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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라 Oct 25. 2022

장애 재현과 '귀여움'의 활용

라일라 작가의 <나는 귀머거리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유쾌하고 귀여운 캐릭터에 담아낸 이 작품은... ”

– 예스24 작가파일

“청각장애인의 일상과 불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귀여운 그림체와 패러디를 통해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내면서 많은 호응을 받았고 … ”

– 김건형, “웹툰 플랫폼의 공동독서와 그 정치미학적 가능성” 저자

동그란 눈코입의 강아지로 분한 주인공 라일라는 존재만으로도 만화 전체의 톤을 말랑하게 해 줬다.”

– 강혜민, “소리 없는 유쾌한 세계, <나는 귀머거리다>” 인터뷰어

라일라 작가의 <나는 귀머거리다> 표지

2015년 연재를 시작해 2017년 완결된 <나는 귀머거리다>는 선천적 청각장애인 라일라 작가의 일상툰입니다. 한국에서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의 불편함, 너무나 자주 마주치게 되는 오해와 편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정겨운 순간과 유쾌한 즐거움을 짧은 호흡의 회차들 속에 그려냈습니다. 앞서 인용한 여러  소개글에서 볼 수 있듯, 이 작품을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는 '귀여움'입니다. 라일라와 그 가족들은 동글동글하고 부드러운 선화의 강아지로, 주변 친구들은 고양이나 양 등 귀엽고 깜찍한 동물들로 표현됩니다.


<나는 귀머거리다>는 연재 당시 큰 성공을 거뒀고, 작품에 대한 논의 역시 장애학 혹은 대중문화 학계에서 종종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나는 귀머거리다>를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속 천재 자폐인 변호사의 장애보다는 귀여움에 더 관심을 보였습니다. 우영우의 서번트 증후군은 "능력주의와 성차별의 교차 지점에서 '엄청난 천재지만 어딘지 모자라고 도움이 필요한 여성'을 매력으로 소비하는 '갭모에'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안희제, "우영우가 침묵한 것"). 일본어이자 한국에서도 종종 쓰이는 말인 '갭모에'는 캐릭터의 성격에 있어 '반전'과 '의외성'을 의미합니다.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서 의외의 매력을 찾는 것이죠. 우영우의 갭모에는 '장애인은 귀엽지 않을 줄 알았는데'라는 가정을 함축합니다. 동시에, 천재인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귀엽고 연약하고 엉뚱하다는 감상 역시 우영우의 갭모에로 기능합니다. 우영우가 재현하는 장애는 귀엽기 때문에 사랑받았으며, 그 장애는 능력주의 한국 사회가 열광하는 천재적인 기억력과 성공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용인되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를 서정적으로 풀어내어 큰 감동을 주었다는 의미 있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드라마는 주인공의 장애를 '용납 가능한 장애,' '비장애인의 눈에 사랑스럽고 따라서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장애'로 재현했고, 그 결과 한국 사회가 지우고, 용납하지 않고, 비인간 취급하는 현실 속 장애인들의 삶을 배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영우>가 연일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동안,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외치는 장애인들에 대한 혐오 발언의 수위 역시 매일 갱신되었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는 공적 논의의 장에서 잊히거나 심한 혐오와 반대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드라마 속 귀여운 우영우에는 열광하지만 자신의 옆집에 사는 장애인, 자신과 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장애인은 거부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김상희, "우영우엔 열광하지만"), 나는 장애를 귀엽게 재현하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기억을 헤집고 불쑥, 라일라 작가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귀머거리다>의 장애인 캐릭터들 모두 귀엽고, 익살스러우며, 사랑스럽지요. 오랜만에 <나는 귀머거리다>를 다시 읽으며 나는 장애인과 장애인의 경험을 귀엽게 재현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귀여움으로 장애를 낭만화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낭만화(浪漫化)란 "현실적이 아니고 환상적이며 공상적이게 됨. 또는 그렇게 함."을 의미합니다 ("낭만화"). 장애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현실성을 누락하고 장애를 감동을 주기 위한 장치, 이례적인 능력을 위한 장치, 주인공을 영웅화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한다면, 해당 작품은 장애를 낭만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우영우>는 판타지고 <나는 귀머거리다>는 작가의 실제 삶의 기록을 담은 일상툰이라는 점이 다르고, 다루는 장애 종류도 메시지도 다릅니다. <나는 귀머거리다>를 장애 재현의 완벽한 예시로 이해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다만, 어떻게 장애를 재현할 것인가의 문제를 이미 몇 년 전부터 고민하는 여성 작가님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장애를 '귀엽게' 재현하는 것의 의미와 그 결정이 감수하는 위험 역시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귀머거리다> 20화. 똘망똘망한 눈의 라일라. 라일라의 귀여움과 우영우의 귀여움은 재현과 효과의 측면에서 어떻게 다를까?

모든 삶은 그 나름대로 언제나 미숙하고 엉뚱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모든 삶은 분명 귀엽게 재현될 여지가 충분합니다. 그러나 귀여움과 낭만화는 다릅니다. 장애를 낭만화하는 것은 장애의 현실을 침묵시키기 때문입니다. 미화되지 못한 장애, 비장애인들이 보기에 불편한 장애는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의 저자 수전 웬델은 장애의 문화적 재현이 충분히 현실적이지 못할 경우,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삶을 상상 불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우려합니다.

장애의 경험을 현실성 있게 그리는 문화적 재현물이 없다는 점은 장애인의 ‘타자화’에 이바지한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삶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엇이라는 강력한 전제를 가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지 알지 못하게 됨으로써 비장애인은 장애에 대한 두려움이 심해진다. 장애인은 의존적이다, 장애인은 도덕적으로 해이하다, 장애인은 초인적 영웅이다, 장애인은 무성적이다, 장애인은 불쌍하다 등의 고정관념은 장애인을 문화적으로 재현할 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이미지다. 고정관념은 장애인이 일과 사회생활에 온전히 참여하려고 할 때 끊임없이 개입한다. (웬델, 91-92쪽)

<나는 귀머거리다>는 장애인 당사자인 작가와 주변 인물들을 실제와는 다른 모습, 즉 왜곡된 모습으로 그리고 있지만, 작품이 그려내는 그들의 삶은 장애인 당사자가 경험하고 해석하는 세계를 충실하게 복원합니다. 작품은 "'장애'라는 단어에 덧씌워진 편견의 틀을 유쾌하게 뛰어넘으면서도 현실을 굴곡 없이 드러냈"고 (강혜민, "소리 없는 유쾌한 세계"), 바로 그렇기에 귀여움을 보여주면서도 낭만화되거나 미화되지 않은 장애의 문화적 재현물로서 기능합니다. '용납 가능한, 귀여운, 장애인다운 장애인'을 보고 싶어 하는 한국 사회에 라일라 작가는 분명 귀여운 캐릭터를 선보입니다. 그러나 그 캐릭터가 세상에 답하는 말풍선들은 한국 사회가 가려뒀던 장애인 혐오를 들추어내고 조곤조곤 지적하고 있습니다.


라일라 작가가 장애의 문화적 재현에 대해 고민하는 189화와 190화는 눈여겨볼만합니다. "만화1," "만화2"라는 소제목의 두 회차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가 읽어왔던 만화 속 장애 재현 혹은 장애 재현의 부재에 대해 고찰합니다. 첫 번째 회차에서 라일라는 여자아이들에게 인기 있던 마법소녀 시리즈나 액션이 주가 되는 소년 만화의 세계관에서 장애인인 자신이 생존할 수 있을까를 질문합니다. 내가 저 만화 인물이었다면 "죽는다...내가 먼저 죽는다!!"라고 말하는 라일라의 체념한 표정, 안광이 사라진 눈, 색 없이 흑백으로 표현된 컷만으로 독자들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죠 (189화). 이 컷은 철저히 비장애인만을 능력 있는 히어로로 설정하는 소년 소녀 장르의 장애인 배제를 폭로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장애 재현의 부족을 열렬히 비판하기보다는 비웃어 버릴 만한 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사회와 문화가 장애인을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으며 그런 사회 문화를 관조할 수 있는 주체로 성장한 라일라의 유머감각을 보여줍니다.

<나는 귀머거리다> 189화. 소년만화 속 인물이 되는 상상하던 라일라는 청력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세계관이므로 자신이 먼저 죽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만화2" 에피소드에선 만화 장르에 따라 다르게  의미화되는 장애인 캐릭터를 관찰합니다.

시각장애인은 시각 대신 발달된 감각을 선보이는 설정으로 능력 배틀물이나 이세계물에 많이 등장하며 / 지체장애인은 스포츠물이라든가 아포칼립스 시대에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희망의 상징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 청각장애인은 순정만화였다. (190화)

라일라는 청각장애인이 순정만화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청력의 부재가 의미하는 소통의 단절이 연인들이 사랑을 지켜나가기 위해 뛰어넘어야 할 장벽으로 이해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하지만 청력의 부재 혹은 손상이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서로 다른 생활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모든 사랑에 청각장애가 방해물이 되지는 않습니다. 장애를 '무언가를 할 수 없는(disable)' 상태로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비장애인을 정상성의 기준 삼는 사회입니다. 장애는 그 자체로 능력 부족 혹은 넘어서야 할 비극이 아닌데, 신체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구성된 세계가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과도하게 축소시켜버렸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되어 버린 (disabled; 수동태)' 것이지요. "청각장애인은 순정만화였다"라고 말하는 내레이션 아래 비친 라일라의 뒷모습은 어쩐지 복잡한 심정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배틀물이나 스포츠물처럼 역동적인 장르로부터 청각장애인이 배제되었다는 실망감만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비장애인들이 만들고 향유하는 문화 속에 청각장애인의 소통 능력이 '넘어서야 할 장애물,' 사랑을 통해 '치유되어야 할 무언가'로 표상되는 현실에 던지는 작가의 물음표가 보입니다.

<나는 귀머거리다> 190화. 청각장애인은 순정만화 주인공으로 재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닫는 라일라의 뒷모습. 복잡한 심정이 드러난다.

장애를 '정상적'인 사랑을 유예시키는 비극으로 재현하는 순간, 그리고 결국 사랑을 통해 뛰어넘어질, 치유될 무언가로 재현하는 순간, 장애인의 현재, 장애인의 지금은 없어집니다. 장애인에게 의미 있는 시간과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장애를 뛰어넘은 이후, 즉 미래에만 머물러 있으니까요.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의 저자 김은정은 "치유는 장애 범주에 속한 몸을 정상 범주로 이동시킬 것을 약속"하는 개념이며 (29쪽), 장애를 치유해야만 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치유 명령(imperative of cure)은 장애가 있는 삶을 힘겹고도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으로 만드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라고 말합니다 (31쪽). 어린 라일라가 읽어왔던 여러 가지 만화 속 청각장애인들의 삶이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불완전하고 충분히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영위할 수 없는 삶으로 표상되어 왔다면, 문화적 자원으로서의 만화는 현실을 사는 라일라에게 자신의 현존을 부정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언젠가만을 선망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문화 속 장애 재현은 그렇게 실존하는 장애인들의 삶에 끊임없이 침범합니다.


작가가 학교 폭력을 당했던 나날을 그려낸 "그 날들" 에피소드가 말하듯, 사람들은 각자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라일라, 38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은 비장애인의 신체가 정상성의 기준으로 설정되고, 장애인 혐오는 물론 외모지상주의와 노인 혐오 등 신체의 다름과 연약함을 이유로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것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이런 세계에서 장애는 문화 속에서 재현될 때뿐만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살아 있는 개인의 신체 자체로도 이미 비장애인들의 시선에서 해석되고 의미화됩니다.

실제 사회에서 장애는 이미 해석을 불러오기 때문에 장애의 문학적 재현은 단순히 장애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의 문학적 재현은 다양하게 미학적 또는 윤리적 강조를 하면서 그 현실 (즉 장애)를 굴절하는 것이다. (퀘이슨, 92쪽)  

라일라 작가는 <나는 귀머거리다>를 연재하기 훨씬 전부터,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신체가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관찰되고, 해석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그때의 나는 의무감이라든가 책임감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이 처음 보는 청각장애인일 테니 가능한 한, 청각장애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싶어’ 같은" (라일라, 38화). 장애는 만화 속에서도, 만화 밖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의미화되고, 있는 그대로 이해받기보다 왜곡되고 굴절되어 이해됩니다. 라일라 작가 본인이 본인의 경험을 최대한 진솔하게 풀어낸 아카이브와도 같은 일상툰이어도, 장애는 어떤 식으로든 굴절되고 새롭게 의미화되어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도 이를 알고 있기에 회차를 거듭할 때마다 장애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를 두고 오래도록 고민해야 했고요.

<나는 귀머거리다> 38화. 어린 라일라는 자신을 장애인의 대변자로 보는 시선을 내면화하여 스스로가 타인의 눈에 비치는 모습을 의식하고 스스로를 규제한다.

그러나 라일라 작가가 그려내는 귀여운 라일라와 그 주변인들은 장애를 치유되어야 할 비극으로도, 그들을 '대단한 사람'으로 만들 영웅 서사의 고난으로도 표상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우스꽝스럽고 웃긴 순간들은 그들이 바로 지금, 현재 살아 있으며 그 현존을 즐겁게 누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이 꾸려가는 일상을 그려내는 <나는 귀머거리다>는 "장애가 있는 몸에 치유를 강요하는 습관을 버리고 장애 자체의 현존에 초점을 맞추"려는 시도에 근접합니다 (김은정, 29쪽). 장애인이 바로 지금 살아가는 현실을, 다른 누구도 아닌 장애인 당사자가 경험하고 해석한 결과이기에 의미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해석되고 의미화된 신체가 아니라, 스스로 사회와 문화를 향유하고 또한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주체로서 라일라와 친구들은 존재합니다.


<나는 귀머거리다> 라일라의 친구이자 청각장애인인 캐릭터가 라일라와 함께 대중문화 콘텐츠 속에서 장애가 '감동을 주가 위한 장치'로 쓰이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웹툰 플랫폼의 공동독서와 그 정치미학적 가능성”에서 김건형은 라일라 작가의 <나는 귀머거리다>의 활발한 댓글창에 주목하며, 이 작품이 장애인 독자와 비장애인 독자들이 서로의 경험과 반성, 질문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공동독서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독서를 가능하게 한 요인 중 하나를 김건형은 라일라 작가의 '단순한' 캐릭터 디자인으로 꼽습니다:

일상툰은 사실적인 극화체보다는 개별 대상 지시적 인물 묘사를 없애고 작가이자 캐릭터를 단순한 표상으로 강조하여 누구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실제 생활인인 일상툰 작가의 자기 반영적 작품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일상과 고민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정체성과 이질적인 독자도 일상툰에서 타인의 구체적인 일상을 관찰할 수 있다. (131쪽)

즉 라일라 작가가 자신의 캐릭터를 단순한 도형들로 이루어진 귀여운 강아지로 재현한 이유는 장애인을 미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을 귀엽게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여느 일상툰의 주인공-작가들처럼, 그저 살아 있고 미숙하고 웃기게 삶을 이끌어나가는 '주체'를 귀엽게 그린 것이기에 누구든 그 캐릭터로부터 비슷하게 미숙하고 웃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비장애인이 연기한 천재 장애인 여성 캐릭터는 사랑받지만 여전히 장애인 혐오가 만연한 한국 사회는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장애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비정상으로, 불편함으로, 불행으로, 치료해야 하고 따라서 지속되어선 안 되는 부정적인 상태로. 불쌍함으로, 연민해야 할 가녀린 존재로, 어리숙하고 귀여운 존재로. 누군가의 신체를 자신의 이해 범주 안에 구겨 넣는 시선들 속에서, 라일라 작가의 똘망똘망하고 귀여운 캐릭터는 자신이 직접 해석한 세상에 대해 말하고 그립니다. 그는 장애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장애인 독자들이 자신이 세상에 응답하는 목소리를 나눌 수 있는 공공의 장을 마련하는데도 성공합니다. 그의 캐릭터는 귀엽고 직관적이며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지만, 그가 보여주는 주체적인 시각과 그가 해석하는 세상은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화도 낭만화도 모두 거부합니다. <나는 귀머거리다>는 그래서 특별하고, 그래서 중요합니다. 이런 작품을 통해 앞으로도 많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방법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즐기는 방법을 배워나갈 수 있을 거라 감히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요. 완결된 지 5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나는 "가장 인상 깊었던 만화 장애인 캐릭터가 있으신가요?"라는 작가의 말에 만 이천 명이 넘는 독자들이 추천한 베스트 댓글인 "나는 귀머거리다 라는 만화의 라일라"라는 답에 또다시 '좋아요'를 누릅니다.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659934&weekday=wed

참고문헌

강혜민. “소리 없는 유쾌한 세계, <나는 귀머거리다>.” <비마이너>, 2015년 8월 14일 발행.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8689.

김건형. “웹툰 플랫폼의 공동독서와 그 정치미학적 가능성.” <대중서사연구>, 22(3), 39, 2016년 8월, 119-169쪽.  

김상희. “우영우엔 열광하지만 ‘이웃 장애인은 싫다’는 사람들.” <비마이너>, 2022년 7월 26일 발행.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730.

"낭만화." 네이버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646c8b21cd2e4d249bddda6d0290064b.

라일라. <나는 귀머거리다>. 네이버 웹툰. 2017.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659934.

안희제. “우영우가 침묵한 것.” <비마이너>. 2022년 8월 19일 발행.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818.

예스24. "라일라 작가." <예스24작가파일>.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302436.

웬델, 수전.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 강진영-김은정-황지성 옮김, 그린비, 2013.

퀘이슨, 아토. <미학적 불안감>. 손홍일 옮김, 디오네, 2016.


댓글 인용

ID. ultr****, <나는 귀머거리다> 190화 댓글, 2017.6.2 작성.


- 작품에 대해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라일라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나는 귀머거리다>는 현재 네이버웹툰에서 무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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