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근황
8월이 지나갔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가까워 온다.
하필 제일 바쁜 시기에 시작해서 출근하면 눈이 빠지게 일하고,
집으로 출근해서 마지막 시험을 보는 남편 온갖 수발을 들다가,
갑작스럽게 사택 나가라고 해서 서류 알아보고 계획 세우다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다 보니 한 달이 지나갔다.
남편은 결국 그렇게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호수의 오두막으로 여행을 갔다.
남편이 없으니 적막해진 집에서 평온하게 글을 쓰고 있다.
이곳의 날씨는 추운 거 같으면서도 덥고 더운 거 같으면서도 춥다 ㅠㅠ 거의 사계절 내내 온난한 계절인 하와이에 너무 적응돼 버렸나, 여기는 하루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느낄 수 있는 기후랄까... 어디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어떻게 입어야 할지 고민이다.
심지어 그에 맞춰 에어컨과 히터가 번갈아 나와서 약간 아수라 백작이 된 기분 ㅋㅋㅋㅋㅋ 망할 중앙제어!! ㅠㅠ 그래서 사무실에 경량패딩이랑 블레이저랑 스타킹도 놓고 오고 출근할 때는 여름 원피스에 카디건이나 코트를 입고 간다. 뭔가 언발란스 패션
어느 날에는 최저 기온이 50도 가까이 떨어져서 밤에 추워서 깼다가 주말에 이불 빨래를 두 판을 했다. 담요 두 장을 반 접고, 이불도 반 접어서 여섯 겹을 덮고 잠. 그다음 주에는 다시 70도 가까이 올라 더워서 머리 아파서 깼다. 결국 다시 원위치 행.
겨울이 너무 오랜만인가, 뭔가 추운지 안 추운지에 대한 느낌을 모르겠다. 이불을 덮으면 덥고 이불을 차면 춥고...
확실히 기후에 따라 그 지역의 문화나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 역시 영향을 안 받으래야 안 받을 수가 없구나 느낀다. 의식주 모든 방면에서.
하와이에서는 무조건 햇빛을 반사시키는 밝은 색 위주의 인테리어임에도 덥게 느껴졌다면
실외 기후가 험난해 실내에는 무겁고 어둡고 중후한 원목이 되려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역시 계절이 있다는 건 참 매력적이다
그 와중에 유용하게 쓰는 물건들.
저 로시 플랫은 플라스틱을 재활용해서 만든 신발! 그래서 엄청 가볍다. 거의 양말 급. 그리고 칼발에 어울리는 디자인 ㅠㅠ 나는 뚱발이라서 발이 들어가긴 하는데 거의 발가락 가리개. 또 다른 의미의 양말 급. ㅠㅠ 처음에 저 신발 신고 밖에 나가려니 남편이 신발 안 신냐고 물어봤다 ㅋㅋㅋ 암튼 통풍도 잘되고 젖어도 금방 말라서 휘뚜루마뚜루 신고 다니기 편하다. 로퍼도 예쁨
그리고 우리 엄마가 주신 우비! 이곳은 비가 자주 오는데 부슬부슬과 주륵주륵의 반복. 아주 가끔 우르르 쾅쾅. 부슬부슬이긴 한데 거의 하루종일 그렇게 와서 밖에 있으면 우산을 써도 다 젖는다고. 주말에 시애틀 다운타운 다녀왔는데 핑쿠핑쿠한 우비 입고 관광객 모드로 엄청 편하게 잘 다녔다. ㅋㅋㅋㅋㅋ 접어서 파우치에 넣고 다닐 수 있으니 평상시에 휴대하기도 좋고! 나중에 더 추워지면 나도 레인 자켓(바람막이)을 하나 사야겠다. 흐흐
남편 시험이 끝나자마자 내가 남편에게 여행을 다녀오라고 먼저 얘기했다. 프로젝트 하나 끝내고 다음 프로젝트까지 기간이 한 달 정도 남았는데, 그때 여행도 다녀오고 시댁도 다녀오라고. 나는 휴가가 없어서 같이 못 가지만 (^^) 시댁과 가까이 사니 너라도 자주 가라고.
시험도 안 봤으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 보상으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했을 때에는 기가 찼었는데... 결국 취직을 했고, 결국 일을 하긴 했고, 결국 시험을 끝내긴 했으니까. 남편이 드디어 행동으로 자신의 약속을 지키니 나에게도 심적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시험 끝났으니 이제 집안일도 나눠서 하자고 남편에게 주방 일을 일임했다. 나는 남편이 공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바로 식사할 수 있게 준비해 놓고 남편이 신경 쓸 일이 없게 했었는데... 남편은 하루 온종일 물어본다.
우리 저녁 뭐 먹어?
당신이 만드는 음식 먹지~^^
뭐 만들지? 뭐 먹고 싶어?
나는 당신이 만드는 거 다 좋아~^^
냉장고에 재료 뭐 있어?
한 번 가서 확인해 봐~^^
마트 가서 이거 저거 사야 되겠는데
응, 마트 다녀와~^^
그때 아마존에서 주문할 수 있지 않았나?
응, 당신 아이디로 주문하면 돼~^^
아마존에서 뭐 뭐 살 수 있지?
사이트 한 번 접속해 봐~^^
그냥 나가서 먹을까?
그래도 되고. 어디 갈지 당신이 정해봐~^^
예약해야 되나 봐
응, 그러네~^^
테이크아웃 할까?
좋아~^^
나보고 요리하라는 고도의 전략인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물어보는 건지... 왜 본인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 건지... 거의 매일을 저러다가 여행 갔다. 나도 독하다.
우리 남편이 자발적으로 청소할 때 = 청소 서비스 오기 하루 전 날. 이제까지 아무리 더러워도 내가 치울 때까지 신경도 안 쓰더니 어느 날 자기가 화장실을 치웠다면서 생색을 ㅠㅠ 내일 서비스 오시는데... 암튼 이렇게라도 남편이 도와주니 나도 많이 편해졌다.
<외국인 남편 덕분에 배운 자존감 대화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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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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