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뒤바꾼 세상_혁명의 씨앗에서 산업의 꽃으로
빵은 고대 로마 이후에도 계속해서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주요 혁명들을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언제나 빵에 대한 갈망과 분노가 있었다. 빵 한 조각은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프랑스 혁명: 평등빵이 만든 새로운 세계 (1789년)
빵으로 통제된 왕국
7세기 다고베르트 1세부터 프랑스 왕정은 빵을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했다. 빵은 민중들의 폭동을 막는 데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프랑스 빵집 주인은 사실상 '국가의 공복'이나 다름없었다. 구제도 하에서 경찰은 빵의 생산과 소비의 모든 과정을 일일이 단속했다.
더욱 가혹했던 것은 계급별 빵 차별이었다.
귀족과 상류층은 정제된 밀가루로 만든 부드럽고 흰빵을,
농민과 노동자는 호밀 등으로 만든 거칠고 단단한 검은빵만 먹을 수 있었다.
이러한 차별은 "신이 귀족을 위해 흰빵을 주셨다"는 논리로 합리화되었고,
하층민이 흰빵을 먹는 것은 단속 대상이었다.
혁명의 방아쇠가 된 빵 부족
1787년과 1788년의 연이은 흉작, 그리고 1789년 초의 이상 한파는 프랑스를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강물이 얼어붙어 식량 수송이 중단되었고, 물레방아가 멈춰 밀을 빻지도 못했다. 이미 가계 소비의 절반 이상을 식품비가 차지하던 서민 가정은 천정부지로 뛴 빵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1789년, 시민들은 "빵을 달라!"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생존권과 평등한 식사의 권리를 외치는 이들의 항쟁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1793년)으로 이어지며 왕정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평등빵의 탄생과 바게트의 기원
1793년 11월 15일, 혁명 정부는 역사적인 '평등의 빵'을 제정했다. "모든 시민은 똑같은 빵을 먹을 권리가 있다"는 원칙 하에, 제빵사들은 부자와 빈자를 위한 차별적인 빵을 만들 수 없게 되었다. 오직 한 가지 종류의 평등빵만을 만들어야 했다.
호밀 3/5, 밀 2/5의 비율로 만든 이 평등빵의 규격은
길이 80cm, 무게 300g으로 정해졌다.
가늘고 길쭉한 형태는 둥근 빵보다 빨리 구울 수 있어,
모든 시민에게 신선한 빵을 빠르게 공급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바게트의 원형이다.
현재에도 바게트는 길이 55~70cm, 무게 250~300g가 공식 규격이며, 대회 우승자는 일 년간 엘리제 궁전 바게트 납품업자로 지정되는 영예를 얻는다. 프랑스 전역에서 초당 320개가 팔리는 바게트 속에는 이렇게 평등에 대한 혁명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미국 남북전쟁: 리치먼드의 절규 (1863년)
1863년 4월 2일, 남부 연합의 수도 리치먼드에서 절망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수백 명의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빵 아니면 피를 달라!"고 외치며 상점과 정부 식료품 창고를 습격했다.
남북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남부는 경제적 파탄에 직면했다. 북부군의 해상 봉쇄로 외부 물자 공급이 끊겼고, 대부분의 남성이 전쟁터로 나가면서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전쟁 자금 마련을 위해 마구 찍어낸 통화로 인해 물가는 10배 이상 폭등했다.
남부 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가 직접 현장에 나와 5분 내에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고 위협해서야 폭동은 진압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남부 연합이 외부의 군사적 압박뿐만 아니라
내부의 경제적, 사회적 문제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신호였다.
빵 부족으로 시작된 민심 이반은 탈영병 속출과 전력 약화로 이어져
남부 패배의 한 원인이 되었다.
러시아 2월 혁명: 빵과 평화의 함성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 제국의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 또 다른 빵 혁명이 일어났다. 1917년 3월 8일(러시아 구력 2월 23일), 여성 노동자들이 빵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전쟁으로 인한 식량 부족과 극심한 물가 상승에 시달리던 민중들은 "빵과 평화(러시아어로 Хлеб и Мир)"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시위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군부 일부가 민중의 편에 서면서 진압에 실패했다.
결국 차르 니콜라이 2세는 3월 2일 퇴위하고
300년간 지속된 로마노프 왕조가 막을 내렸다.
"빵, 평화, 땅"이라는 혁명의 핵심 슬로건은
그 시대 러시아 사회의 절박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기술의 진화 - 가내수공업에서 대량생산으로
빵을 둘러싼 정치적 격변과 함께, 빵 제조 기술 자체도 놀라운 진화를 거쳤다. 이집트의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된 발효빵 기술은 로마에서 체계적인 산업으로 발전했다.
기원전 3000년 이집트에서 태어난 발효빵 기술은 혁명적이었지만 소규모 생산에 머물렀다. 진흙으로 만든 원통형 수직 오븐에서 반죽을 안쪽 벽에 찰싹 붙여 구운 방식은 오늘날 인도의 탄두리 오븐과 유사했다. 소량의 납작한 빵을 굽기에는 적합했지만 대량 생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교역을 통해 이집트의 발효빵 기술을 받아들여 한 단계 발전시켰다. 진흙이나 벽돌을 이용해 돔 형태의 앞트임식 오븐을 개발했고, 빵을 벽이 아닌 평평한 바닥에 놓고 구울 수 있게 되면서 크고 둥근 빵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제빵은 단순한 기술에서 하나의 '예술'로 승화되었다.
기원전 2세기까지 로마인들은 빵의 존재를 몰랐다. 그들의 주식은 보리죽이었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보리를 물에 끓여 만든 밋밋한 죽으로 연명하던 로마인들에게, 빵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신세계였다.
운명을 바꾼 순간은 2차 포에니 전쟁 후 마케도니아를 정복하면서 찾아왔다. 로마군은 그리스인 제빵사들을 전쟁 포로로 데려왔는데, 이들이 만들어낸 부드럽고 향긋한 빵을 처음 맛본 로마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로마인들은 이 그리스인들을 단순한 노예로 부리지 않았다. 귀한 기술을 가진 '전문 기술자'로 대우하며, 귀족들의 저택에서 빵을 굽게 하고 그 비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로마 특유의 실용주의가 발휘된 순간이었다.
1단계: 생산량의 혁신 - 회전식 맷돌의 등장
빵의 맛을 알게 된 로마인들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포에니 전쟁 승리로 급증한 인구와 속주에서 몰려든 노예들, 그리고 부를 축적한 시민들 모두가 빵을 원했다. 하지만 기존의 손으로 갈던 맷돌로는 이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로마인들은 여기서 그들만의 해결책을 찾았다. 기원전 2세기, 가축의 힘을 이용한 회전식 맷돌을 개발한 것이다. 당나귀가 끄는 거대한 돌 맷돌이 하루 종일 돌아가며 밀가루를 대량 생산했다. 이전에 비해 생산량이 수십 배로 늘어났다.
2단계: 품질의 혁신 - 기계식 반죽기의 발명
기원후 1세기에 들어서자 로마인들은 또 다른 혁신을 선보였다. 동물의 힘으로 움직이는 기계식 반죽기였다. 이제 제빵사들은 손목이 아플 때까지 반죽을 치댈 필요가 없었다. 기계가 균일하고 탄력 있는 반죽을 만들어냈고, 빵의 품질은 한층 더 향상되었다.
3단계: 기술의 혁신 - 돔형 화덕의 완성
로마 건축 기술의 정수가 제빵에도 적용되었다.
그리스에서 배운 돔형 오븐 기술에 로마의 뛰어난 건축 공학을 결합해,
내구성이 뛰어나고 열효율이 높은 거대한 돔형 화덕을 만들어냈다.
이 화덕은 열을 효율적으로 보존하면서 내부 전체에 고르게 전달했다.
그 결과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완벽한 빵의 식감이 탄생했다.
이는 현대 피자 화덕이나 제빵용 오븐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었다.
4단계: 시스템의 혁신 - 제빵사 조합과 산업화
기원후 2세기, 로마는 마침내 제빵업을 완전한 '산업'으로 체계화했다. 제빵사 조합(collegium pistorum)을 설립해 기술을 표준화하고, 품질을 관리하며, 국가에 빵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거대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제 로마의 제빵사들은 개별 장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관리되는 전문 산업 종사자가 되었다.
거친 통밀가루로 만든 서민용 빵부터 올리브유, 우유, 달걀, 꿀, 향신료를 넣은 고급 빵까지, 수십 가지 종류의 빵을 체계적으로 생산했다.
불과 200년 만에 로마는 보리죽을 먹던 촌스러운 민족에서
세계 최고의 빵 제국으로 탈바꿈했다.
로마인들은 단순히 그리스의 기술을 모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혁신'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이집트가 '발명'하고 그리스가 '발전'시킨 기술을,
로마는 '산업'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이렇게 고대 로마에서 완성된 제빵 산업의 DNA는 중세를 거쳐 근대 산업혁명까지 이어지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현대적 제빵업의 토대가 되었다. 기원전 12,000년 나투프 문화의 첫 납작빵에서 시작된 인류의 빵 여정이, 보리죽을 먹던 로마에서 비로소 진정한 '산업'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출처 : 음식경제사, 교양인이 알아야 할 음식의 역사 등
이범준 교수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미식유산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