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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젤드로잉 Jun 29. 2022

epi.2 실같이 가늘고 긴 인생은 싫더라.

마음을 뜨다

뚜벅뚜벅..수지는 정말 오랜만에 당당한 걸음을 하며 나갔다.

“어서오세요…털보문구점입니다..“

이름에 맞게 털이 부슥부슥한 아저씨가 사장이었다. 손님은 수지밖에 없었고 털보사장은 그런 수지를 빤히 쳐다봤다.

“어…사장님? 그 실이 어디 있어요..?”

“무슨 실?”

“아..어..뜨개질 실이요..“

“아 그거 저기 17번 칸에 있어.“

“네..감사합니다…”

17번 진열대에는 세상 다양한 종류의 실이 있었다. 정말 흔한 빨간색부터 태어나서 절대 보지 못한 색감까지.

두께도 정말 다양했다. 정말 가느다란 실부터 정말 두꺼운 실까지.

“뜨개질 실 사러 왔어요?” 어떤 아줌마가 말했다.

“아..네…”

“나도 한때 뜨개질을 해봤는데 말이지, 짧드라도 두꺼운 실이 좋드라. 그게 잘만들어지고 좋아. 아주 단단하게 묶여가지고, 망가지는 일이 읎어.“

“아..네…” ‘조용히 대답하고 끝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직장 다녀야할 사람이.. 왠 아침에 뜨개질 실을 사러와..?”

“아…어…” 수지는 당황스러웠지만, 부끄러울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퇴사해서요.. 뜨개질 공방 차리려고요.. 제가 잘하는게 뜨개질 밖에 없어서요..“

“아이구 ~ 그래도 뜨개질에 재능이 있구나!”

수지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줘서 고맙다고 생각했다.

“네..ㅎㅎ”

“아가씨, 꼭 공방 차려서도 짧고 굵게 살아요, 짧고 굵은 실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꼭 아가씨도 짧고 굵게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수지도 한때는 꿈이 있었다. 대학을 잘 가면 더 행복할 것 같았고, 더 좋은 회사로 취직하면 조금이나마 수지의 삶이 더 두꺼운 실처럼 될 줄 알았다. 결국 수지는 노련한 사회에 익어버린 평범한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수지는 이제 그저 평범한 어른이 아니다. 그녀는 아줌마가 조언을 들은 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의 인생은 1mm라도 두꺼워질 거야. 나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용감하게 해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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