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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Mar 14. 2024

대회를 망쳐보고 배운 것

하루키의 책에 대한 독후감

24년 봄 대회는 이미 망했다. 대회를 일주일 앞둔 이 시점쯤 되면 이미 기록은 80% 이상 정해져 있다. 마라톤은 명확한 페이스 전략을 가지고 달려야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사전에 내 폼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왔는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한 준비과정이다. 전문가인 코치님들의 피드백을 받는 게 좋겠지만 주변이 도움을 받을만한 수준의 코치님들이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Vdot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어바웃 한 수치는 예측 가능하다. 본인의 단거리(5~10k) 기록을 통하여 예측된 목표시간에 장거리를 어느 정도 거리까지 뛰었는지, 마일리지는 얼마나 쌓였는지를 고려하여 보정하면 대략적인 목푯값이 나온다. VDot 이외에도 몸 상태를 테스트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훈련프로그램도 있으니 전문가들이 올려놓은 영상과, 책을 참고하면 될 것 같다. 아무튼, 내 입장에서의 결론은 아쉽게도 이번 봄, PB경신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말이다.


'설령 속도를 올린다 해도 그 달리는 시간을 짧게 해서 몸이 기분 좋은 상태 그대로 내일까지 유지되도록 힘쓴다. 장편소설을 쓰고 있을 때와 똑같은 요령이다. 더 쓸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히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계속하는 것-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이어지는 따옴 문장은 전부 같은 책에서 발췌함


지금 시점에 복기해 보면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리듬을 이어가지 못한 것. 작년 가을 대회 이후에 전투적인 자세로 임했던 일과 술자리들이 너무 길어지며, 훈련이 끊어진 기간이 길었다. 하루만, 하루만 더 놀자고 운동을 미루면서도 1월이 되고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 예전처럼 매일을 달릴 수 있을 거라 쉽게 생각했다. 그렇게 방탕하게 보낸 날들이 쌓이고 나자 관성이 생겼다. 정지하고 있는 상태 그대로 있고자 하는 마음. 달려야 할 때 달리지 못해 발생한 부채는 점점 쌓여갔고, 조바심과 자존심에 무리하여 훈련에 임하는 순간들이 늘어갔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리듬을 이어 가지 못한 것이다. 거리를 급하게 늘리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 달리기 위한 힘과 마음이 고갈된 상태가 며칠 씩 이어졌고, 무리한 훈련의 결과 처음 겪어보는 부상의 신호에 불안해지기도 했다. '그래 나는 절대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었지.' 위축된 마음으로 또 훈련량을 줄여갔다. 그렇게 시나브로 24년 봄 대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일반적인 러너는 "이번에는 이 정도 시간으로 달리자"라고, 미리 개인적 목표를 정해 레이스에 임한다. 그 시간 안에 달릴 수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뭔가를 달성했다'라고 할 수 있으며, 만약 그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뭔가를 달성하지 못했다'라는 것이 된다.


뭔가를 달성하지 못한 달리기,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고민해 본다. 하루키가 60대가 되어서 느꼈다는 쇠락의 징후들을 미리 맛보기 하고 갈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닌가. 내 달리기의 방향성은 즐거운 경험, 두 발로 도시를 기억하기라고 잔뜩 폼 잡으며 떠벌린 지 겨우 1년도 안된 시점. 다시 기록에 연연하는 나를 질책하기 위한 브레이크. 정도가 아닐까.


그런 까닭에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아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나도 하루키가 말한 저 느낌이 좋아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달릴 때는 아무리 짧은 거리를 달려도 호흡이 가빠왔었다. 보통의 사람에게는 숨을 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가빠오는 호흡에 허덕이다 보면 중요치 않은 일들, 이를테면 일과,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 따위는 생각할 여유조차 없게 된다. 그렇게 시끄러운 머릿속이 조용해지는 순간이 오히려 좋았다.


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습관이 되고, 쑥스러움 같은 것도 엷어져 갔다. 스포츠 전문점에 가서 목적에 맞는 제대로 된 신발과 달리기 편한 옷도 사 왔다. 스톱워치도 구입하고, 달리기 초보자를 위한 책도 사서 읽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러너가 되어간다.


하지만 그 무렵에는 달리면서 자신의 신체 구조가 나날이 변화를 겪고 있다는 감촉이 있었고, 그것은 참으로 흐뭇한 일이기도 했다. 서른 살이 넘은 지금도 나라고 하는 인간 속에 아직 그만한 가능성이 남아 있었구나, 하고 느꼈다.

하루키가 러너가 되어 가는 과정이 내가 변해온 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신발의 성능이 좀 좋아졌을 뿐이고, 스톱워치 보다 훨씬 더 다양한 기능을 가진 스마트 워치가 대중화되었을 뿐이다. 살이 빠지고 호흡이 안정되면서 느껴지는 느낌. 한 번에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고, 견딜 수 있는 속도의 상한선이 높이지는 느낌. 그런 향상감. 성장의 과정이 주는 뿌듯함과 자긍심. 사람이 러너가 되어가는 과정은 비록 시차가 있다 할지라도 다르진 않은 것 같다.


나로서는 작품이 햇빛을 보게 될지 못 보게 될지 하는 것보다, 그걸 다 써낸 일 자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너가 되어가는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결국 다다르게 되는 지점도 비슷하지 않을까.  킵초게처럼 존경받는 엘리트 선수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고,  벽에 부딪히게 되어 있는 게 필연 아닌가. 그게 어디까지인지 끝까지 밀어붙여 보는 것도 분명히 멋진 일이지만, 전업으로 달리지 못하는 이상 어느 정도 타협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러니까 비록 조촐한 거리를 달릴지언정 달리기를 그만두지 않는 일, 시상대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완주해 내는 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는 모든 시간들에 달리는 기쁨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이다. 올봄에는 천천히 뛰겠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하고 있다. 그래도 나란 사람이 만들어지는 건 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살아낸 시간 속에 있다는, 조금 더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만큼 멋진 삶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하루키의 문장으로  자기 합리화의 글을 마무리해볼까 한다.


그리고 나는 - 그런 여러 가지 흔해 빠진 일들이 쌓여서 -지금 여기에 있다.
어쨌든 눈앞에 있는 과제를 불잡고 힘을 다해서 그 일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간다. 한 발 한 발 보폭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동시에 되도록 긴 범위로 만사를 생각하고, 되도록 멀리 풍경을 보자고 마음에 새겨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장거리 러너인 것이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 -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 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그렇다, 아마도 이쪽이 좀 더 적절한 표현일것이다).
[영어 제목이 리듬감 있고 좋다. 하루키도 빌려쓴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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