서 나왔다고.

  시로 들어갑니다.

  “흙이 가진 것 중에 /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어떤 사물이든 자기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존재 의미를 가진다고 김춘수 시인은 「꽃」이란 시에서 묘파했지요. 오늘 시인은 ‘흑 흑 흑’ 하며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흙 흙 흙’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흙 흙 흙’ 하고 부를 때마다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이 차오르고 두 눈이 젖어온다고.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흙이 새명의 태반이며 귀의처임을 화자는 모른다고 했는데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 도공(陶工)이 밤낮으로 흙을 주물러서 달덩이 같은 항아리를 빚는 걸 보았고, 땅에다 한 줌 씨앗 뿌리면 수확철에 곡식이 들어옴도 보았기에.

  "흙의 일이므로 /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농부가 거름 주고 씨 뿌리고 풀 베고 그리하여 수확하게 되지만 그걸 자신의 덕으로 여기지 않고 땅의 은덕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늘 말하지요. '내가 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네. 하늘에서 물 주고 땅에서 받아들여 키운 걸 난 그저 거둬들이기만 했네.'라고.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이 부분에서 시인이 한 번 더 강조합니다. 흙이 가진 것 중 최고는 그의 이름이라고. 흑 흑 흑 흐느끼는 한(恨)의 울음이라고. 한 번이라도 농사 지어본 사람은 압니다. 농부가 발 디딘 논에 얼마나 많은 발자국을 냈는가를. 또 얼마나 갈취와 학대의 설움을 받았는지를.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이 시구에서 문득 두 편의 소설이 떠오릅니다. 펄벅 여사의 [대지]와 박경리 님의 [토지] 단순히 여성 작가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두 편 다 땅을 통해 여성의 한을 절절이 삭여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에 나와 있는 '너희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 3:19)'란 말씀도 교의적으로 푸는 대신, '너희는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즉 여자(흙)에게서 태어나 여성성 지닌 흙에 묻히리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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