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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Feb 09. 2024

첫 풀코스 마라톤을 앞둔 러너에게

이제 긴 겨울이 끝났다.


1. 일단 겸손하자


알고 있다. 당신이 나보다 더 잘 뛸 수도 있다는 걸.  그럼에도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10킬로 미터를  45분 언더로 달릴 수 있는 능력자라 할지라도 42.195km는 전혀 다른 영역이다. 당신이 LSD(Long Slow Distance)를 40킬로미터 이상 달려본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대회 페이스로 계속해서 달리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더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은 레이스 도중 높은 확률로 근육 경련을 경험할 것이다. 내가 달렸던 모든 대회에서는 30킬로 지점 근처부터  수많은 '톰'들이 허벅지를 부여잡고 쥐를 쫒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대회 중에 긴장을 놓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기분에 들뜨지 않도록 스스로를 진정시키자. 벅찬 감동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고 난 뒤에 일시불로 받는 편이 안전하다.



2. 과유필급(過猶必及)이다.


과함이 모자람 보다 안전하다. 출발 전 에너지 젤과 진통제를 먹어두자. 급수대는 아무리 바빠도 들려서 입이라도 적셔두는 편이 좋다. 에너지 젤은 종류별로 과하다 싶게 준비하고, 근육경련을 풀어준다는 크림픽스도 3개 정도는 챙기자. 그래도 불안하다면 근육이완제도 챙기자. 생각보다 주머니가 많은 옷이 좋다. 트레일 러닝용 장비들에 수납공간이 많이 있는데, 베스트는 쓸리거나 갑갑할 수 있으니 주머니가 많은 바지를 입는 걸 추천한다.  몇 달을 준비한 대회를 마지막 한 끗이 모자라서 DNF(Did Not Finish)할 수는 없지 않은가. 넘치는 게 오히려 좋다. 하다 못해 안정감이라도 가질 수 있으니, 과유필급이다.



3. 교통카드는 집에 두고 나와라


낙오의 가능성은 떠올리지도 말아라. 몇 달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달려온 과거의 나를 믿어라. 살며 맞이한 시간 중 가장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되겠지만, 이겨낼 수 있다. 힘들거나 아프면 잠시 쉬어도 좋다.  다시 일어나 피니시 라인까지만 가면 된다. 심지어 걸어도 된다. '적어도 마지막까지 걷지는 않았어요.'는 하루키 씨나 할만한  말이다. 아시겠지만 걸어서 들어오면 실격이라는 규정은 없다. 그리고 끝까지 도착하지 못한 주자에게 주어지는 완주메달도 없다.   Western States 100 대회에서 30시간의 컷 오프를 단 몇 초 차이로 통과하는 Gunhild Swanson 할머니의 영상을 찾아보길 추천한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나보다 잘 달릴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유튜브에 넘처나는 조언들도 이미 대부분 시청했다. 당신 마음속의 불꽃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첫 대회를 한 달여 앞둔 시점의 불안한 마음은 아직 잊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달려온 겨울. 이제 지루한 겨울이 막바지에 왔다. 대회 신청과 신발 구매에 경쟁자가 더해진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첫 풀코스에 도전하는 당신을 두 팔 크게 벌려 환영한다. 내가 달리며 외칠 수많은 파이팅이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며.

[겨울이 끝나간다. @my.ha2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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