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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승 Feb 18. 2023

없음의 밤

오전의 햇볕 아래 빛나던

만물의 다채(多彩)가

눈부신 기만이었다 폭로하는

밤의 칠흑이 덮친다     


죄다 같은 것만 같은

모서리들의 어렴풋한 실체가

두운 조명에 드러나고     


밋밋하고 평평한 세계의

무채색 허무가 무대에 오르니

관객의 동공에 비치는 건 그저

없음과 없음과 없음과 없음이다     


있음의 신앙이 무너지는 위기     


기억과 신체가 서서히 허물어지는

공허의 지진 앞에서

지루한 그림자 되지 않으려

황급히 혀를 깨문다     


화끈.     


기절할 듯 터지는 열기가

삶이란 환상을 다시 가동하고

입가로 새어 나오는 액체는

우연히 닿은 달빛과 함께

시뻘건 생명을 외친다     


아- 있다.

나는 분명히 있는,

그 무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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