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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맑은븐니씨 Aug 19. 2021

일을 할 때, 질투를 섞으면 안 돼.

질투의 사전적 의미 l 세상에는 부러운 것 투성이.

질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

질투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 또 그것이 고양된 격렬한 증오나 적의라는 뜻을 의미한다. 질투라는 감정은 우리를 동기부여의 쪽으로 발전시키는 어떤 사회적 긴장감을 주는 감정이기도 하고, 때로는 질투라는 감정으로 질투의 대상을 흠짓 내게 되거나 훼손하게 만드는 감정이기도 하다. ( 그리고 자기 자신의 감정이 조절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되면 본인의 건강한 정신을 좋지 않은 쪽으로 발달시키게 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질투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질투의 여신 <헤라>가 있는 것처럼 존중의 여신도 이제 그 활동영역을 넓혀가야 하지 않을까?


질투는 나의 힘 l 외국어 잘하는 사람들 다 없애주세요.

대학 생활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경기도권에서 일반 인문계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런데 이 서울권의 학교에 입학해보니 외국어를 잘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여기에다가 외국어 특별전형이 있는 만큼 외국어를 특별히 잘하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몰릴 수밖에 없는 환경의 학교였으니 이런 문화에 대한 나의 이질적인 감정과 그 차이로 말미암은 충격은 입학 기간 내내 나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였다. 나는 내가 일반 인문계 사립고인데 그중에서도 외국어 실력이 특출 나지 않다는 상황이 조금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첨언을 하자면 프로필에 쓰여있는 <세계 서울 수학자대회>에서 다양한 외국학자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적인 대회인 만큼 통번역가 분들을 많이 지원해주셨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했을 것.


 그런데 이 공간에서 외국에서 아예 살다 와서 원어민 수준의 말을 한다거나,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와 외국어를 유창하게 한다든가, 외국어 실력이 특출 난 누군가를 보면 유창하게 말 잘하는 그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서 질투의 깜빡이가 켜졌다. 그리고서는 도서관을 향하여 달려가 외국어 관련 서적을 찾아 분노의 100km 시속으로 빨리빨리 넘겨 읽었다. 그러면, 그 학기에만 조금 실력이 늘고 이다음에는 또 한국어가 제일 편해졌다. 나는 몇 개 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신기하다. 그들은 나에게 외계인이고 나와는 다른 생물 같다고 느껴져서 내색은 안 하지만 그들을 상당히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그런데 질투의 감정이 그렇게 나를 타락시키거나 상대방을 훼손시킬 정도의 강도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질투하면서도 그들의 세련된 외국어 스킬(?)을 배우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질투와 부러움의 영역은 한도 초과 l 질투를 다스리는 방법: 질주의 전조등 OFF

그렇게 질투의 감정이 사라질 무렵, 이제는 다른 환경에 오니까 또 자동차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시간을 걸어 다녔으므로 자동차를 타고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신기하다. (아이유가 차 타는 게 신기해서 행사 출장을 다닐 때 차 타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처럼, 나도 택시를 타면 차 타는 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창 밖을 보면서 드라이브 시간을 즐긴다.) 그런데 이제 또, 더 어른이 되어보니 집 있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그런데 더 얘기를 들어보니 집 있는 사람 중에서도 평수가 넓은 사람들이 부럽고, 평수가 넓은 사람들 중에서도 좋은 가구, 가전을 쓰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그리고 엄마랑 사이가 안 좋다 보니 다정하고 자상하신 여유로운 부모님들이 있는 사람들도 부럽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함께 평범하게 식사를 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가정이 너무 부럽고 질투가 났다. 나에게는 왜 그런 것들이 허락되지 않는지도 많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또 이직을 준비하는 기간에는 공직 생활자들처럼 평생 정년이 보장되면서 비교적 타 직장에 비해 안정적인 경제권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기 시작했다. 아니면 연금복권에 당첨되어 매달 일정 금액을 받는 사람들의 경제적 안정이 부럽고 질투 나고, 빼앗고 싶었다. 이렇게 부럽고 질투 난다고 해서 그들이 다 망하고 내가 다 가지면 행복할까?


물론, 내가 다 갖고 송블리교에서 송블리 교주로 사는 것도 좋다. 내가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남들은 나를 부러워하면서 사는 그런 무서운 세상. ^^앞의 두 문장은 농담이다. 난 그런 무서운 송블리교 세상을 원하지 않는다. 적당한 질투와 서로의 강점과 장점이 조화로운 삶을 원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부러워하는 점이 하나는 있겠지.. 이렇게 위안을 한다. 그러면 질투의 감정이 나다가도 저절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이게 자뻑을 잘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다. 단순해서 질투의 감정이 생기다가도 소멸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의 회로가 단순하니까, 사람들도 질투의 말을 잘 언급하지 않는 나에게 "너는 저런 거 질투 안 나는 사람이야?"라고 묻기도 한다. 물론, 엄청 질투 나고 부럽고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았던 시기도 있었고 아직도 그럴지도 모른다. 또, 그런 차이와 질투와 괴로움의 감정 속에 푹 빠진 적도 많다. 결론은 안 그래도 생각할 것들 많은데 굳이 저 사람들을 질투하고 시기하고 나와 타인을 비교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내가 작아지고 내가 상처 받으니 말이다. 더불어 그 사람들이 잘 이룩해놓은 결과물을 겉모습만 보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을 업신 여기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질투의 전조등을 꺼놓는 습관을 만들었다. 


질투를 강하게 느끼는 예외적인 상황 l 질투의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상황

하지만 한 가지 예외적인 상황이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이성이 내가 아닌 다른 상대를 좋아하는 것에는 가장 강한 질투를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이성은 나만 좋아했으면 좋겠다. 이 상황에서의 질투의 감정이 들면, 나는 좀 과격해지거나 과감해지는 선택들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결코 질투의 감정을 섞지 않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일을 처리할 때의 시간이다. 언젠가는 한번 대기업 10년 차 인생선배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 선배는 지나가는 말이지만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질투의 감정이 섞이면, 일이 잘못되니까 질투의 감정이 섞이면 안 되는데.."이게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많은 일들이 질투의 감정으로 조금 삐딱선을 타기도 한다는 사회적 풍조의 뉘앙스를 내게 어렴풋이 들려주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공적인 일에서는 '질투'의 감정을 섞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사람이 되려고 생각하고 있다. 질투의 감정으로 어떤 변수를 많이 만든다거나 일을 원래의 목적에서 조금 변경시키는 것들 말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선망과 질투의 많은 시험물(?) 앞에서 감히 요동치지 않고 견뎌낼 성인군자가 세상에 몇이나 된 단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 구분을 하면서 질투의 감정을 다스리고 싶은 철학은 이미 저 선배와의 식사에서 결정된 듯하다. 열정이라는 단어의 에세이를 적어보니, 질투라는 단어의 에세이를 적고 싶어 몇 자 기록해보았다. 질투라는 감정의 장점으로 서로에게 적당한 긴장을 주는 그런, 선의의 경쟁을 하는 사회를 바라본다. 서로를 파멸로 이끄는 악한 감정으로 변질시키지 않기를.


*관련 작성글: <펜트하우스>에 흐르는 인간의 본성: 질투는 나의 힘-기형도 l 펜트하우스가 주목받는 이유.

https://brunch.co.kr/@songvely10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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