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가 불을 삼키러 온다

27장 쿠키의 기원

by 수연


그는 동작을 멈췄다. 지배인은 자신이 뱉은 말의 효과를 음미하기라도 하듯 더 말이 없었다. 그는 답답함을 느꼈다. 이제 와서 말리는 지배인의 속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이 이렇게 커지게 된 데에는 지배인이 부추긴 면도 있지 않은가.

이럴 거면 왜 저를 심부름 보냈어요? 왜 그분을 만나게 했냐고요?

그가 묻자 지배인이 대답했다.

네가 어떻게 하나 보려고.

그의 입가로 헛웃음이 새나왔다.

나는 너를 그만큼 믿었다. 네가 일을 저지르지 않고 스스로를 잘 추스를 거라 믿었단 말이다.

그는 기가 차서 대꾸했다.

무슨 근거로요? 성냥불을 가만히 내버려뒀었으니까? 그걸 던지려던 게 내 진심이었다고 생각해요?

지배인이 반문했다.

경계를 넘어 그들을 따라가면 네가 한쿡소년 신세를 면할 것 같아? 옷만 바꿔 입고 이름만 달리한 한쿡소년이 될 뿐이지. 그때 가선 또 이렇게 경계를 넘는 탈주를 꿈꾸겠지. 오직 그것만이 네 삶에서 반복될 거야. 가도 가도 제자리걸음. 한 번 경계를 넘어버리면 그것도 습관이 돼버려. 나중엔 넘어서도 무감각해지는 때가 온다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또다시 자기 삶에 집중해 있는 사람들 곁을 배회하는 유령이 되어있겠지. 그렇게 살고 싶은 거야? 영원히?

그는 따갑게 울려 퍼지는 지배인의 음성을 떠받듯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뭐?

그는 지그시 별렀다. 지배인이 뭐라고 뱉든, 이제는 그 말을 스타터 삼아 앞으로 나가줄 테다. 무전기에선 아주 희미한 바람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지배인 쪽에서 먼저 무전기를 꺼버린 것이었다. 그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무전기를 도로 허리춤에 꽂다 소녀가 책상 의자 위에 올라서 방패 창으로 손을 가져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순간 아차, 싶었다. 그는 달려가 소녀의 손목을 낚아채고 말했다.

잠들지 마.

잠들려는 게 아냐. 너한테 보여주려는 거지.

뭘?

대답 없이 그의 손을 홱 뿌리친 소녀는 방패 창이 열리자 순순히 의자 밑으로 내려왔다. 그는 왜, 하고 묻는 눈으로 소녀를 쳐다봤다.

만만해보여서.

소녀가 말했다. 그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래? 난 네가 만만은 아니고 민민(憫憫)해 보이는데.

계단이 비쳤다. 그는 의자 위로 올라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두 번째 계단도 채 끝까지 보이지 않을 만큼 안이 비좁았다. 하지만 그 위로도 수없는 계단이 예감되었다. 첫 계단이 그의 무릎 높이만 했다. 올라가려면 쥐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를 잡아 가두기에 딱 좋은 공간인데. 그는 멈칫, 생각했다. 수면기(機)라기보다 수면실(室)로 보이는 구조였다. 계단이 얼마나,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지 알려면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양팔을 뻗어 밀려나간 문틀을 단단히 잡고 한 발을 올려 세운 뒤 의자를 박찼다. 어깨가 양 벽에 부딪혔다. 그는 최대한 움츠리고 더듬더듬 계단을 짚었다. 바위처럼 차갑고 판판하고 강한 느낌. 천장이 낮아져 등을 더 숙여야 했다. 거의 기는 듯한 자세로 첫 계단을 디뎠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렇게 어두운 건 처음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는 자신이 사라지고 없다고 느꼈다. 눈앞의 어둠은 그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어둠이 다가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어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만치 두려운 것이 엄습했다.

바로 위층 바닥에서, 갑자기 20cm 두께의 석벽을 묵직한 쇠망치로 내리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화들짝 손을 쳐들어 두개골을 감싸 쥐었다.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귓구멍을 따갑게 찌르더니 이윽고 청각이 고장 난 듯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가느다란 삐 소리만 울렸다. 삐 소리마저 연기처럼 풀리어 사라졌을 때 또다시 온몸을 들썩이게 하는 굉음이 꽈당 꽈당 연달아 머리 위를 내리쳤다. 그는 거듭 두개골을 싸쥐었으나 떨어져 내리는 건 없었고, 천장은 말짱했다. 소리가 파괴적이었다. 소리가 그를 미치게 했고 소리에 마비되어 입고 있는 옷이나 기대고 있던 돌바닥과 다름없어진 몸뚱이를 완전히 잊어버린 채 이마를 탕탕 돌바닥에 짓찧었다. 석벽을 뿌리째 파 뒤집는 드릴소리가 정수리로 파고들었다. 눈물방울이 솟구쳤다. 그는 미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앙가슴을 주먹의 마디뼈로 툭툭 쳐댔다. 끌로 바닥을 긁어내는 집요한 소리가 캐묻듯 이어졌다. 그러다 또 한 번 꽝, 부수는 충격파가 왔다갔고, 곧이어 파편조각들이 와르르 쏟아져 바닥을 때리고 자글자글 굴러가는 소리가 날카롭게 퍼졌다. 그러고는 한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세찬 울림만이 숨 막히는 어둠 속을 쥐락펴락했다.

어둠을 주무르는 저 소리가 대체 뭐지?

갑작스런 태풍에 방마다 유리창이 들썩이고 방충망이 드르륵 열리던 늦여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들려온 깨지는 소리에 이웃집 창유리가 파손되었다 생각한 소년은 장에서 돌아오는 어머니에게 그 파편이 꽂힐까봐 한시도 마음 편할 새가 없었다. 지금 그는 그 파편이 방향을 바꾸어 자신에게 오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맞는 건 싫었지만 막상 자신이 대신 맞는다고 생각하니…, 아주 징그러운 생각이었다, 뱀의 아가리 같은…. 이제껏 불어온 어떤 태풍보다도 맹렬히 육박해오는 소리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소리는 막아지지 않았다. 귀를 막아도 소리가 줄기는커녕 자신을 남김없이 파먹어 들어가려 할 때 그는 아악,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곧 후회를 했다. 비명이 그치자마자 되살아난 그 소리는 마치 스펀지를 쥐어짜듯 그를 압박했다. 그것은 가책이었다. 그는 머리통을 마치 뿌리째 뽑아낼 듯 틀어쥐었다. 땀구멍 전체가 그를 대신해 절규했다. 차라리 안주하고 싶어지는 소리였다. 만약 수연처럼 이 안에서 잠이 들 수 있다면. 그 역시 지금 바라는 건 잠뿐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그의 능력으로는 스위치를 내리듯 간단히 의식을 꺼버릴 수 없었다. 수면기는 그에게 최적화되어있지 않았다. 그는 그만 나가려고 힘주어 두 발을 밀었다. 그런데 뒤꿈치를 아무리 부드득대어도 문이 있는 쪽으로 옮겨지지가 않았다. 몸은 계속 새우처럼 말려 계단에 부려져 있기만 했다.

왜 벗어나는 일조차 마음대로 안 되지? 이럴 때 몽돌을 손아귀에 쥘 수만 있다면. 하지만 도통 손이 주머니로 향하질 않았다. 가위에 눌린 것 같았다. 그는 불현듯 노했다. 이래서는 天층과 다를 바 없잖아. 天층에서처럼 의식이 잃어지지도 않고…. 하지만 天층에서는 이미 나왔다. 어떻게 나온 것인지도 모르게 나올 수 있었다. 여기서도 홀연히 나오게 되는 걸까. 고통을 참으며 기다리다 보면 깜박……. 꿈에서 깨어나듯 그렇게……. 이대로 질식해버릴 것 같았다. 울음이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어왔다. 그는 토해내듯 입을 벌려 울부짖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어떡하면 되지? 끝이구나, 하는 순간이 도무지 안 왔다. 그것이 그를 울게 했고, 울음을 그치게 했으며, 다시 울지 않고는 못 견디게 했다.

신우휘,

헉, 그는 콧물을 들이켰다. 그 순간 들려온 오의 음성이 마치 신의 음성 같았다. 그는 그 목소리에 자신을 묶었다. 오가 말했다.

괜찮아. 안 무너져. 듣고 있지? 너는 지금 네 감옥을 허물고 있어. 너 스스로 쌓아올린 감옥에서 이제 그만 자신을 내보내줄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우리는 시간의 아이들이야. 하지만 시간이 우리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고안했다는 걸 알아야 해. 사과는 처음부터 사과였어. 그렇기 때문에 씨의 상태로 머물지 않고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자신을 내어맡길 수 있었던 거지. 이제야 분명히 보여. 한입거리가 되느니 차라리 떨어지는 한 장의 잎이 되고 싶어 하는 네 마음이. 난 무엇보다 너의 고통에 공감한다. 하지만 넌 모를 거야. 지금 공포로 얼어붙어 있는 네가 얼마나 환하게 진동하고 있는지를. 그래서 말인데, 너에게 한 가지 기억을 환기시켜주려고. 우리, 진화에 관해 얘기했었잖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진화는 언제나 가장 약자의 몫이었어. 가장 약자였던 쥐새끼가 오늘의 인간이 된 거라고. 왜일까? 뭐가 그 쥐새끼를 그냥 찍 소리 못하고 죽게 놔두지 않은 거지? 뭍으로 나왔다 돌아간 물고기들을 생각해봐. 우리도 거기서 멈출 수 있었어.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갔지. 왜 그랬을까. 무엇이 너를 거기서 잠들지 못하게 하니. 뭣 때문에 너에게 최적화돼있지 않다 생각하니. 나는 기억해. 너를 처음 만났을 때. 쿠키를 나눠주던 네 모습. 궁금하지 않아? 어쩌다 우리는 쿠키까지 구워 먹게 된 걸까. 다종다양했던 인류가 한 종으로 귀결되어 끼리끼리 동굴에 모여 살기 시작했던 때부터 쿠키가 있었지. 떡갈나무 숲이 있는 곳에서는 말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날것 그대로 소화시키진 못해 아마 몇 세대를 걸친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야 도토리를 탈 없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을 거야. 바로 불을 이용해서 말이야. 생도토리를 찧어다 반죽을 빚고 구워먹었던 거지. 그러니까 쿠키의 기원은…….

괴로움이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괴로움 때문에 짐승이 짐승으로 남아있지 못하고 인간으로 바뀐 거다. 인간이 최초로 불 맛을 알게 된 것도 괴로움 때문이다. 맨 처음 쥐새끼가 느꼈던 것도 괴로움이었다. 거대한 발바닥을 피해 다니며 느껴야 했던 지독한 괴로움이었다. 하지만 그 괴로움이 쥐새끼를 숨게 했고, 거대한 발바닥을 가진 놈들보다 오래 살아남게 했다. 진화는 몸집과 뇌만 키운 것이 아니었다. 괴로움도 함께 진화시켰다. 전에는 뭣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겪고 감수해왔던 것들을 더 이상 감각적으로 못 견디게 됐다. 전에는 추워도 추운 대로 살다가 죽었는데, 어느 순간 그럴 수 없게 됐다. 추위를 견딜 수 없게 됐다. 견딜 수 없어하며 살아있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짐승의 가죽을 벗겨 옷을 해 입은 순간부터 인간은 추위에 강해진 게 아니라 더 약해진 거였다. 그리고 전에는 독이 있건 없건 손에 잡히는 대로 따먹고 죽거나 살거나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생존의 무작위성을 견딜 수 없게 됐다. 인간은 괴로워서 가만있을 수 없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헤매 돌아다니다 마침내 새로운 열매를 발견했다. 처음 맛보는 달콤함이었다. 때문에 달콤하지 않은 것에 대한 괴로움이 커졌다. 허기도 갈수록 심해졌다. 사냥은 점점 위험해졌다. 오래도록 쫓겨 온 거대한 포식자를 물어뜯어 창자를 채워도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날것을 소화시키기가 더욱 괴로워졌을 뿐이다.

번개 맞아 타고 있는 나무에서 용케 불을 옮겨온 이는 그 무리에서 가장 괴로움을 많이 느끼는 존재였을 것이다.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살아야하는 환경인 어둠과 추위, 흐물흐물한 먹잇감에 대하여 자신도 모르게 분노하며 이를 갈게 된 존재. 그 존재를 가장 괴롭힌 건 도저히 깨부술 수 없는 저 어둠이었을 것이다. 어둠이 존재를 반항하게 했다. 호기심은 괴로움의 연금술이다. 피할 길 없는 막다른 상황을 차라리 즐기게 만든 괴로움. 불은 인간에게 지극한 괴로움이었다. 인간의 두뇌에 폭발이 일어나게 한 괴로움이었다. 손에 쥐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그 불이 오늘날까지 인간을 태우고 있다. 더, 더, 더, 라고 인간은 신음한다. 인간이 인간다워질수록 괴로움이 아니었던 것들이 새록새록 괴로움으로 뒤바뀌었다.

그리고 이제 인간은 괴로움을 갈구하기에 이르렀다. 그 어떤 것에도 괴로움을 느끼며, 괴롭지 않으면 괴로움을 발명해내서라도 괴로움을 느끼는 존재가 되었다. 괴로움 때문에 서로를 죽였고, 죽이고 나서는 더 큰 괴로움에 시달렸다. 피 흘리지 않고도 피 흐르는 괴로움을 맛보았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 못할 괴로움이었다. 처음으로 괴로움을 녹이려는 시도가 생겼다. 괴로움을 끌어안는 몸짓이 그대로 춤이 되었고, 그 소리는 상대의 가슴에 첫 노래로 스몄다. 괴로움은 고독이었다. 고독했으므로 노래가 흘러나왔고 그 노래가 존재를 빈틈없이 싸고돌았다.

너도 고독했구나. 그래서 흑연에 녹아들었어. 흑연에서 모든 게 시작하지. 다이아몬드까지도.

퍼뜩, 수연에게 생각이 미쳤다. 수연은 진화에 따른 부작용, 악순환을 알았던 거다. 그래서 여기서 오래도록 잠잘 수 있었던 거다. 진화를 포기하고 바다로 돌아간 돌고래처럼. 나는 어떡하지? 그는 문득 생각을 멈추었다. 오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들려오지 않았다. 자신을 압박하는 이전의 소리만이 계속되었다. 어떤 표현도 그 소리에는 못 미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자기 안에서 울려오는 소리임을 깨달았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자신을 파괴할 순 없다는 것을 그는 이전에도 알았고, 지금도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긋이 들었다. 잠든 짐승의 숨결 같던 어둠은 더 이상 무섭게 고동치지 않았다.

문득,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느껴졌다. 그는 고개 들어 응시하였다. 시커먼 광택이 검은 불길처럼 서로 비추이며 가파르게 치솟아 있었다.

너는 계단을 오르지 못해. 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힘이 너에게도 똑같이 작용하고 있어.

수연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기억이 났다. 天층에 天층은 없었다. 天층은 무지개와도 같이 빈 곳이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무지개를 향하여 직접 다가가 그것이 비었음을, 그것도 아름답게 비어있음을 체감하는 순간이 없다면 이 삶이 무슨 소용일까. 그는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되새겼다. 그는 그녀를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주기 위해 여기로 왔다. 그 약속이 그를 다시 움직이게 했고, 그는 뒤꿈치부터 천천히 몸을 끄집어낸 다음 입을 벌렸다.

이신추!, 하고 목 놓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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