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 입맞춤
10. 무간無間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 무수히 흐르고 녹아내리는 흑백 물감의 세계. 때로 그것은 번개처럼 찰나의 순간 번쩍이며 실루엣의 잔상을 남긴다. 빛이 감긴 눈 속을 강타할 때마다 시신경에 남는 것은 검을 쥔 채 춤을 추는 네 두 손의 선율이며, 네 육신은 곧 날의 끝점이 만들어내는 호弧가 되어 내 망막을 긁는다.
흑백의 물감은 늘 그렇듯 바짝 붙어 뚝뚝 떨어지고. 네 형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무너지고 곤죽이 되어 거대한 검은 그림자로 합쳐지고 만다. 그 정체를 알았다는 오만의 턱 끝에 들이닥친 네 검날은 당장 나를 이루는 온점을 하나씩 베어낼 듯 눈이 시리게 반짝이고. 결국 다시 범벅이 되고 마는 것은 나.
짓뭉개진 뇌세포는 네게 베이는 것도 좋으리라고 숨죽인 채 속삭이는데
너와 나 사이에 정해진 것이 있어?
따뜻한 네 손바닥에 싸여 있음에도 흐늘거리지 않고 곧게 뻗어 있는 검이 묻는다. 나는 녹아내리고 있는 머리를 힘차게 젓고는 네가 쥔 두 개의 검을 향해 몸을 던진다.
여러 조각으로 갈가리 찢긴 후에야 나는 네 덩어리를 파고들고 감싸며 뒤덮을 수 있다. 우리 사이에 틈 하나 없을 것이라는 기묘한 희망으로.
* 연재 일정은 9월 4일 수요일부터 화목토 -> 수/일요일로 바뀔 예정입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