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도 안 갔는데 할게 뭐가 이렇게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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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날짜가 가시권으로 들어오자,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출국 준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해야 할 것들이 많은 데다가 계속 생겨나는 게 도저히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아, 크게 세 분야로 나누어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1. 독일 가면 하기 어려운 것들 한국에서 하기
2. 독일정착에 필요한 것 준비하기
3. 독일생활을 장기적으로 준비하기
구분하는 게 큰 의미가 있나 싶겠지만, 자잘한 것까지 준비해야 하는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목적과 우선순위를 정해 효율을 높였습니다. 이에 맞춰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 출국 직전에 준비할 것들로 다시 나눴고,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포기했죠.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것들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몇 가지 빠뜨렸거나, 출국 뒤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야 했을 텐데, 돈과 수고와 시간을 배로 썼겠죠. 이제부터 출국 전 약 6개월 간 한국에서 시간을 가지고 진행했던 것들에 대해서 차근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독일 가면 하기 어려운 것들 한국에서 하기
: 건강 검진, 치과 진료, 여행 가기.
건강 검진과 치과 진료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한국에서 아프면 병원 가면 되지만, 독일에서는 병원 예약하는 것부터 골치 아프고, 혹시 내게 질병이 있다면 치료하고 가야 하니까요. 응급 상황은 빠삭하지만 그 외의 질병은 잘 모르기 때문에 현재 나의 상태를 파악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한 건강검진센터에서 '여름맞이 특별할인'을 진행하길래 냉큼 예약을 했고, 한 달 정도 후 건강검진을 진행하였습니다. 머리 CT는 찍고 싶었는데 증상이 없는 비급여라서 굳이 진행하지 않았고, 대신 소화기 내시경(대장, 위)과 갑상선 초음파를 포함하여 진행했습니다. 어차피 뇌 안에 문제가 있었으면 독일에 못 갈 테니까 안 한 이유도 있습니다.
내시경 검사에서 '위칸디다증'이 소견 외에(스트레스받으면 잘 생기는데 약 먹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무사히 건강검진 완료했습니다. 저는 운 좋게 별일 없이 끝났지만, 같이 가는 친구는 갑상선 약물 처방이 필요한 경우여서 가기 전에 6개월 치 약을 처방받았고, 혹시 몰라서 처방전도 영문으로 받아뒀습니다.
치과도 가서 스케일링도 하고 충치치료도 받고 말끔한 치아로 재정비했습니다. 아직 뽑지 않은 사랑니를 혹시 빼고 가야 하는지 물어봤더니 '똑바로 솟은 모양이고, 지금은 문제가 없으니 일단 경과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빼야 한다고는 하는데, ㅡ독일에서 안 아프길 바라기로 했습니다.
그다음이 여행 가기였습니다.
독일에 있다가 비행기 탈 일 있으면 한국에 왔지, 주변 국가로 놀러 갈 일은 없을 겁니다. 앞으로 독일에서 짧게는 1년(정착 실패 후 돌아올 경우), 못해도 4-5년은 있을 것 같아서 이것을 빌미로 겸사겸사 그동안 생각만 하고 가보지 못했던 아시아 여행을 갔습니다.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일본 후지산 등반(7월), 인도 여행(8월)을 독일을 핑계 삼아 잘 다녀올 수 있었는데, 그전까지는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주변 국가로의 여행이 당분간 힘들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긴 했습니다.
이것 말고도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한국의 문화생활을 즐겼습니다.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찾아다녔고, 날이 좋으면 밖으로 돌아다녔습니다. 고궁 같은 문화재도 좋지만,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 시스템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막상 떠나려고 하니, 실시간 버스 정류장 안내부터 배달 시스템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의미를 가지게 되더라고요. 국내 여행으로는 제주도 한라산 등반, 전라도 맛집 탐방, 강원도 일출보기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문제로 보류했습니다. 나중에 한국에 잠시 들르게 되면 가야겠습니다.
의외로 한식은 찾아먹진 않았습니다. 독일에서 직접 요리하고, 굳이 한식이 당기면 한국 음식점에 갈 예정이었습니다만, 생각 외로 독일에서 한식이 그립진 않습니다. 근데 독일은 회가 별로 없습니다. 회는 많이 먹고 오세요. 홍어도... 짜장면도... 해 먹기 힘든 것만 먹고 오면 됩니다.
2. 독일 생활에서 당장 필요한 것 구하기
: 의사 면허 인정 서류 작업, 비자 관련 서류 작업, 독일 부동산(이미 설명).
의사 면허 인정 서류, 이것이 독일에 가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메인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할 예정입니다. 간추려 말하자면 서류 작업에 다들 3개월 정도 걸렸다길래 '뭘 하면 저렇게 오래 걸려'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오래 걸렸습니다. 서류 작성 자체에 오래 걸리는 경우도 있고, '서류 제출 당시 3개월 이내 발급'된 서류만 인정되는 기한이 있는 것들도 있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니어서 꽤 수고스럽습니다.
그에 비해 비자 관련 서류는 굉장히 수월합니다. 혹시 독일에 길게 머무실 분이 있다면 비자를 미리 발급받는 걸 강력히 추천합니다. 워킹 홀리데이던, 어학이던, 유학이던, 찬스카드이던 한국말로 한국에서 받아오는 게 가장 빠르고 안전합니다. 출국 1개월 정도 전에 비자 신청하려니 출국 전까지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현지에서 발급받으시려는 분들도 계실 텐데, 그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일 뿐, 독일어로 인터뷰하는 수고를 차치하고 독일 행정 속도와 시스템으로는 제시간에 받기 어렵습니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현지에서 발급받으려다가 고생 중이니 부디 비자 신청, 인터뷰, 발급까지 최소 2-3개월 정도 기간을 두고 신청하여 안전하게 독일 입국하시길 바랍니다.
3. 독일 생활이 장기적으로 준비하기
: 독일어 공부하기, 자금 모으기, 백업 플랜 세우기.
앞의 1, 2번까지는 닥치면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얼레벌레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독일 집에 정착한 뒤 빠르면 1주일, 적어도 한 달 뒤에는 이런 고민들은 끝나있겠죠. 그런데 그다음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기회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기회는 한 번뿐. 독일 환경에 적응하고 또 '독일 사람들' 사이에 '내'가 잘 융화되기 위해서는 자기 계발과 뒷받침해 줄 자본, 그리고 백업 플랜이 필요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가장 중요한 건 독일어입니다.
제가 독일에 남아있는 한 끝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고생이겠죠. 독일도 이젠 영어를 많이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사용이 가능할 뿐, 실제 직장 생활을 위해선 독일어를 제대로 구사해야 합니다. 예상대로였더라면 독일에 오기 전에 독일어 능력시험을 통과했어야 하는데, 저를 과대평가한 탓에 이미 그것은 물 건너가 버린 상태였습니다. 허허.
뭐, 능력시험을 통과했더라도 말 못 하는 건 도긴개긴이라 입 트이는데 2개월 걸릴 거라 예상했던 초기 계획을 변경하여 시험 보는 것까지 6개월을 어학에 집중 투자하기로 하였습니다. 독일어 능력시험을 보고, 1개월 정도 뒤에 시험 결과를 확인한 뒤, 통과하면 의사면허 인정 서류를 접수를 마무리하고 의학 관련 어학 시험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모든 게 잘 풀릴 경우 4-5월쯤 의사 면허 인정 서류가 완성이 될 것이고, 그 이후엔 여유롭게 독일어를 익히기로 했습니다.
6개월은 언어 공부가 끝나고 나면?
취업 준비 해야겠죠. 저에게 독일에서 취업은 궁극적 목표임과 동시에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보통 어학비자가 1년짜리인데, 독일의 관공서 속도라면 1년 내에 의사 면허 인정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마냥 기다릴 순 없기 때문에 빠르면 어학 비자가 끝나기 전에 관련 분야에 취직을, 그렇지 못할 경우 취업 준비 비자(찬스카드)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임상보다는 관련 서비스 연구직에서 일하고 싶기 때문에, 6개월 동안은 관련 분야에 대한 이력 만들기에 주력하기로 했습니다. 의료기관이나 Altheim(알트하임, 양로원 같은 곳)에서 파트타임 근무하면서 관련 언어를 읽히고, 관심분야에 대한 세미나, 프로젝트 등에 참여하고, 저의 생각을 담은 홈페이지를 만들어 linkedin에 활성화시킬 예정입니다.
취업도 안되고 독일 면허 변경도 예정대로 안된다면, Ausbildung (직업학교)로도 비자를 발급받는 방법도 고려하기로 했습니다. 미래에 대해 유연성을 유지한다면 독일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습니다만, 일단 어디든 최대한 빠르게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자금.
이 글의 이유, 메인, 그리고 하이라이트.
1년에 생활비 2천만 원, 5년 간의 독일 정착비로 자금 1억을 모았습니다. 출국 전까지 약 1년여간의 여유 시간이 있어 적금으로 재테크에 눈을 돌렸는데, 마침 주거래 은행에 외환서비스가 있어서 외환적금을 들었다가 출국 직전에 현금화해서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당시 적금이자가 3.4%였으니 언뜻 보면 원화 예금보다 수익률이 높아서 망설임 없지 적금을 들었는데, 제가 준비하면서 가장 후회한 게 외환 예적금입니다.
일단 수익성이 별로입니다. 외환 계좌는 출금 수수료가 1-2% 정도 들더군요. 외국 은행들은 계좌 사용료를 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한국의 외환계좌에도 적용되는 건 몰랐습니다. 이자가 3.4%인데 현금으로 찾을 때 수수료가 1-2%, 현금화하지 않고 추후 해외 계좌로 바로 송금해도 수수료가 1-2%, 유로화에서 원화로 환전하여 출금하면 수수료는 없지만 매매 환율이 적용되어 원금의 1-2% 정도 손해를 보는 구조입니다. 결국 외환예적금은 환율 상승으로 인한 이득이 없다면 좋은 단기 투자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출금은 실패하고, 일단 외환계좌에 돈이 있으니 송금 수수료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원래는 독일에 계좌를 열고, 그 계좌로 송금을 보내려고 계획했습니다. 이렇게 본인 계좌 간 거래를 할 때는 지정외국환은행을 지정해야 큰 단위의 자금을 옮길 수 있습니다. 이때 장기체류자나 유학생 같은 걸로 등록하면 송금액 상한(1번에 미화 5000달러, 1년에 50000달러 이상이면 신고해야 함)도 높아지고 수수료도 저렴해지지만, 제1금융권이었던 주거래 은행은 제가 가진 서류로는 장기체류자 등록을 할 수 없었습니다. 타인에게 부탁하여 큰돈을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송금액 상한이나 환전 수수료는 비슷합니다. 수수료도 수수료지만, 한국에서 외국으로 돈이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어렵더군요.
결국 수수료 줄이기에 실패한 저는 지폐로 가져갈 금액만 현금화하고, 나머지는 은행에 묶어뒀습니다. 운이 좋았던 건 지, 작년 말 환율이 갑자기 올라 얼떨결에 환테크에 성공했습니다만, 외화를 보유하는 것은 환율 상승으로 인한 투자 가치 이외에는 전혀 메리트가 없습니다.
돌아 돌아 추천드리는 방법은 해외에서 사용가능한 신용카드(트래블** 이런 거)를 만들고 환율 저렴할 때마다 환전해 두었다가 사용하세요. 카드 수수료 안내는 가맹점에서 카드로 지불해도 되고, 현금이 필요하다면 환전 수수료 없는 ATM기를 사용할 수 있어 가장 저렴합니다. 월세 등 큰돈을 계좌이체를 해야 할 때는 제1 금융권이 아닌 인터넷 전용은행 지정외국환은행으로 등록(여긴 서류가 간단하여 저도 바로 됐습니다)하여 송금 수수료를 적게 내거나, 수수료 저렴하게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플들 있으니, 그걸 사용하는 게 가장 간단하고 경제적입니다. 심지어 쉽습니다.
중요했던 순서대로 정리하자면,
1. 비자는 3개월 전부터 미리 준비해 둡시다. 가서 만들면 고생합니다.
2. 언어 점수는 만들어 올 수 있으면 좋지만, 안 돼도 슬퍼하지 말고 독일에서 진행하십시오. 어차피 언어는 끝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3. 건강검진, 치과 진료 꼭 하고, 장기 복용자라면 처방전까지 가져오세요. 처방전은 영어면 대부분 됩니다.
4. 외환예금은 굳이 안 해도 됩니다. 큰돈을 송금해야 하는 경우에는 인터넷은행이나 수수료 적게 내는 송금어플을 사용하고, 해외 환전 및 수수료 혜택이 있는 신용카드를 만들어 사용하세요.
5. (돈 있을 때) 여행 많이 다니세요. 그냥 놀러 가는 거랑 또 다른 느낌의 여행이 됩니다.
입니다. 모두들 독일로 이사 가는 데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가겠지만, 머무를 수 있는 비자와 집, 자금만이라도 효율적으로 준비하고 가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서류 준비'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