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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진 May 29. 2024

에필로그

인생 2막을 펼치며

올해 2월에 퇴사를 했다. 12년 일한 [함께걷는아이들]에서의 일을 마무리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퇴사를 준비하며 이 글을 시작했다. 이 브런치 북은 나의 22년 사회복지, 그중에서도 지난 12년 [함께걷는아이들]에서의 나의 성장일기다.  


프롤로그에서도 얘기했듯이, 나는 프로이직러였다. 평균 근속기간이 1년 반이었다. 그중에는 3개월짜리도, 5개월짜리도 있었다. 모든지 변화하는 거 새로운 거를 싫어하는 내가 가장 큰 변화이고 도전인 이직을 밥 먹듯 했다. 다양한 조직과 업무를 경험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나를 성장시킨 건 12년간의 긴 시간을 일해 온 함께걷는아이들에서의 경험이었다. 

처음 사업을 계획하고 시작하던 때부터 사업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마무리하기까지 사업마다 10년의 호흡을 아이들과 현장과 함께했다. 그 사이 좌절하기도 하고 보람 있기도 하고 웃기도 울기도 했던 그 시간을 굽이 굽이 지나 뒤돌아보니 현장도, 아이들도, 나도 성장해 있었다. 


내가 처음 입사할 때 만들어졌던 "올키즈스트라 상위관악단". 악기를 잡는 것부터 시작하는 지역관악단에서 좀 더 실력을 키우고자 하는 아이들을 선발하여 높은 수준으로 만들어보자고 만들었던 관악단이다. 입사하자마자 나는 막 세팅된 상위관악단 담당자였다. 합주가 있던 토요일마다 돌이 막 지난 둘째를 데리고 합주실로 매주 출근했다. 합주를 들어도 뭐가 뭔지 잘 모를 때였다. 그래도 매주 합주 2시간을 앉아있었다. 첫 상위관악단 지휘자가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어서 매주 지휘자와 싸우다시피 했다. 그 시간을 거쳐 10년이 넘은 상위관악단은 3번째 지휘자를 맞아 순항 중이다. 그때 상위관악단 첫 단원으로 들어왔던 아이들 중 젤 맏형은 30살이 되었다. 그 시절 단원아이들과 졸업생 관악단인 "올키즈스트라 오니(오빠언니) 관악단"을 같이 한다.(나도 클라리넷 파트 단원이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청년이 되고 결혼을 하는 과정을 옆에서 쭈욱 지켜보는 셈이다.    

지역사회 기반한 "지역관악단"은 어떻게 자립하여 지속가능한 운영을 할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지원금이 종료되면 흔히 없어지곤 하는 사업 말고 지역에 뿌리내려 계속 운영되는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 힘든 줄 알면서도 지역 오케스트라 지휘자, 대표, 간사들과 모금관련된 교육, 컨설팅을 지속하며 모금 구조를 만들어 가도록 했다. 때론 나조차도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10년 지원을 받은 올키즈스트라 안양군포, 은평이 독립을 했다. 5년 차 지원에서 함께걷는아이들의 재정적 어려움으로 지원이 종료된 동해, 아산, 김해, 창원도 모두 독립하여 사업을 유지했다. 별도 단체를 설립한 곳도 있었고 컨소시엄 형태로 유지되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지역 곳곳에 아동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씨앗을 뿌렸다. 그 씨앗들이 잘 뿌리내려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아직 잘 자라고 열매 맺고 있다.

기초학습 1:1 지도 사업도 복권기금사업으로 시집보내고(21화) 참여 아이들의 동기부여로 시작됐던 동시대회만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확대하여 지속하고 있다. 아이들의 동시가 매년 동요로 만들어져 발표되고 있으니 매년 새로운 동요를 듣는 것이 결실을 따먹는 재미다. 

거리에서 청소년을 만나던 엑시트 버스는 비록 10년을 기점으로 문을 닫았지만, 청소년 지원현장기관들과 청소년의 주거 문제를 더 본격적으로 다루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을 인큐베이팅했다.(18화) 최근에 엑시트 초창기에 만났던 청(소)년 한 명이 [함께걷는아이들] 회계 감사님에게 회계 일을 배우고 있다. 그 청년이 살아낸 시간을 알기에 매일 출근하는 그녀 또한 결실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2년을 돌아보니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부금이 있었고(2,3,4,5화)

함께하는 훌륭한 동료들이 있었다.(11,12,13화)

함께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연대단체들이 있어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7,8,9,19,22,23화)


나는, 함께걷는아이들을 퇴사하고 제주도로 내려왔다. 

가족들은 나보다 먼저 제주도에서 자리 잡고 있었고 나는 함께걷는아이들과의 마무리를 위해 좀 늦은 이주였다. 오십이 된 나는 이제 여기, 제주에서 새로운 인생의 2막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그 2막에도 사회복지사로 일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람들과 함께하고 좀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일인 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뼛속까지 사회복지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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