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 : Untitled : 1960
09. 사랑의 기원
사랑의 기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신은 틈을 만들었다. 손톱 끝으로 틈을 긁어서 그것을 좀 더 크게 만들자 틈에서 꿀렁거리고 울컥거리는 무엇인가 새어 나왔다. 틈에서 나온 것들은 계속 움직이다가 신의 모습을 보고 그와 같이 변했다. 그것들은 알고 있었다. 신이 곧 이 세계의 전부라는 것을. 그러던 어느 날 신을 본 그들은 신의 완벽하고 틈 없는 얼굴에 매료되었다. 매일같이 틈에서 흘러나와 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는 그들은 모두 틈 근처에 모여 앉아 신을 기다렸다. 신이 빛 가운데에서 얼굴을 비추기를, 그 아름다운 광휘에 자신들의 얼굴이 녹아내리기를. 그 기다림은 끈적이는 진흙이 되었고 기다림의 고통으로 그들이 흘린 눈물은 진흙에 스며들어 묽은 흙의 강을 이루었다. 그들은 어쩌다가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이 일으킨 바람을 느끼며 신이 자신들을 알아주기를, 안아 주기를, 자신들을 집어삼켜 위대한 그의 일부로 삼아 주기를 바랐다.
신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선물했다. 묽은 흙의 강을 보며 더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고인 세상을 주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틈 근처에 모여 앉아 신을 그리워했다. 신은 그들이 그 세상에서 살며 자신에게 감사하고 자신을 찬양하는데 만족하기를 바랐으나 그들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썩어가는 시체 속 구더기처럼 들끓던 자신들의 욕망이 한순간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원하던 대로 신의 얼굴을 본 순간, 자신들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 뒤틀리고 찢어지며 틈이 생겨난 것을 깨달았다. 자신들의 소망과 신의 바람이 합치될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하던 그들은 결국 질척이는 흙의 강 속으로 몸을 던졌다. 무언의 비명을 위해 벌어진 아가리 속으로 흙의 강이 밀려들어갔다. 그들의 몸 속에 난 틈에서는 계속해서 더러운 진흙이 흘러나오며 틈을 메우려 애썼다. 하지만 그 틈은 영원히 메워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