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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이버링 Mar 25. 2024

내일모레는 어제 곱하기 오늘

<어서 오세요 시드니전집입니다> 연재를 마치고

연재를 서둘러 마치긴 했으나 아쉬움이 없는 이유는, 처음부터 마음먹은 스토리가 증발하기 전에 끝맺음을 했기 때문입니다. 냄비근성이 다분한 저는 마음먹었을 때 빨리 일을 저질러야 합니다. 아무리 메모하고 짜임새 있게 계획을 짜도 마음이 제멋대로라 맘이 내키지 않으면 절대로 글이 튀어나오지 않지요. 거북이 같은 글은 아직 쓸 줄 모릅니다. 냄비가 식기 전에 소감까지 덧붙이면 글이 더 맛있어질 것 같아 몇 자 적어봅니다.


과거에  <빠르게 실패하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제목만 읽었을 뿐인데 책을 다 읽은 사람 마냥 마음이 들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사람마다 목표한 바를 완성하는 방식이 다를 텐데, 저에게도 완성을 위한 시작은 '일단 실패하고 보는 것(Fast Fail)'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이 제 방식을 옹호해 주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살면서 치르는 수많은 시험에서 친절한 누군가가 100% 적중하는 해답을 알려주지 않는 이상, 빠르게 실패하는 것만이 하루라도 빨리 정답을 찾는 방법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아 알았으니까요.


<어서 오세요, 시드니전집입니다> 속 주인공 Stella를 내가 만든 시드니 안에 집어넣고,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사건들을 만들었습니다. 수개월 전 다녀온, 내 마음속에 살아 꿈틀대는 시드니를 그대로 옮겨놓으려 무단히 애를 쓴 덕에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눈을 감으면 언제라도 시드니에 갈 수 있었습니다.


소설을 마무리할 무렵, 이런 장르를 '오토픽션'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어원의 'auto'와 허구를 뜻하는 'fiction'을 조합한 말이지요. 소설 속 나는 맨 처음 수지를 통해 성공의 지름길을 과감하게 통과하는 오늘날의 방식을 접했고, 시드니전집에 Jenny를 끌어들여 모험정신과 열정이 가득했던 내 젊은 날을 재현했습니다. 헤어진 이유도 모른 채 이별한 과거의 남자친구나,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카페 사장님 부부와의 재회는 기나긴 인생에서 한 번쯤 거쳐도 좋을만한 우연입니다. 


소설 속에서 만큼이나 실제로 나는 우연을 제법 많이 겪습니다. 최근만 해도 아이 친구 생일파티에서 학창 시절 동창을 만나는 것은 예사고, 아이와 호주에서 두 달 살기 할 때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나와 여행일정과 숙소, 출신대학까지 같아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겨울이 호주의 여름을 만나면> 에세이 서평단 독자들에게 무료로 책을 수십 권을 보냈는데 마침 진행 중이던 편의점 택배왕 이벤트에 당첨돼 30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받은 일도 있습니다. 비밀스러워 입 밖에 꺼내기 조심스러운 우연들까지 합하면 내 인생은 '우연의 실타래'쯤 되고도 남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나고 보니 실타래 속 우연 중 어떤 것들은 간절히 바라던 열매를 맺기 위한 필연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됩니다. 17년 전 처음 해외에 나간 게 시드니 워킹홀리데이였는데, 그때의 시드니를 그리워하다가 또다시 아이들과 시드니에서 두 달 살기를 하게 됐고, 덕분에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시드니에다 전집을 차리는 소설을 연재하게 됐으니, 이런 식이면 (조금 억지스럽지만) 시드니에 전집을 차리는 소설을 쓰기 위해 내가 17년 전에 호주를 간 게 아닐까 생각도 됩니다.


'삶에 깊숙이 뿌리내린 습관이나 태도, 경험이 과거로부터 하나, 둘씩 축적되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소설을 통해 저는 이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추억은 곧 '나'고, 인생의 목적은 결국 추억을 쌓는 게 아닐는지요. '미래'의 부자가 되고 싶어, 세상에 유일무이한 일을 찾아 과감하게 사업을 시작한 나는, 종결되지 않은 '과거'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결국은 내가 꿈꿔 온 삶을 '현재' 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소설은 시드니전집의 이야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재현되는 '미래'의 기발한 상상으로 마무리되지만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건, 오늘날 기회를 두드리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 아닐는지요. 


인생의 최댓값으로 '내일모레는 어제 곱하기 오늘'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면 저는 '소박하게 풍요한 오늘'을 '내일'에 곱해 복리의 마법으로 추억이 넉넉한 미래를 만나고 싶어 집니다. 인생의 최솟값으로 '내일모레는 어제 더하기 오늘'이라고 해도 손해 볼 것 없는 공식이 아닐까요? 쉽게 말하면, 우리의 모든 경험에 가치를 부여한 만큼 미래는 풍요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경험이 아니더라도, 그 경험이 실패건 이별이건 상관없습니다. 지금 실패해야 오답을 찾아내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고, 이별해야 새로운 시작과 너그러운 만남을 위한 지혜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저는 시드니에 전집을 차리진 못했지만 연재 내내 매대 앞에서 전을 부치고, Leesa를 만나고, Jenny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던 인생에 일어날 법한 우연을 통과시키면서 나는 '소설'이라는 경험이 내 삶에 축적되는 소리를 들었고, 소설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는 로또 같은 횡재를 상상하며 히죽거리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우연과 만남과 횡재와 좌절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은 반드시 가깝고도 먼 미래에 찾아올 기회가 될 것이므로 저는 여전히 빠르게 실패하는 일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시작하세요.



진심을 담아,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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