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무참히 소리를 잃는다

by 안하림

가장 낮은 곳부터 물에 잠기는 것이 아프다. 그곳의 소란은 물속의 웅얼거림처럼 아득해진다.


영종 갯벌에 가기로 한 날, 며칠간 세차게 쏟아지던 비가 거짓말같이 그쳤다. 불어난 물이 수많은 생명들을 삼켰던 것이 언제 있었던 일인 양 하늘은 티 없이 파랗고 맑게 개었다. 분명히 멀지 않은 곳에서 집을 잃은 많은 이들이 모든 걸 놓아버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을 텐데 그들이 금세 잊히면 어쩌지.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가만히 갯벌을 응시하자, 작은 움직임들이 소란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흰발농게는 하얀 집게발을 반복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며 제 영역을 알리고 있다. 옆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집게발을 휙-. 제 집의 담이 쌓인 아래로 난 동그란 구멍에 쏙 들어갔다가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구 형태로 뭉친 뻘을 작은 다리들로 부지런히 굴리며 걸어 나온다. 구멍에 드나들며 집을 넓히는 흰발농게 옆의 또 다른 흰발농게는 반대쪽 발로 집게발을 소중히 다듬고 있다. 함께한 활동가 선생님께서는 이곳이 간척 대상지로 포함되었음을 알려주셨다. 내가 처음 만나는 생명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기쁨을 고요하게 느끼는 동시에, 이 흰발농게의 마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어떤 일들은 시간의 흐름에서 도려낸 듯이 무참히 소리를 잃는다.


분주히 굴러가는 자동차의 바퀴들보다 낮은 곳에서 달그락거리는 설거지 소리가 새어 나온다. 뒤이어 아침 먹고 가라는 보호자의 외침이 들리고, 늦었다며 탁탁탁 계단을 오르는 아이의 발걸음 소리가 건물 안에서 울린다. 어느 날, 이 일련의 소리는 물에 잠긴다. 점점 더 자주, 예측할 수 없이 휘몰아치는 비는 일상의 소리를 덮쳐 뭉그러뜨린다. 물은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 땅 아래의 냄비와 신발과 옷가지들을 마구 헤집어 놓는다. 햇빛이 들지 않는 곳에 스며든 물은 눅눅한 곰팡이 냄새를 풍기고, 그 곳에서 살아내는 소리는 또다시 반복된다.


25.07.20. 흰발농게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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