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리츠 안데르센 링, 아침 식사 중에
11. 시선으로부터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 , 아침식사 중에
함께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 넌 나를 분명히 싫어했다. 이런 것도 모르냐는 핀잔은 물론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한 날이면 넌 나를 거침없이 비난했고 내게 짜증을 냈다. 잘 좀 하라는 말. 그래서 네 발소리를 알았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걷는 소리. 내 뒷자리로 그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면 등이 곧게 펴지고 머리털이 곤두섰다. 멀리서 들려오는 네 웃음도 싫었다. 제일 싫었던 건 네가 한 말들 중 틀린 것이 별로 없었다는 거였다. 왜 저렇게 미운 말만 골라서 할까? 나는 네가 정말 싫었다. 늦은 밤 내게 짜증을 내며 돌아갔을 때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한바탕 울기도 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내가 틀린 걸 다 안다는 듯 능글맞게 웃는 모습마저도 미웠다.
그런 네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한 건 사실 얼마되지 않았다. 사실 이것은 거짓말. 단 둘이 회의실에 남아 다음 리뷰를 준비하다가 먼저 일어섰을 때, 그 오래전의 일을, 뒤에서 들려오던 저음의 목소리를 기억해오고 있다.
윤아 님 조심히 들어가요. 주말 잘 보내고요… 잘 가요.
못된 말만 골라서 하기로 소문난 네가 웬일로 그런 인사를 건넨 건지. 이상하게 가슴이뛰는 내가 미친 사람 같았다. 그저 건넨 인사 한마디에 뭐하는 건지. 며칠 뒤부턴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나를 바라보며 말없이 능글맞은 눈웃음을 치는 네 시선을 피하느라 머릿속이 새하얘지곤 했다.
이후 나는 질질 끄는 슬리퍼 소리가 들려오면 다른 의미로 허리를 피게 되었다. 괜히 머리를 매만졌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나도 모르게 스치는 널 바라보았다. 눈이 스칠 때면 넌 자꾸만 웃었다. 나도 모르게 함께 웃으며 난 종종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권지훈 못생겼잖아. 왜 이러냐고 대체!
어느새 나는 네 빈정거림을 받아치고 네 짜증을 더 한 짜증으로 맞상대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너와 시답잖은 대화를 이어오던 날, 같이 술이나 마셔야겠다고 네가 농을 치던 그 날. 같이 술을 마시잔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또 한 번 내려앉아 며칠 전 보고 온 전시 후기를 적다 말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라우리츠 안데르센의 ‘아침 식사 중에’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문 읽는 여자의 뒷모습을. 자신을 그리는 화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신문의 정치면을 열심히 읽고 있을 여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섰던 것일까, 뒤에서 슬리퍼를 질질 끄는 네 발걸음이 들려온다. 나는 허리를 핀다. 내 손에는 없는 신문이 들려 있는 듯하다. 없는 신문 속 정치면을 읽는다. 내 뒷모습을 더듬을 네 시선을 기다리며. 천천히, 빠르게 뛰는 심장의 울림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