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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을 말해본다

사람들에게 알리기

by 포테토칩

*본 내용은 휴대전화 화면에서 가독성이 좋습니다


처음 소식을 알린 건, 가족이었습니다. 고속터미널 지하철 정거장에서 운을 떴을 때, 부정적인 반응이 먼저였습니다. 잘 자리 잡은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고생할까 걱정스러움에, 먼 곳에 떨어져 자주 보지 못한다는 서운함이 더해져 마땅찮아하셨습니다. 아마 서른 즈음에 지나가는 늦바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으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생에 여섯 번의 변곡점이 있으면 성공한 삶이다.' 라며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게, 자식이라 걱정이지, 타인으로는 자랑스럽다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서운하던 마음도 나중엔 '너 영주권 받으면 나도 비자 나오니?' 하시며 은근 기대하시더군요. 이렇게 가족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2년 동안 걱정을 덜고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어 교재가 집으로 배달되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도서관에 다니자,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만남이나 약속을 계속 미룰 수 없어 가까운 친구들에게 '나 나중에 독일 갈 거야 ‘라고 언질을 주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한 친구는 자신도 프랑스어 공부 중이라며 여러 가지 어학 공부 앱을 알려줬고, 다른 친구는 자기도 언젠가는 미국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떠나기 2년 전이었으니 크게 와닿지 않았겠지만, 제 의견을 비웃거나 농담으로 여기지 않고 지지해 주어 고마웠었죠. 혹시나 독일행 계획이 변경되어 안 가게 됐는데 간다고 잘못 소문날까 봐, 비행기 표를 끊기 전까진 그 외의 사람들에겐 굳이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바로 고치는 게 더 고생일 테니, 좀 더 가시회 될 때 까지요.


2년이 흘러 비행기표를 사고 짐 정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기약이 없는 헤어짐이니 이상하고 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편 퇴사 소식 전하기, 공적인 관계를 정리하는 건 당연히 기대되었죠! 퇴사는 11월 말로 정했고(12월까지 근무할 경우, 크리스마스에 일하는 스케줄인데 그럴 순 없어 한 달 일찍 퇴사했습니다), 3개월 전에 과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8월 어느 날, 근무를 마무리하고 다음 근무자인 과장님께 인계를 드리며 자연스럽게 전달드렸습니다.


"과장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난 꼭 드릴 말씀 있다는 게 가장 무섭더라. “

"네, 저 독일 가려고요."


놀라움과 부러움이 겹쳐진 과장님 얼굴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제가 그만 두리란 걸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멀리 갈 줄은 몰랐다고 하셨습니다(저도 몰랐죠). 가는 건 아쉽지만, 다른 곳에서 잘 펼쳐나가라는 덕담을 해주셨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구인하고 인계하는 게 가장 걱정되었는데, '제가 나간 자리 채우려면 병원이랑 연봉협상 해야 하니 월급 오르겠다'라고 가벼운 농담으로 풀어주신 과장님 덕분에 덜 무거운 마음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는 1 ~ 2주 새 소문이 퍼졌고, 사퇴하는 것 반, 독일 가는 것 반 부러워하시는 동료들과 서서히 작별인사를 하며 마무리했습니다.

3년의 끝, 응급실 마지막 날. 날씨도 화창한 게 기억납니다.


의료계는 좁은 사회이고, 동향에 빠르게 반응합니다. 일을 그만두면 새로운 일자리 필요하냐고 연락이 오기도 하죠. 어차피 퍼질 소문, 독일행에 대해 서류 준비하며 겸사겸사 이전 병원의 과장님들께 먼저 연락을 드렸고, 자연스럽게 친했던 동료들에게 연락 왔습니다. 이유를 궁금해하셨는데 비슷한 나이대와 경력의 의료진들이라 더 그랬습니다.

응급의학과는 흥미진진한 분야이지만 그만큼 쉽게 자극에 무뎌집니다. 그래서 적잖은 의료진이 2-3년을 주기로 직장을 옮기는데, 제 독일행도 이러한 결정 중 하나이고, 단지 장소가 바뀐 것뿐이라 설명했습니다. 한 교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가정을 가지고 아이를 가지면서 마주하는 정착함'이란 현실에서 꿈꿔지는 결정이라고, 어려운 결정이지만 자기 대신 잘 살아달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꼭 연락해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니, 나머지는 수월했습니다. 이어가고 싶은 인연이 많지 않기도 했고, 외국행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조건이 가벼운 연결고리였던 사람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휴대전화를 새로 살 때마다 연락처를 정리하는 것처럼, 옛정 때문에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정리하니 '내가 독일에 가서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홀쭉해진 연락처를 보고 나니, 한번 죽고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내편인 사람들의 기억을 가지고 새로 태어나는 느낌과 더 비슷하겠죠. 홀가분하고, 시원합니다. 포기할 아쉬움이 없으니 섭섭도 없었습니다.

우리집 고양이들과 헤어지는 게 더 어려웠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것은 별 일 아닙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다르니, 별일이 됩니다. 저도 모르게 독일행에 어느새 기대하고, 인생의 다음 장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죠. 사람들에게 결심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저에겐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할 기회가 되었고, 해묵었던 과거의 나와의 작별, 그리고 한번 더 다짐하는 계기였습니다.


*다음은 '남긴 것과 남길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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