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유명 식품회사의 껌 광고를 통해 전 국민의 유행어가 된 단어로 원래 핀란드어로 '좋다'를 의미한다고 한다. 휘바 휘바~로 유명해진 이 껌의 제품명이자 구성성분은 바로 '자일리톨'이다. 이 '자일리톨'이라는 성분을 추출하는 대상이 자작나무이다. 자작나무 목재에는 다당체인 자일란이 함유되어 있는데 핀란드에서는 자작나무 속에 함유된 자일란을 자일로스로 변환시켜 추출한 뒤 정제 및 환원 과정을 거쳐 자일리톨을 만든다. 이런 이유로 자일리톨을 자작나무 설탕 이라고도 부른다. 자일리톨 속에 있는 당성분을 충치균이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양분을 얻지 못해 죽게 만들어 치아 보호 효과가 있다. 또한 당알콜 성분이 입안의 구취제거, 건조 방지, 침 분비 촉진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런 자일리톨의 하루 적정 복용량은 5~7g 정도이고 과다 복용 시 설사, 복통을 유발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작나무의 본질은 이런 약리 작용보다 수피의 색상과 주변의 설경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만드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작나무 수피 /꽃 /잎의 모습
자작나무과의 낙엽 교목인 자작나무의 명칭은 자작나무를 태울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나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자작나무 목재는 박달나무처럼 아주 단단하고 치밀하고 결이 좋아서 가구, 조각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또한 벌레가 잘 먹지 않아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또한 자작나무의 껍질은 윤이 나고 종이처럼 얇고 잘 벗겨져 예전에는 여기에 불을 붙여 사용했으며 결혼식에 밝히는 화촉이 자작나무 껍질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종이처럼 얇고 하얀 자작나무 껍질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는데 신라시대의 천마도도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이다.
또 하얗고 윤이 나며 종이처럼 얇게 벗겨지는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사용했다. 그리고 자작나무 껍질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도 썼는데 신라의 천마도도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것이다.
이처럼 약재로, 목재로, 화촉으로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지만 자작나무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그 수피(줄기껍질)에 있다. 순백의 하얀 표피를 가지고 있는 자작나무는 눈이 쌓인 설경 속에서 더욱 그 진가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자작나무로 만들어지는 멋진 겨울철 설경으로 유명한 장소가 있다. 바로 강원도 인제의 원대리 자작나무 숲이다. 1974년부터 1995년까지 자작나무를 조림하여 만든 자연 생태관광지인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수령 20년 이상의 자작나무로 빽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 안내소에서부터 시작되는 임도를 따라 걸으면 숲에 닿게 되는데 하늘을 향해 뻗은 자작나무 숲은 북유럽의 어느 곳 못지않은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 전경 /이미지 출처: 한국 관광공사
이미지 출처: 한국 관광공사
자작나무는 아름다운 수피 때문에 조경용으로 많이 식재되고 있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경수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작나무 역시도 기후 온난화에 따라 다른 나무들처럼 위험에 처해있다. 높아지는 온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무들도 기온이 낮거나 고도가 높은 곳으로 식생지가 옮겨져야 하지만 발이 없어서 증식을 위한 이동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나무는 평균 100년에 25km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기후변화 정부간위원회(IPCC)에서 예측한 기후대의 북상 속도는 100년에 150~550km로 훨씬 빠르다. 결국에는 자연 상태에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나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동 속도가 빠른 자작나무도 100년에 200km 정도 이동할 수 있으므로 이제 우리의 후손들은 설경 속 자작나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없을지 모른다.
최근에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다양한 해충과 병들이 창궐해서 나무들을 괴롭힌다. 다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온대 지방 수목이 대부분이 우리나라 수종들은 열대성 기후에서 발생하는 해충과 병에 대한 저항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는 결국 우리 산림의 쇠퇴를 가져올 수 있다.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우리는 나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닌 모두가 다 같이 협력해야 안전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이런 공존의 경험을 인간을 넘어 자연과도 공유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정복자로서 자연을 마음대로 다루는 것이 아닌 생명체 모두의 조화로운 지휘자로 지구 상의 모든 것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