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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꿈샘 Jul 18. 2024

학교 밖 교사 이야기 12

꽃길만 걸으세요. (상반기 명퇴 소식을 듣고)

어제는 두 명의 명퇴 소식을 들었어요. 학교는 두 번의 명퇴 기간이 있는데 어제가 상반기 명퇴 발표 기간이었어요.


한 명은 우연히 두 번째 학교에서 만난 친구였어요. 나이도, 고향도 성향도 비슷해서 금세 좋은 동료이자 절친이 되었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학급 경영도 똑소리가 나서 배울 게 참 많은 친구였는데 여러 번 학교를 옮기고, 육아 휴직을 하고, 또 제가 타 시도로 파견을 가면서 최근 몇 년 간은 소식이 끊긴 상태였어요.


그러다가 작년 2월쯤, 제 명퇴 소식을 건너 건너 들었다며 전화가 왔죠. 마치 어제 전화 통화를 한 사람처럼 반갑게, 술술 대화를 이어갔죠.


"야, 네가 명퇴를 해? 내가 해야 하는데!"


친구의 첫마디였어요.


사실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에 또 우유부단까지 한 제가 20년 저 연차 명퇴를 했다는 소식은 친구에게 꽤 충격적이었나 봐요. 무슨 연유로 명퇴를 했는지, 계획은 있는지 등 많은 이야기를 물어보았어요.


친구는 오랫동안 사직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경직되고 권위적인 학교 분위기가 싫다며. 그 친구랑 처음 만났던 그 학교 교감 선생님이 굉장히 권위적이고 갑질이 심했어요. 우리는 똘똘 뭉쳤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오늘도 무사히'라는 마음으로 지냈죠. 퇴근 후 만나서 성토대회를 열거나 '이렇게는 살 수 없다!'며 을의 반격을 준비하다가도 고꾸라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힘든 학교 생활에서 친구는 입버릇처럼 "내가 삼 년 안에 그만둘 거야!"를 외쳤고 저는 우물쭈물했고 책으로 도피했고 그리고 근근이 교사 생활을 이어갔죠.


그 이후로 17년의 시간이 지났어요. 17년 동안 친구는 학교를 떠날 것인가? 말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었고 무려 17년. 그만큼 교직을 떠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 마음 상태로 살다가 작년 그 조용하고, 교사 생활을 오래할 것 같던 제가 명퇴 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쿵쿵거렸다고 했어요.


"안 되겠어! 나도 상반기에 명퇴해야겠어!"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


"너도 했잖아!"


"나도 이렇게 바로 결정할 줄 몰랐지!"


"...."


이런 말이 오갔고, 한 동안 여러 번 통화 끝에 명퇴 후 받을 연금과 돈, 그리고 적어도 십여 년 넘게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 등을 심도 있게 토론했어요.


그리고 어제 드디어! 명퇴 발표가 되었고, 친구가 바로 연락을 주었답니다.


-꽃길만 걸으세요!-


이 말은 제가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교감 선생님 (제가 타시도 파견 중이라 본적교 교감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답니다.)이 제 명퇴 소식을 확정적으로 전하며 하신 말씀이에요. 그전에 제 명퇴 소식은 실무사분께 들어서 이미 가족들에게 연락을 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흔한 말이고, 어쩌면 현실과 다른 껍데기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아무도 축복하지 않았던 (가족에게 명퇴를 알렸지만 살짝 속상했거든요)  그 타이밍에 이 말을 들으니 어찌나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조만간 보자!"


꽃길만 걸으라는 내 말에 친구는 그저 ㅋㅋㅋ로 대답하며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어요. 실효성 없는 멘트라는 걸 아는지.


그리고 두 번째 명퇴 소식을 전한 친구는 첫 학교에서 만난 발령동기이자 지금까지도 제 최고의 파트너랍니다. 누굴 만나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만드는 마법같은 기술을 가진 친구죠.


그 친구에도 똑같이 축하 인사를 건넸고, 이 말 들었는데 좋았다며 메시지로 보냈어요




새로운 길에 들어선 두 사람은 알고 있겠지요. 어찌 꽃길만 걸을 수 있을까? 하지만 말의 힘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좋은 길로, 원했던 길로, 다시 시작하는 길로 들어선 두 사람이


지금보다는 나은 길로 가기를!


간절하게 빌어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해 봅니다. 아마 이 말이 가장 현실적인 멘트일 거예요.


그동안 고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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