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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라 Oct 05. 2022

행복의 길 바깥에서

AJS<27-10>,검둥<안녕은하세요>,마대·매봉<식탁 아래 Blue>

주의: 해당 작품들의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알림: 이 글은 2022년 출간된 <공공인문학 이니셔티브: 공공과 인문학에 대한 다면적 논의>에 수록된 챕터 "행복하게 살아남기: 웹툰 속 청년 여성 우울에 대한 짧은 분석"을 수정 보완한 글임을 밝힙니다.


우울한 젊은 여자들

이 글은 청년 여성의 우울을 소재로 한 세 개의 웹툰, AJS 작가의 <27-10>, 검둥 작가의 <안녕은하세요>, 마대 작가 글, 매봉 작가 그림의 <식탁 아래 Blue>를 다룹니다. 비슷한 시기에 연재된 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수반하는 피로감과 공포를 경험합니다. 각기 다른 작품의 인물들인데도 이들의 경험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지요. 어느 인물의 불행도 그 원인을 한 가지로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한 명의 여성이 매일 다른 이유로—가족이 바라는 딸이 되지 못해서, 성폭력에 무던하게 반응하지 못해서, 취업하지 못해서, 가난해서, 때로는 이성애정상성으로부터 밀려나서—슬픔을 느낍니다. 여성이라면 으레 겪을 수밖에 없는 ‘흔한’ 문제들이, 가정폭력 생존자나 퀴어처럼 으레 ‘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문제들과 얽힌 채 주인공들을 덮쳐 옵니다. 이들의 고통은 때로는 흔해서, 때로는 흔하지 않아서 공감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주목할 만한 것은, 그럼에도 모든 작품의 마지막 화가 우울에 잠식당하지 않고 매일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우울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라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회는 여전히 여성들의 불편함과 불행을 돌보지 않고, 회복되지 않은 상처는 이따금 따끔거리며 그들의 발걸음을 방해하니까요. 그러나 이야기의 끝에서 독자를 안심시키는 것은 우울증을 완치한 주인공이 아니라, 내일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입니다. <27-10>의 ‘그녀,’ <안녕은하세요>의 영은과 보금, <식탁 아래 Blue>의 은예와 맑음 중에서 우울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상흔과 불편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미래를 맞이하지요. 하지만, 이들은 타자화와 폭력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상처는 물론 주변인의 상처 역시 돌보며 조금 더 행복하게 일상을 살아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합니다.


세 작품은 비슷한 공포와 상처를 안고 있는 또래 여성들 간의 연대로부터 비롯되는 치유의 경험을 글과 그림으로 재현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독자들에게도 미래를 감당해낼 힘, 그리고 연대의 희망을 심어주는 귀중한 문화 자원으로 기능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세 작품에 나타난 폭력의 양상과 치유의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현대 여성 웹툰 작가들이 여성 소수자들의 고통을 가시화하고 이야기하는 일을 통해 그들과 연대하고 있음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각 작품의 썸네일. 왼쪽부터 AJS 작가의 <27-10>, 검둥 작가의 <안녕은하세요>, 마대 작가 글, 매봉 작가 그림 <식탁 아래 Blue>.

우울의 근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일상이 재난”입니다. “그것도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재난이며, 제대로 기록되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는 재난”이지요 (하미나, 132쪽).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고 있다면 누구나 겪을 만한 일, 그래서 폭력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어딘지 부끄러웠던 일들이 있습니다. 친밀한 관계일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으로부터의 폭력도 진부하리만치 익숙한 레퍼토리가 되었지요. 익숙한 일이 된 폭력은 재난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자신을 분노하게 하는 일이 ‘다들 견디는 일’로 대체되는 순간 느낄 무력감. 많은 여성들은 이러한 무력감을 어린 시절부터 학습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숨기고 억압하며 성장합니다.


그렇다고 여성이 아닌 다른 정체성으로 인해 비롯되는 소외의 경험이 더 잘 인정받는 것도 아닙니다. 일례로, <안녕은하세요>의 주인공 영은은 주변 남성들의 성희롱과 성추행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도 벅차기에,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알리는 순간 뒤따라올 주변의 반응까지 견딜 힘이 없습니다. 영은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언제나 성폭력의 대상이 될 위험을 상기하며 자신의 행동을 규제합니다. 여기에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에 눌어붙은 비정상의 낙인까지 감당해야 하는 삶은 영은에게 극도의 피로로 다가오지요. 영은이 여자여서 겪는 불안은 흔한데, 레즈비언으로서 겪는 불안은 별종 취급을 받습니다. 그래서 영은은 이중의 소수자성을 견뎌야 합니다. 그가 일상 속에 서 느끼는 압박감은 홀로 그림판에 들어맞지 않아 스스로를 구기며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퍼즐 조각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영은은 자신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게으른 생각 하나하 나가 모여 나를 가둬” 버린다고 생각합니다(검둥, 53화).

<안녕은하세요> 53화. 주인공 영은의 독백. 퀴어를 비정상이라 낙인찍는 사회가 소수자를 이해하는 일에 있어 얼마나 게으른지, 그 게으름이 소수자를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보여준다.

부당하고 화가 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어도 세 웹툰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합니다. 돌아올 비난과 질책을 내면화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주변인(특히 모친)을 배려해 자신의 괴로움을 숨겨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거나, 묻어 두었던 상처를 다시 파내 직시하는 일 자체가 불러오는 필연적인 괴로움 때문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직시하고 무엇으로 인해 우울이 시작되었는지를 알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주인공들은 정신과 상담 혹은 과거 회상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합니다.


우울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던 주인공들은 폭력적인 부친에 대한 기억에서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27-10>의 ‘그녀’는 열 살이 된 해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부친에게 성폭력을 당합니다. ‘그녀’는 수치감과 무기력을 덮을 무언가를 찾아 삶을 이어가려 고군분투하지만, 우울은 검은 바다로 형상화되어 독립한 이후에도 ‘그녀’의 집을 범람합니다. 한편, <식탁 아래 Blue>에서 은예의 부친은 물리적 폭력은 행사하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딸들을 억압하고 가스라이팅하는 방식으로 은예를 통제합니다. 부친의 비난을 내면화한 은예는 스스로를 부족하고 형편없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지요. 마지막으로 <안녕은하세요>의 영은은 부친이 모친을 강간해서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있으나마나 한 부친의 존재는 주인공을 직접적으로 괴롭히지는 않지만, 영은은 부친 때문에 곤란해진 모친을 배려하느라 자신이 주변 남성들에게 당하는 성희롱과 성추행, 스토킹 문제를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하게 됩니다. 세 작품 속에서 아버지란 존재는 가족을 만성적인 긴장 상태로 밀어 넣는 사람이자, 딸들이 자신의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는 환경을 조장하는 자입니다.


세 작품의 또 한 가지 의미 있는 공통점은, 부친의 폭력을 주인공과 함께 견디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딸들의 우울과 공포에는 쉬이 귀 기울이지 못하는 모친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모든 청년 여성의 우울이 항상 모녀간의 상호 이해불가능 상태를 포함하지는 않겠지만, 폭력적인 가부장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동안 많은 딸들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어머니를 원망하면서도 어머니의 피해자성을 보듬느라 진을 뺍니다. 반면, 지금보다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더 당연하던 시절을 견뎌 온 중년 여성들은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침묵했듯 딸들도 침묵해 주길 바라지요. 그래서 “엄마와 딸이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난장에서 함께 미쳐 뒹구는 동안, 아빠는 난장의 원인을 제공했으나 그곳에 개입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지속됩니다 (하미나, 151쪽).


이렇듯 혼란한 모녀 관계를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작품은 <27-10>일 것입니다. ‘그녀’는 부친의 폭력을 견뎌야 했던 모친을 이해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위해 부친에 맞서지 못한 모친에게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폭력에 함께 노출된다고 해서 폭력에 대한 대응 역시 같지는 않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그녀'는 모친을 여전히 사랑하지만, 어머니가 자신과 함께 싸우고 있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 견딜 수 없이 외로워집니다.

<27-10> 22화. 우울에 가라앉은 '그녀.' 바쁜 모친을 대신해 부친의 병문안을 갔지만, 사실 모친이 자신을 부친과 만나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임을 알게 된 순간이다.

<식탁 아래 Blue>에서 은예의 모친은 부친이 제공하는 경제적 안정감을 이유로 딸들이 느끼는 압박감과 부담을 덮어버리고 (마대·매봉, 80화), <안녕은하세요>에서 영은의 모친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남자들이 흔히 가진 못된 습관 정도로 포장합니다 (검둥, 25화). 영은이 동갑 남성으로부터 당한 성추행을 모친에게 털어놓지 못하거나 겨우 털어놓아도 충분히 위로받지 못하는 이유는 모친이 성폭력에 무지해서가 아닙니다. 모친 스스로가 남편은 물론 친족 남성에게도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고, 그 사실을 폭로하지 않고 견뎌온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왜 그러나 몰라”라는 모친의 말에 영은은 ‘그게 다야?’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 말하지 못합니다 (25화). 영은은 “엄마를 향해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면서도 그 또한 가부장제 안에서 고통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미나, 152쪽).


세 작품의 주인공들 모두 가족 구성원들의 사정을 홀로 떠안고, 돌봄의 수혜자가 되지 못한 채 끝없이 돌봄의 주체가 될 것을 강요당합니다. 모든 피해자가 서로의 연대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괴로운 사실을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것도 자신들의 어머니들로부터 배운다는 것이 세 웹툰에서 공통적으로 조명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숨 막히는 어린 시절을 견뎌내고 사회에 나간다 해도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성희롱과 성추행에 노출됩니다. 젠더 불평등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이들의 노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되거나 남성 고객 혹은 상사의 권리보다 하등한 것으로 여겨지지요. 주인공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직장 생활을 하다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름도 모르는 남성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켜줄 도구로 이용될 위험에 놓이거나, 동일한 지적 수준과 업무 능력에도 불구하고 임금과 대우에 있어 차별을 받습니다 (마대·매봉, 10화).


현실의 여성들도, 웹툰 속 여성들도 젠더 불평등의 문제와 폭력을 인식합니다. 하지만 “(가해자를) 피하고 벌하고 나 보호하는 데에도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기에 침묵합니다 (검둥, 38화). 여성 대부분이 이러한 폭력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공포는 유별나게 예민한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일례로 은예는 카페에서 카드를 내미는 척 자신의 손을 기분 나쁘게 어루만지는 중년 남성의 손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이후에 전개될 일들이 두려워 부당함에 맞서지 못하죠. 은예의 걷잡을 수 없는 생각의 소용돌이는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분노로 시작되지만 종국에는 “나는 왜 나라서 이렇게 한심하고 쓸모 없을까?”라는 자책으로 귀결되고 맙니다 (마대·매봉, 9화).


모두 비슷한 문제를 겪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바쁘고 힘들지만 과중한 업무와 자기 관리를 해내는 상황에서, 이를 버거워하는 나는 끊임없이 의심의 대상”이 되어 버리지요 (하미나, 195쪽). 사회가 약자의 경험을 묵과하고 당연시하는 일이 반복되면, “약자나 소수자는 자신의 경험이나 관점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사회도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김현미, 78쪽). 사회가 돌연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러한 일상 속 폭력이 해결되는 일은 너무나 요원하기에, 여성들은 우울을 삼키고 담아두는 방법 외에 다른 생존 방식을 찾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안녕은하세요> 38화. 영은을 성희롱하던 중년 남성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길 바라는 보금(검은 숏컷)과 보복을 걱정하며 말리는 영은(금발).

불행한 여자들의 만남

하지만 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친구들의 돌봄을 통해, 상담 치료를 통해, 혹은 누군가와의 로맨틱한 관계를 통해 우울에 잠식되지 않는 미래로 나아갑니다. 이 과정 속에는 반드시 또래 여성, 즉 다른 맥락의 삶에서 각자의 불행을 견디고 있는 청년 여성들 간의 자발적인 돌봄과 연대가 포함되지요. 서로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서로의 삶에 개입하거나, 일면식도 없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함께 투쟁하기 위해 모이기도 합니다. 소외된 사람들이 다른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 이루어내는 연대는 웹툰의 세계에서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실현되지요. ‘정상’이라 여겨지는 행복의 길 바깥으로 튕겨 나온 여자들은 이상하고 불행한 여자들이 되지만, 그들은 밀려난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불행한 여자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들의 만남은 비참함이 아니라 기쁨과 희망으로 이어집니다.


<식탁 아래 Blue>에서 심한 우울증을 겪는 은예는 금요일마다 함께 저녁을 먹어주는 친구 맑음과 과거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았던 미라를 포함한 대학 시절 친구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상담을 받고 괜찮아진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인공의 긴장이 약간은 완화되지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은예는 작품의 막바지에 이르러 부친의 정신적 압박에 반항하며 홀로 가출했던 친언니인 은지와도 재회하게 됩니다 (마대·매봉, 80화). 언니와의 대화는 은예가 화를 내야 할 대상이 자신이나 언니가 아니라 끝없이 자매를 남과 비교하고 깎아내렸던 부친이었음을 깨닫게 하고요: “근데 생각해보면 네 탓이 아니야. 자꾸 그렇게 분위기를 조성한 사람들이 문제더라” (81화).

<식탁 아래 Blue> 81화. 은지(오른쪽)와 은예(왼쪽)을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고 그들의 자아를 통제했던 부친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은지.

은예와 은지는 모두 부친의 시선으로 보면 불행하고 남보다 못 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지는 그런 ‘불행한 삶’을 ‘선택’할 자유를 가지기로 합니다. 부친이 말하는 행복이 좋은 대학교, 좋은 직장, 무엇보다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좋은 딸이 되는 것이라면, 은지는 더 이상 부친이 정의하는 ‘행복’을 향해 걷지 않기로 한 것이죠. 부친과 사회가 인정하고 바라는 모습대로 살면 언젠가 행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신의 행동을 얼마나 제어하고 욕망을 억눌러왔는지를 직시하지요. 행복을 미래에 올 약속으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은 현재의 슬픔과 괴로움을 긍정하는 일입니다 (아메드, 373쪽). 은지는 지금 자신이 괴롭다는 사실을 긍정함으로써 원치 않는 행복을 위해 긍정적인 척 버티는 일을 그만두기로 합니다. 은지가 자신의 결심과 방황을 대화를 통해 은예와 나누는 행위는 동생인 은예가 스스로를 부친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분리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요.


<식탁 아래 Blue>에서 긍정의 힘으로 괴로운 현실을 타개하려 애쓰는 인물인 맑음 역시 버티고 버티다가 자신이 행복의 약속에 결코 다다를 수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견디면 나아져? 버티면 행복해져? 이젠 모르겠어” (마대·매봉, 89화). 은예에게 은지가, 또 맑음이 있었던 것처럼, 좌절한 맑음을 위해 이번엔 은예와 친구들이 깜짝 파티를 열고 그를 위로합니다: "그만 참아도 돼. 참으면 복 온다는 말, 그거 다 사기야" (89화). 은예와 맑음은 친구들 혹은 친언니 혹은 서로의 도움 덕에 현재의 우울을 긍정하되 그에 잠식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워나갑니다. 또래 여성으로부터 받는 지지와 응원은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여성이 삶을 지속하는 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지요.

<식탁 아래 Blue> 89화. 울고 있는 맑음을 위로하는 친구들. 참고 견딘다고 행복해진다는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7-10>의 ‘그녀’가 자신이 가정 성폭력 피해자임을 처음으로 소리 내어 털어놓은 상대 역시 입시를 함께 한 동갑 친구입니다. 친구와 카페에서 만난 주인공의 손에는 커피가 담긴 컵이 들려 있습니다. 찰랑이는 음료는 주인공을 삼켜버리곤 하는 우울의 바다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작은 구조 깃발이 그 위에 떠 있습니다. ‘그녀’는 “나 그런 일을 당했어”라고 말하며 친구의 품에서 눈물을 쏟고,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던 SOS가 마침내 친구에게 가 닿았음을 확인하지요 (AJS, 7화).


시간이 조금 흘러 이번에는 ‘그녀’가 친구의 아픔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게임 회사에 입사한 친구가 페미니스트인 것을 빌미로 낙인찍히고 상사 앞에서 사근사근 웃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를 당한 것입니다 (27화). 주인공은 친구의 눈물을 지켜보고 그의 분노를 함께 느낍니다. 과거 자신의 괴로움을 함께 슬퍼해준 친구처럼요. 서로가 경험한 부당한 폭력에 번갈아 가며 귀 기울이는 연출은 어쩌면 감동을 위한 서사적 장치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27-10>이 작가의 실제 경험에 기대어 그려졌다는 것을 고려할 때,* 어쩌면 여성들의 생존은 서로의 아픔을 돌보고 연대하는 일을 끝없이 반복함으로써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서로의 불행에 귀를 열고 있습니다.


귀를 열고 있다는 것, 사회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폭력에 예민하게 청각을 곤두세우는 일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27-10>의 주인공과 친구들은 친밀한 사람들의 불행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수많은 여성들의 불행을 듣습니다. 뉴스에선 소라넷과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보도되고, 성폭력 고발은 거의 모든 공동체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죠 (26화). 관련 뉴스가 들려올 때마다 이들은 괴로워합니다. “직접적인 피해 경험이 없더라도,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공포는 여성 개인들의 생활과 행동을 규제”하기 때문이지요 (고영란, 39쪽).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한 후에도 ‘그녀’가 여전히 우울의 바다 위에서 위태롭게 노를 젓고 있는 이유는 사회가 여성들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야기하는 무력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27-10> 26화. 주인공 '그녀'의 집을 범람하는 우울의 바다는 이유 없이 찾아오는 듯 보이지만, 여성혐오적인 한국 사회도 그 이유를 제공한다는 것이 26화에 걸쳐 증명된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홀로 괴로워하는 것을 넘어, 괴로움을 함께 할 사람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매일 새로운 고발이 이어졌다. 이어지는 뉴스와 기사 속에서 그녀는 자신과 같은 사람을 찾아 헤맸다” (26화). 어째서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찾아내려 할까요? 행복의 약속으로부터 소외된 여자들은 왜 조롱과 혐오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야 마는 것일까요.


어쩌면 여성들은 서로의 불행을 돌보는 행위를 생존 방식으로 삼기로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자신이 모친으로부터 받지 못한 공감과 연대를 또래 여성들과의 관계를 통해 스스로 일구어내는 인물인 것처럼요. 누구나 보살핌이 필요하고, 누구나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전무하고 각각의 상처가 서로 닮지 않아도, 함께 사회에 분노하고 함께 아파함으로써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27-10>의 주인공이 성폭력 근절 시위에 나가 여러 사람과 함께 외치는 구호들이 “그녀를 위한 외침이기도 했다”라고 느끼듯이 말입니다 (26화). 연대는 곧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됩니다. 그리고 행복의 길에서 이탈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 “이탈을 함께 나눌 때 즐거움과 경이, 그리고 희망과 사랑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아메드, 345쪽).

<27-10> 26화. 성폭력 근절 시위에서 수많은 '모르는 여자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있는 '그녀.'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새롭게 정의하는 연대와 돌봄은 <안녕은하세요>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안녕은하세요>는 다른 두 작품과는 달리 주인공의 치유에 동성 연인과의 로맨틱한 일대일 관계가 큰 힘을 발휘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잘 모르는 여자들’끼리의 연대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영은이 한 중년 남성의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을 때, 일말의 고민 없이 영은을 돕는 원룸텔 옆방 이웃의 에피소드는 주목할 만하지요.


이름도, 나이도 특정되지 않은 이 청년 여성은 매일 밤 옆방에서 들리는 영은의 흐느낌 소리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또 영은이 “아래층 질 나쁜 아저씨” 의 추근댐을 쉽게 밀어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 역시 계속 신경이 쓰여 괴롭고요 (검둥, 36화). 그런데 영은이 중년 남성에게 “썽희롱 좀 하지 마!! 이궐 말해줘야 아롸?!!”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보자마자, 여성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영은을 부축해 원룸텔로 데려갑니다 (36화). 후에 남성이 원룸텔에서 퇴출된 후에도, 이 여성 조연은 더 빨리 영은을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미안해하지요. 어떤 연대는 서로의 사정도, 이름도, 나이도 알 필요 없이 그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여성 스스로 몸가짐을 조심하면 될 문제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과민하고 유별난 여자들’이라 조롱받을지라도, 여성들은 서로를 돕는 데는 어떤 조건도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건네는 순간, 이들은 서로의 이웃이 되죠.

<안녕은하세요> 36화. 안경 낀 여성은 영은이 술에 취해 내뱉는 소리를 귀담아듣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바로 눈치채며, 그를 보호하기 위해 고민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울한 그들에게 불쑥 찾아온 사랑

돌봄을 생존 방식으로 선택한 여성들은 우울하고 불행한 나날 속에서도 사랑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숨 쉬듯 찾아오는 위협과 편견 속에서, 끝없이 범람하는 우울의 바다 위에서 어떻게 누군가를 돌보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특정한 행복에 걸맞은 자격을 얻으려 아등바등하는 하는 삶의 방식이 실은 모든 불행의 원인임을 깨닫게 되는 것까진 좋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에는요? 정형화된 행복의 길에서 이탈할 자유는 멋진 말이지만, 그것은 여성들이 아무런 대본도 없이 무대에 서서 오롯이 애드리브만으로 행복한 삶을 찾아가야 한다는 막막함을 줍니다. 정해진 결말 없이 오직 우연 발생에만 기대 앞으로 나아가도 괜찮은 걸까요?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누구를, 무엇을 사랑할 수나 있을까요?


하지만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의 하미나 작가는 여전히 사랑은 구원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만, 이때의 사랑은 일대일 이성애 로맨틱 관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구원의 대상이 아닌, 구원의 주체가 될 때만이 사랑은 구원이 된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뿐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 동물일 수도 있고, 글쓰기와 같은 행위일 수도 있다" (185쪽). 세 작품은 이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그려냅니다.


우선 무성애자인 <27-10>의 ‘그녀’에게는 다른 사람과의 로맨틱 관계를 통한 구원이 불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녀’도 여전히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더 나은 사랑을 주는 모친이나 더 많은 관심을 주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돌보고 지켜야 하는 존재와 함께 생을 나누는 일에서 오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녀’는 두 고양이의 보호자가 됨으로써 “마침내 의심 같은 건 필요 없이 나만을 보는 나만의 존재”를 만납니다 (AJS, 19화). <27-10>은 사람이 주는 사랑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비껴가는 동시에, 퀴어를 비정상적이고 불행한 정체성이라고 말하는 사회가 인정하는 종류의 행복을 애초에 추구할 생각도, 그럴 필요도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행복의 길 바깥에 있지만, 그곳에서도 '그녀'는 행복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27-10> 10화. 자신을 무성애자로 정체화하고 난 후, 고양이들 곁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케이크를 먹고 있는 '그녀'

<식탁 아래 Blue>는, 늘 가족에게 희생할 것을 강요당하던 맑음에게 은예가 함께 살 것을 권하면서 마무리됩니다. 은예가 이러한 제안을 하는 이유는 자신과 함께 살면 친구가 행복해질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둘은 영은과 보금처럼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하지도 않지요. 그럼에도 은예는 맑음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 하나”가 되어주기로 마음먹습니다 (마대·매봉, 91화).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지금 불행한 친구의 마음을 긍정해주고 그의 미래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주는 것 – 그것이 은예가 할 수 있는 전부이자 맑음이 필요로 하는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다가올 즐거운 우연과 안타까운 우연을 함께 경험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지요. 이들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이성애 로맨틱도 아니고, 보장된 미래를 약속하지도 않지만, 서로의 곁에 있겠다는 마음만으로도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내일을 맞이할 힘을 얻게 됩니다.

<식탁 아래 Blue> 91화, 회사와 가족 모두에게 소외되고 이용당하는 맑음에게 손을 내미는 은예.

<안녕은하세요>의 두 레즈비언 주인공이자 후에 연인이 되는 영은과 보금에게도 ‘행복한 정상성’의 길로 다시 들어오는 것은 고려 대상 밖입니다. 하지만 혐오가 만연하여 스스로를 지키기에도 바쁜 와중에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어야 할까요? 검둥 작가는 아주 뻔하면서도 언제나 기발한 장치인 ‘우연’을 활용합니다.


영어에서 행복을 뜻하는 단어인 happiness의 어원인 hap는 본래 우발성, 운, 우연을 뜻한다고 합니다 (아메드, 48쪽). 페미니즘 이론, 퀴어 이론, 인종 이론을 넘나들며 사회에서 소외된 정체성들을 연구하고, 사회의 주류, 지배 담론이 인정하는 특정한 형태의 행복이 어떻게 누군가에겐 억압이 되는가를 명쾌하게 분석한 사라 아메드(Sara Ahmed)에 의하면, 행복은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우연 발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찾아옵니다. 우리는 “행복을 ‘단순히’ 내게 우연히 발생한 일이라기보다 내가 한 일의 결과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지만 (48쪽), 실상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일에서 삶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데서 온다는 것입니다 (399쪽). 우리는 사회가 인정하는 행복한 삶을 쫓아가지 않고 그 길에서 이탈해 별종 취급을 받는 여성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메드를 빌리자면 이들은 모두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를 똑바로 직시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렇게 살고, 이걸 참고, 이걸 견디면’ 행복해질 거라는 마치 “마취제”와도 같은 행복의 약속을 거부합니다 (373쪽). 그들은 행복을 무겁고 꼭 성취해야 할 목표로 보기보다,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올 작은 우연의 순간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393쪽).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우연(hap)’에 대한 설명은 <안녕은하세요>에서 어떻게 표현될까요? 영은이 짝사랑하는 인물인 보금은, 영은이 자신이 당한 폭력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며 자책할 때 “널 과민하게 만든 세상 탓도 좀 해가면서 살아”라고 말해주는 존재입니다 (검둥, 39화). 그런데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친구로 지내던 두 사람이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는 다소 엉뚱하게 찾아오지요. 작품의 막바지에 이르러 영은은 동갑 남성인 정국민의 지속적인 성추행에 대한 분노를 더는 억누르지 않고 큰 목소리로 폭로합니다(63화). 그 상황을 녹음한 영은은 자신을 걱정해 마중 나온 보금과 함께 울면서 원룸텔로 돌아가고, 자신이 화내는 목소리를 들으면 웃길 거라면서 보금에게 녹음기를 틀어보라고 하지요. 애정을 빙자한 집착과 호의를 가장한 추근댐이 묻어나는 불쾌한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금은 의도치 않게 영은의 녹음 테스트 파일을 누르게 됩니다. 그러자 “여자한테나 인기 많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보금이”라고 말하는 영은의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64화). 영은의 마음을 처음 확인한 보금의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오르고 말지요.

<안녕은하세요> 64화. 보금은 영은의 녹음기를 틀어 보다 자신을 좋아하는 영은의 혼잣말을 듣게 된다.

폭력에 대한 고발과 보금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순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영은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창피해 죽겠네,” “으아아아악!!!,” “이렇게 갑자기!”'를 연신 외쳐대는 영은의 내면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쩔 줄을 모르지요 (64화). 독자들을 웃게 하는 영은과 보금의 모습은 미숙하고 우스꽝스럽습니다(silly). 하지만 독자들은 두 사람의 달아오른 볼을 보고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확인합니다. 아메드가 silliness의 어원은 원래 “축복받은, 행복한, 지복을 의미하는 단어 sael에서 온 것”임을 강조한 것처럼(아메드 395쪽), 얼떨결에 행복을 맞이한 표정은 으레 익살스럽고 사랑스러운 법이죠. 얼떨결에 행복을 맞이할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은 본래부터 우리가 통제하거나 약속하거나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보금이 영은의 녹음 테스트 파일을 누른 것은 분명 우연(hap)입니다. ‘정상적인’ 사랑을 위해 ‘노력’한 결과가 아니지요. 순전한 운이며, 준비되지 않은 순간입니다. 그래서 이로부터 얻는 행복(happiness)은 더 반갑고 소중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가능성으로, 우연에 의해 열려 있는 가능성으로 볼 수 있다. … 더 이상 행복이 좋은 것, 우리의 목표, 목적으로 상정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가능성들과 나란히 하나의 가능성이 됨으로써 의미를 획득하는, 가능성으로서의 행복을 목격할 수 있다. 행복은 그것의 불안정함 때문에, 삶이 그러하듯, 왔다가도 가는 것이어서,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다. (아메드 393-94쪽)


약속되지 않는 미래를 맞이할 힘

<27-10>, <식탁 아래 Blue>, <안녕 은하세요>의 주인공들은 정형화된 해피엔딩이 아니라 무수한 가능성으로서의 미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세 작품 중 어느 하나도 주인공들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선언하지 않죠. 이들은 사회가 추구하는 ‘정상적인 행복’을 향해 뻗어 있는 ‘올바른 길’을 걸어갈 필요를 더는 느끼지 않으며, 도리어 그 길 바깥에서 사랑하고, 돌보고, 생존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완결에 이르러 세 주인공이 얻는 것은 행복이 약속된 미래가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시간의 무게를 긍정하고 버텨낼 수 있는 마음의 근력입니다. “삶은 계속되고 파도는 이어지겠지만 더 이상 미래가 무겁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힘입니다 (AJS, 30화).


세 작품은 젠더 불평등을 묵인하고 심지어 조장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명확한 해결책이나 그러한 사회로부터의 완벽한 단절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우울을 조장하는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투쟁하고 생존해나가는 이웃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교훈이 아니라, ‘정해진 행복의 길 바깥에서도 여전히 성장하고, 사랑하고, 사랑할 수 있더라’는 다정한 경험담으로 다가오지요. 그래서 우울한 여자들의 이야기는, “더듬거릴지라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서로의 참고문헌”이 됩니다. (하미나, 월간 채널예스 인터뷰). 세 작품 속 주인공들은 각자의 세계 안에서 타인의 불행에 계속 근접해 있기 위해 노력하고 그 상처를 돌봄으로써 행복하게 미래를 맞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우리 역시 약속되지 않은 미래를 행복하게 맞이할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 작품들이 우울한 여자들의 참고문헌이 되어 주고 있으니까요.



http://naver.me/xoryKk55

http://naver.me/GANI7UB8

https://webtoon.kakao.com/content/%EC%95%88%EB%85%95%EC%9D%80%ED%95%98%EC%84%B8%EC%9A%94/2819

참고문헌

검둥. <안녕은하세요>. 저스툰, 2019, 카카오웹툰. https://webtoon.kakao.com/content/%EC%95%88%EB%85%95%EC%9D%80%ED%95%98%EC%84%B8%EC%9A%94/2819

고영란. "‘디지털 성폭력’ 근절 운동 참여 자들의 분노와 여성 정체성."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9, http://dcollection.korea.ac.kr/common/orgView/000000085243.

김현미. "젠더와 사회구조." <젠더와 사회>, 한국여성연구소 엮음, 동녘, 2014, 63-95쪽.

마대·매봉. <식탁 아래 Blue>. 저스툰, 2020, 네이버시리즈, https://series.naver.com/comic/detail.series?productNo=4512613.

사라 아메드. <행복의 약속: 불행한 자들을 위한 문화비평>, 성정혜·이경란 옮김, 후마니타스, 2021.

하미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동아시아, 2021.

---. "찾습니다, 고통에 대처하는 새로운 기술." 인터뷰,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1월호, http://ch.yes24.com/Article/View/46297.

한국 여성의 전화, "계속되는 여성살해, 언제까지 지켜볼 것인가?: 대선 후보들은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 <한국 여성의 전화 화요논평>, 2022년 1월 20일 발행, http://hotline.or.kr/index.php?mid=board_statement&page=1&document_srl=73136.

AJS. <27-10>. 네이버웹툰, 2021, 네이버시리즈, https://series.naver.com/comic/detail.series?productNo=4026725.

---. "<27-10> AJS 작가 인터뷰." 인터뷰, <웹툰가이드>, 2020웹가어워드 수상자 인터뷰, 2022년 2월 20일 발행, https://www.webtoonguide.com/ko/board/rds01_interview/13201.


- 작품에 대해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AJS 작가님, 검둥 작가님, 마대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27-10>과 <식탁 아래 Blue>는 네이버시리즈에서, <안녕은하세요>는 카카오웹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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