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기
육아연차제도를 도입했다. 당연히 평소에도 스케줄에 따라 서로 조정이 가능하지만, 연차를 쓰면 그날 하루는 아묻따 쉬는 날.
연말까지 소진 못해도 수당은 따로 없다는 남편의 말에 바로 첫 연차를 냈다. 사실 제일 하고픈 건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거지만, 이미 아이 스케줄에 따라 눈 떠지도록 맞춰진 바이오리듬과 주방과 거실에서 들리는 기분 좋은 생활 소음이 잠을 방해할 것이 분명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첫 연차인 만큼 뻔한 하루를 보내본다. 조조로 보는 영화, 백만 년 만에 가는 미용실, 마음의 양식을 채워줄 책방, 그리고 회전초밥 집에서 플렉스 해보는 혼밥. 마지막으로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햇빛을 얼굴 가득 받으며 이리저리 거리구경을 했다. 그러다 1등 19회 당첨이라 크게 써 붙인 유리창 옆으로 길게 늘어선 줄에 홀린 듯 합류한다.
아이가 잠들기 전 집에 돌아왔다. 아이는 멀뚱멀뚱. 나를 반기는지 아니면 없었는지도 모르는지 애매한 표정이지만 나는 네가 그리웠노라고. 나는 네가 반갑다고 꼭 안아준다. 아이가 기분 좋게 버둥거린다.
아이는 잠들었고 나도 하루를 마무리한다.
홀린 듯 섰던 줄에서, 앞선 사람들이 하나같이 한 장 내고 두장씩 받아가길래, 한 장을 내며 '한 장만 할게요'라는 말을 못 해 받아온 두장에서 5,000원이 나왔다. 별의미는 없지만 기분 좋은 마무리다.
어떤 날은 뻔하게, 홀린 듯 보내보며 사사로움이 가득하도록 채우는 것도 참 좋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