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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 아래 첫 집 26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하리

마당에 서면 아침 햇살이 우리 집보다 먼저 비추는 곳이 해발 사백고지 남짓한 당산이다. 가파른 경사라 고개를 슬쩍 들기만 해도 정상 주변까지 보인다.


31세에 결혼하여 마을 주민이 되고서 이내 마을 뒷산에 당산 할미바위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큰 아이가 세 살 되던 무렵, 동네에서는 좀 떨어진 당산 가까이로 이사를 한 뒤 처음으로 언저리를 올라갔었다. 하지만 정상은 그 이후로도 십수 년이 지나서였다.

48세를 깃점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자 마당을 서성이는데도 힘들었다. 얼마쯤 뒤에 들판을 산책하다가 당산 입구까지 걸어갔다. 그때 길 옆 무덤 사이로 누군가 길을 튼 흔적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눈길만 준 채 돌아섰다. 며칠 뒤 다시 갔더니 오솔길로 사람 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온통 잡나무로 무성하던 곳이 길이 된 것이 신기했다. 또 누가 길을 만들었을까 궁금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이내 오르막이었다. 힘이 들어 포기했다. 며칠 뒤에 조금씩 더 힘내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한 사람 겨우 다닐만한 오솔길 양옆으로 잡나무가 무성해서 시야는 가려지고 땀이 비 오듯 했다. 그런데도 그 산에서 잠시 머물다 집에 오면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당산 할미 바위를 본 것은 첫 등산을 시작하고도 몇 달이 더 걸렸다. 그것도 나만의 의지가 아닌 순전한 남편의 부추김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 종교가 다르다. 그렇듯이 산을 오를 때의 마음가짐과 준비와 목적 또한 다르다. 일부 마을 사람들은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곳이라 한 번도 간 적이 없다는 분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오르막 당산 마루를 종일 걸려 갔다 날은 그렇지 않은 날보다 뭔가가 달라짐을 느꼈었다. 처음엔 파김치처럼 늘어져있다가 아이들 밥을 챙길 만큼 힘을 얻었었다.

무심한 듯 맹송 하던 나무에도 봉긋봉긋 움이 트고 진달래 망울이 당산할미바위 주변에서 터질 준비를 했다. 진달래가 피고 지길 십 수년 하는 사이에 나 역시 그 산을 오르다 말다 반복했다. 삶이 바빠 지쳐서 라는 말은 순전히 핑계이리라.

한마디로 살만하면 의욕과 긴장감이 풀려서 멈췄다. 그래서인가? 돌아서면 내 건강상태는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은 아파서 쉴 때 말고는 계속했다. 첫아이 두 돌 때부터 참외 농사를 8년 간 지었다. 그다음 노인 전문 요양원 생활지도사로 4년 출근 한 뒤에 지금껏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사이 아이들 셋은 어느새 공부를 마치고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인이 되었다.


당산 아래 들판 가운데 처음 집을 짓고 신접살림을 차린 지 삼십 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이웃이 하나 둘 늘어가더니 어느새 열 가구가 넘어서 작은 마을이 하나 더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당산마실 첫 집이 되었다.

산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은 무얼까? 최근에 거듭 뇌리에 남아 생각의 끈을 붙잡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는 해야 할 일과 하고픈 일이 따로 있다'.

지금껏 난 하고픈 일과, 해야 할 일 중에 어디에다 초점을 더 맞추고 살아온 걸까?.

다만 아주 가끔 기도하면서 인내심을 발휘했었다는 것으로 위안 삼아도 될까?

과정과 결과가 어떻든 결국은 내가 선택한 삶이니 긍정적인 잣대를 들이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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