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대신 웃음을 택하는 법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by 윤슬기

어려서부터 빠릿빠릿 토끼 같은 첫째 빛이와 달리, 느릿느릿 순둥순둥한 둘째 하늘인 나무늘보를 보는 듯하다.


근데 이상하네? 분명 순한 것 같은데...'


잘 울지도 않고, 밥투정도 안 하고, 아프지도 않고, 늘 가만히 미소 짓는 이 돌배기 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빛이가 어릴 때보다 손이 더 많이 간다.


차라리 우당탕탕 정신없이 움직이는 아이에겐 다칠까 봐 늘 집중하게 되는데, 이 둘째 아이는 부모의 긴장을 풀어지게 한 다음 묵묵히 자신의 일을 저지른다.



물컵이나 음식을 엎는 건 기본이고, 물티슈를 다 뽑아놓는다든지, 키친타월을 굴려서 다 풀어놓는다든지, 공기청정기 구멍에 잘게 찢은 종이를 쏟아붓는다든지... 사고 치는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아이쿠, 하늘아! 아무리 배고파도 그건 아니야!”


분명 방금 전까지 거실 바닥을 유유히 기며 혼자 잘 노는 것 같았는데. 이 나무늘보 녀석은 내가 잠깐 방심한 사이 떨어진 종이를 하나씩 입에 넣으며 오물오물 씹고 있다. 역시 조용할 때가 더 무섭다.


'또 당했네.' 하는 마음과 함께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얼른 손가락으로 하늘이 입 속에 담긴 종잇조각들을 빼는 사이, 한쪽에서는 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빛이야아!! 넌 지금 몇 살인데 그래애~"


다섯 살 빛이가 동생을 따라 더 큰 종이를 우걱우걱 씹고 있다. 하늘이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내가 어이없이 웃으니까 그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빛이는 한술 더 뜬다.


그렇게 첫째는 '퇴화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늘이를 따라 기어 다니고, 손으로 음식을 먹고, 진작 뗀 기저귀를 다시 찬다.


"빛이야, 왜 그러는 거야?"으면, 그저 "헤~" 하고 웃는다.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유명한 시구가 떠오른다.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은 나이가 몇 살이든 마찬가지다.




"아빠, 하늘이 좀 보세요!"


빛이가 낄낄대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걸 보니 하늘이가 뭔가 사고를 친 게 분명하다. 얄밉게도 빛이는 하늘이를 고발할 때 저렇게 안 쓰던 존댓말을 쓴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화장실 문을 슬쩍 연다. 늘 그렇듯 불안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하늘이가 조용히 사라졌을 때 빨리 눈치챘어야 했는데.



다 풀어헤친 휴지를 보며 한숨이 나온다. 열이 살짝 오르려는데, 옆을 보니 하늘이가 세상을 다 얻은 듯 날 보며 활짝 웃고 있다. 자신의 행위와 결과물에 이토록 만족스러워하는 아이를 이 타이밍에 누가 혼낼 수 있을까.


웃음이 나오는데 여기서 내가 웃는 모습을 보이면 빛이가 신나서 또 따라 할까 봐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린다. 빛이가 묻는다.


"아빠, 웃어?"

"아니, 화나는데 참고 있는 거야."




헝클어진 휴지를 바라볼 때 나오던 한숨이,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며 웃음으로 바뀌듯,


삶의 '시선'을 어디에 두는가는 참 중요한 문제다. 문제만 바라보고 거기에 매여 있으면 '한숨' 뿐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웃음'이 된다.


'한숨'이냐 '웃음'이냐,

같은 상황에서 시선의 결과로 나타나는 '선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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