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전화가 무서워졌을까?
콜포비아 신인류
저는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에는 두려움 혹은 불편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전화 통화는 왜 이렇게 두려움을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전화 공포증이 생긴 건 꽤 오래되었습니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용어 중에 '콜포비아'라는 단어가 있는데, 제가 거기에 속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그 용어가 유행하기 전부터 전화 공포증을 겪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원래는 전화 공포증이 없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없던 전화 공포증이 생겼더라고요.
첫 직장에서 사업자(사장님들) 분들과 통화할 일이 많은 직종에 종사했습니다. 당시에는 전화가 울리는 것이 조금 두렵긴 했지만 콜포비아가 될 정도로 영향을 미치진 않았습니다. 단순히 문의 사항에 안내하고,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 드리는 정도로 업무와 관련된 부분만 대응하면 되는 전화였기에 그렇게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저는 여러 직종을 거치게 되었는데, 그중 한 직종에서 매일 얼마간의 전화를 해야 했고, 전화를 통해 고객을 유치하고 관리하고 대면 상담까지 진행해야 하는 업무였습니다. 고객센터 업무도 아니었는데 제가 느낀 느낌은 흡사 고객센터 직원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매일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이야기와 불쾌한 거절을 당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죠.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해도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요.
이런 직업적 경험을 하기 전에, 제가 전화를 받는 고객 입장이었을 때는 한 번도 무례하게 군 적 없었어요. 잘 모르는 상대에게 무례하게 굴만큼 어딘가 삐뚤어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받기 싫은 전화는 안 받으면 그만이었고, 불편한 제안은 거절의 의사를 정확히 밝히면 되었으니까요. 거절을 할 때도 "죄송하지만~"으로 시작해서 아주 정중한 거절을 하는 고객이 저였습니다.
하지만, 제안을 하는 직원의 입장에서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더군요. 무례한 사람도, 이유 없이 분풀이와 짜증을 내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요. 내가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입장이었음에도 본인들에게 불필요한 정보일 경우 무례하게 행동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 보다 콜포비아가 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어떤 블랙컨슈머에게 크게 마음을 다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상처로 남았는데요. 그분 덕에 콜 포비아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담당 고객이 아니었고, 퇴사자의 담당 고객이 저에게 넘어와서 친절하게 관리를 해드리는 과정에서 블랙컨슈머 분은 이전 담당자에게 요구했던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저에게 요구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팀장님과 회사 차원에서 회의를 거쳐 해당 내용은 사측에서 들어줄 수 없는 요구임을 여러 차례 안내를 드렸지만, 그분은 그저 '어린 여자애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감정 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상처를 받았고, 결국은 그 일로 얼마 뒤 그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이야기 한 적 없던 일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분이 잊히질 않는 것 같습니다. 아주 가끔 떠오르는데도 생전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이 쏟아내는 이유 모를 분노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니까 말입니다. 말로 사람을 칼로 찌른다고 하죠. 저는 칼로 베이는 느낌을 정말로 그분 때문에 경험해 보았습니다. 확실한 이유라도 있으면서 그렇게 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분은 자신이 요구하는 것과 전혀 맞지 않게 '그저 본인 인생에 누적된 악한 감정을 배출할 만만한 상대에게 쏟아낸 것.'이었죠.
물론, 당시에 저는 저런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울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본인 인생이 괴로워서 어딘가에 풀고 싶어서 그러셨던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며 이해하려고도 했죠. 하지만, 이해와는 별개로 마음에 상처를 받은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결국 저는 직원이었지만 회사 측과 팀장님께 이 상황을 말씀드렸고, 팀장님께서 직접 나서주었습니다. 남자 팀장님께서 이분과 통화할 때는 처음부터 저와 통화할 때와는 아주 다른 태도를 보였다고 하더군요.
억지 부리는 것도 없이 팀장님이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아주 예의 바르게 "그 직원분께도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이 더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예의 바른 태도로 사과할 수 있는 분이 그동안 저와 통화를 할 때는 어떻게 처음부터 그렇게 무례하게 굴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독한 마음으로 분풀이하듯이 화를 배설했는지 말이죠.
그 이야기를 듣고, 팀장님께는 "감사하지만 더 이상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얼마 안 있다가 급성으로 어딘가 크게 아파서 입원하게 되어 여차 저차 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저는 어쩌면 사람을 기피하고, 전화 통화도 기피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천성이 사람을 좋아했던 저였기에 대면해서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며 감정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하는 것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지만,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은 여전히 불안하고 힘이 듭니다. 물론 통화를 하는 것 자체는 괜찮지만 전화가 울리고, 초반에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는 불안함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쉽게 남에게 상처 주지 마세요.
이 일로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편함을 겪고 있는 콜포비아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통화할 때는 불안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화보다는 텍스트로 할 수 있는 카톡이나 문자가 더 편하더라고요. 아마도 콜포비아의 여파가 아닌가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만으로 무언가를 전달받아야 하는 전화는 그 자체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전화에 공포증이 있는 못난 모습을 갖고 있는 콜포비아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비슷한 모습을 갖고 계신가요? 혹은 여러분만의 공포증을 갖고 있는 어떤 특정한 것이 있나요?
다들 저마다 불편함 하나. 상처 하나는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