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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레몬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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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Oct 18. 2023

스탑오버 (2)

  "네?"

  현우는 귀를 의심했다. 혹시 자기 귀가 잘못되었거나 뇌가 착각한 게 아닐까 싶었다.

  "네, 폭탄이요."

  "비행기예요? 진짜로요?"

  그녀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농담으로 할 소리는 아니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에 현우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녀의 말대로 농담으로 할 얘기는 아님에도 이 여자는 현우에게 농담처럼 말을 던졌기 때문에.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농담이 아니라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진짜로 설치했다면 굳이 저에게 말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범행성명이라고 하면요?"

  "범행성명이요?"

  "제가 타려는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했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저는 그 비행기를 탈 예정이고요. 그럼 저도 죽을 텐데 그러면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현우는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고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그녀가 말한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해내어야 했다.

  "그럼 유서로 남기면 되지 않아요? 아니면 방송국에 보내 거나요."

  "그런 건 믿을 수 없어요."

  "왜요?"

  현우의 물음에 그녀는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무언가 물어보면 안 될 것을 물어본 듯했다. 잠시 그녀는 뜸을 들이더니 이내 표정을 풀고 현우에게 말했다.

  "그건 곧 알게 될 거예요. 그나저나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듣나 보네요? 이런 얘기 보통은 믿기 힘들 텐데."

  "아뇨, 지금도 믿기는 힘드네요."

  "그렇죠. 그게 보통이죠. 하지만 온전히 믿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저와 이런 문답을 할 필요가 없겠죠? 그냥 웃으면서 얘기하면 되니까. 하지만 현우 씨는 제 얘기가 만에 하나라도 진짜면 어떡하나 걱정이 될 거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공항 보안요원에게 달려가서 말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라 이렇게 저와 얘기하면서 진짜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고 있는 거겠죠?"

  그녀는 순식간의 현우의 심리를 꿰뚫어 보았다. 그녀에게 마음을 들킨 현우는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졌다. 그럼에도 현우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폭탄은 어떻게 설치한 거죠? 그리고 왜 설치한 거예요?"

  "저런, 너무 빠르게 답을 얻으려 하네요."

  현우는 그녀의 말대로 본인이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녀에게 마음을 간파당한 탓에 마음에 여유가 없어져서인듯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그녀가 탈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진의를 알아내야 했다.

  "천천히 제 얘기를 좀 들어보세요. 어차피 현우 씨는 다른 비행기를 탈 거니까 진짜든 아니든 별로 상관없잖아요?"

  현우는 그녀의 말에 발끈 화를 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내가 타건 타지 않건 저 비행기에 탈 사람들은 구해야죠!"

  그러자 그녀는 씁쓸한 미소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그런 마음가짐. 좋네요."

  그녀는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일단 내 얘기를 조금만 들어볼래요? 듣고 나면 현우 씨가 궁금해하는 게 다 풀릴 거라고 장담하죠.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아요."

  현우는 그녀의 얘기를 무시하고 바로 보안요원에게 알릴까 잠시 고민했다. 그렇게 해서 농담으로 끝나면 본인만 처벌을 받으면 되니까. 하지만 그녀가 정말로 폭탄을 설치한 테러범이라면 자기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아서 스스로 테러를 실패할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현우의 머릿속은 개운해지지 않았고, 결국에는 일단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럼 일단 들어보죠."

  "그래요. 그럼 그것부터 얘기할게요. 현우 씨는 '안전 규정은 피로 쓰인다'라는 말 알아요?"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처음 들어봐요."

  "우리가 지켜야 하는 안전 규정이나 수칙들은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얘기죠. 실제로 사고가 터지고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기 때문에 생긴 것들이니까요. 예를 들어볼까요?"

  그녀는 자신이 설치한 폭탄이나 동기에 대해 얘기를 하지는 않고 뜬금없는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비행기 조종석에는 반드시 2명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아나요?"

  "아뇨."

  "비행기 조종석에는 반드시 2명이 있어야 해요. 만약 기장이나 부기장이 화장실에 가야 해서 자리를 비워야 하면 대신에 승무원이 조종석에 들어가서 2명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죠. 그런데 이런 규정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녜요. 2015년에 사고가 생긴 뒤로 생긴 규정이죠."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었다.

  "2015년에 독일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승객들도 전원 사망했던. 사고의 원인이 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들이 있었어요. 센서 문제라던가 결빙 때문이라던가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조사결과 사고가 난 원인은 부기장인 것으로 밝혀졌어요. 우울증을 앓고 있던 부기장이, 기장이 화장실에 간 틈을 타서 비행기를 일부러 추락시킨 거죠. 그래서 그런 규정이 생긴 거예요, 반드시 2명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현우는 그녀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혹시나 괜히 시간을 끌려고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런 비슷한 사례는 찾아보면 참 많아요. 왜 공항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렸다 다시 타거나 수하물을 찾는 곳으로 재입장이 안되는지 아나요?"

  "그것도 뭔가 사고가 나서 아닌가요?"

  "맞아요. 1999년에 한 일본인이 수하물을 찾는 곳으로 들어가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고도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었죠. 그래서 그 사람은 공항에 그 사실을 알렸지만, 공항에서는 그 얘기를 듣고도 콧방귀를 뀌며 조치를 취하지 않았었어요. 그래서 결국 그 사람은 본인이 찾아낸 방법대로 비행기에 탑승한 다음 칼을 들고 기장을 협박했죠. 결국에 기장은 칼에 찔려 죽었지만 그 뒤에 부기장과 다른 사람들이 그를 제압하면서 마무리 됐죠. 그 뒤로 그런 규정이 생겼어요."

  현우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말했다.

  "그래서 그게 지금 폭탄을 설치한 거랑 무슨 상관인 거죠?"

  "상관이 있는 얘기예요. 정말로. 마음은 급하겠지만 조금만 더 들어봐요."

  그녀는 다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가끔은 이렇게 피를 봐도 안전 규정이 바뀌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게 내가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한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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