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추와 그녀 뒤로는 놀랍게도 대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조종사의 가늘게 뜬 눈이 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조종사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그를 마주보았다. 그는 다른 대원들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머쓱해하는 얼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주 형편없는 대원들이지. 문제가 일어나고서야 자기 본분을 기억해내니 말이야.
조종사가 자조하듯 말했다.
하지만 입을 다문 다음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또 우리 대원들이지.
이신추가 자신만만하게 덧붙였다.
어떻게 돌아왔어요? 자유낙하 중일 거라던데?
그 꼬마 생각 속에 우리는 갇혀있지 않으니까.
대원들 사이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 목소리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자기들이 어떻게 올라왔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바닥 밑에는 바닥을 모르는 바닥이 있었다고 우선, 조종사가 운을 뗐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겠어? 미리 생각하는 자, 프로메테우스의 후예 아냐? 이런 상황에 충분히 대비가 되어 있다고.
한 대원이 자신의 우주복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우주복은 불확실한 우주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고안된 것이라고 했다. 중력과 관련하여 특수한 기능 하나를 더한 이른바 자체구명복인 셈이었는데 예측과는 달리 그들이 경험한 흑주는 꽉 붙잡는 우주였다. 시간이 지독한 변비에 걸린 듯 움직일 생각을 안 하였고, 그들은 시간의 압력에 피가 안 통하게 눌려 있었다고 말했다.
퍼렇게 된 우리들 사이에서 이분의 발진은 독보적이었지.
이신추가 웃으면서 그녀를 가리켜 보이더니 진지하게 이어 말했다.
오로지 이분 언니의 연필만 살금살금 유유히 나아갔어. 그 연필 덕분에 우리가 여기에 있지.
하필이면 말이지.
먼젓번 대원이 삐딱하게 응수했다. 그리고 이 혐오스런 불시착의 원인이 흑주의 괴물 같은 악력에 있었다며 핏대를 올렸다. 그 악력 때문에 몸뚱이가 끝도 없이 검음 속으로 먹혀들어가는 우주가 바로 이 흑주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계산은 아무 소용없었지. 관측만으론 흑주의 질감을 알아낼 수가 없었거든. 직접 닿고서야 흑주가 끈적한 우주라는 걸 알게 됐어. 흑주는 우리가 그곳에 내던져지기 무섭게 끈적하게 달라붙어서는 꼼짝할 수 없이 우리를 묶어놓았지. 붙잡는 힘이 엄청났어. 도무지 놓아주질 않는 거야. 그렇다고 이 우주복이 무용지물이 된 것은 아니야. 예상치도 못한 장소에서 쓸모가 있었거든. 말했다시피, 바닥째 떨어져 내리고 보니 바닥없는 바닥이 나왔어. 우리는 각자 외따로 정신없이 떨어져 내리다가 번쩍 떠올랐어. 무중력 상태에 이르렀거든. 이 우주복은 무중력 상태에서 부유 기능이 켜지도록 설계되었어. 우리는 둥둥 뜬 채로 한때 우리가 발 딛고 있었던 바닥이 회색빛 색채로, 점으로, 그러다 끝내는 보이지 않게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였어.
한창 이야기를 풀어내던 대원은 이 대목에 이르러 목소리가 잠긴 듯했다. 약간 벌어진 채로인 그 입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울려 보내지 않았다. 대원은 느닷없이 시간을 잃은 듯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깜빡임을 잊은 두 눈은 밑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원이 보고 있는 곳은 지금의 바닥이 아니었다. 조금 전에 침몰한, 아니 지금도 침몰 중일 그 바닥이었다. 대원들 전부가 그랬다. 할 말을 잃고서 얼마간 굳어 있었다. 잃어버린 바닥을 애도하듯 고개 숙인 자세로.
못다 한 말들은 잠시 후 여럿의 입을 통해 번갈아 흘러나왔다. 그들은 유영하듯 헤엄쳐 올라왔다고 했다. 그리하여 추락당한 위치의 바닥판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대원들은 말없이 각자 알아서 움직였다. 저마다 손바닥으로 판을 짚어가며 강강술래 하듯 빙그르르 돌면서 떠다녔다. 우연히 손 하나가 버튼센서를 건드렸던 모양이었다. 휘영청 바닥판이 열리더라고 했다.
고로 우리는 자유낙하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게 증명된 셈이지.
조종사가 끼어들어 매듭짓듯 말했다.
그러니까 바닥의 버튼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구나.
이신추가 불쑥 짚고 넘어갔다. 그는 이신추의 관점에 더욱 동감했다. 조종사의 판단을 넘어서 확신을 가지고 결론 내렸다. 이걸로 마텔이 공용이라는 게 증명된 셈이라고. 이기적인 한 소녀만을 위한 방공호가 아니었다. 수연의 말마따나 마텔의 관점에서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든 생활의 형태가, 심지어 죽음까지도 마텔을 계속해서 굴러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누군가의 괴로움을 덜 수 있는 한. 그것이 단 한 사람의 괴로움이라 할지라도.
그는 한때 아버지, 어머니, 소년이 둘러앉던 식탁 위의 하얀 갓등을 기억했다. 알전구를 희고 둥글넓적한 플라스틱 갓으로 에워싼 그 등은 천장에 연결된 전깃줄에 매달려 서로의 맞은편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 어머니 사이의 공중에 낮게 떠 있었는데, 두 분의 눈과 너무 거리가 가까워 켜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건너편 싱크대 쪽 천장에 붙박인 기다란 주방등만 켜곤 하였다. 아버지, 어머니의 측면에 앉아 밥을 먹던 소년은 그 거추장스런 갓등이 화제에 올랐을 때 어째서 떼 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아버지가 말하였다. 이 갓등이 없다면 자신은 눈이 부셔 식사를 하기 어려울 거라고.
소년은 그제야 아버지가 앉은 자리가 주방등을 마주보는 쪽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와 소년은 주방등을 등지거나 비스듬히 향하는 위치여서 그 빛이 조금도 자극적으로 와 닿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 폭이 넓은 갓등이 없다면 정면으로 빛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이었다. 소년은 순간 무용지물로만 여겨왔던 꺼진 갓등이 새롭게 바라보였다. 가만히 제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고맙고 대단한 존재로 말이다. 무언가의 쓸모와 가치는 정해진 게 아니었다. 소년은 자신의 기준이나 관점으로 보는 세상이 얼마나 좁고 불충분한지 절감했다. 순간 식탁 주변이 놀랍도록 환하게 툭 트여있음을 발견했다. 무엇도 틀리거나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자체로 올바르다는 진실이 한순간 펼쳐진 기분이었다.
그는 이곳 주민들에게 수연이 바로 그러한 꺼진 갓등이자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들을 상처 입힐 대낮의 햇빛을 가려주고 가차 없이 내리꽂는 빛살들에 시달리지 않도록 폭 넓은 그늘을 드리워준 존재. 수연은 이들에게 품 너른 능수버들과도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이제 막 빛을 본 상태였고 어쩌면 그 빛에 눈이 먼 것일까, 자꾸만 더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는 움직여야 했다. 그 행위가 옳은지 틀린지, 성공할지 실패할지, 따져 물을 것 없이.
다시 어두운 굴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황소 뱃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래도 여럿의 숨소리가 섞여드니 혼자일 때보단 견딜 만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함께 숨 쉬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토록 힘이 될 줄 몰랐다. 집 떠나고 처음 느껴보는 소속감이었다. 자신이 대단히 커진 느낌이었다. 이러한 심파(心波)의 영향일까.
문득 자신이 그린 검음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검음의 한 귀퉁이에 가볍게 스치우듯 붓질해놓았던 흰색. 그것은 무심코 그려진 것이었다. 환영처럼, 연기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지려는 듯 보이던 탑. 그 탑의 꼭대기에 노랗게 불이 들어왔다. 머리를 박박 밀은 동자가 글씨를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제 팔 길이만 한 붓을 잡고 화선지에 정성껏 획을 긋고 있었다. 흰 저고리의 오른 소매를 걷어붙이고 두 무릎을 꿇은 자세였다. 그렇게 온몸으로 쓰고 있는 획을 따라 읽었다. 읽다보니 그것은 글자의 획이 아니었다. 획들이 모여 ‘*’이 되었고, ‘*’과 ‘*’ 사이에 이상한 영문이 씌어졌다. 또한 힘차게 내그은 ‘-’ 앞에는 Get을 써 붙이는가 하면, Return을 써넣기도 했다…….
불현듯 그의 손이 주머니로 들어갔다. 끄집어낸 몽돌을 길쭉이 눕혔다. 양손을 나란히 놓고 몽돌의 표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모양이 쾌속으로 바뀌어갔다. 타닥타닥 발굽 소리를 내며 옴폭 꺼졌다 퉁겨 올라오고, 손대지 않은 위쪽은 수직으로 밀려올라가 반듯이 펼쳐졌다. 동자의 글귀가 또박또박 거기 입력되고 있었다.
그는 어느새 노트북 블루 스크린 안에 관리자 권한으로 들어와 있었다. 코드가 한 줄 생성됐고, 껌뻑이는 커서가 다음 줄에 나타났다. 맥박처럼 뛰고 있는 커서를 보며 마지막으로 탁, 엔터를 쳤다. 바람이 느껴졌다. 수면기 내부를 에워쌌던 암벽이 사방에서 접혀 들어가고 있었다. 돌계단은 경사를 허물고 일제히 첫 계단 높이로 박히었다. 수면기의 시스템이 소녀가 깨기 이전 상태로 돌아간 거였다. 본래대로 돌아온 몽돌이 하얗게 가로눕혀져 있었다. 그는 몽돌을 쥐고 계단이었던 바닥에서 일어섰다.
어둠 속에서 둥그런 물체가 번쩍, 튀었다. 그 물체는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부드럽게 바람과 왈츠 추며 전에 없던 활력으로 저 밑서부터 빨아올린 연기와 냄새들을 거듭거듭 날려 보내고 있었다. 무동력환풍기였다.
밖이었다. 그는 이상하게 아리었다.그토록 꿈꾸던 밖이었는데, 그는 이 순간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탁 트인 밤하늘이 바로 눈앞에 와 있는데 눈을 들어 그 반짝이는 가능성을 포착하려 들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와 모든 것을 뿌옇게 흐려놓고만 있었다. 보이지 않도록 부러 그러는 듯이. 다만, 머리 위로 낮게 떠 있는 볼록한 형체만은 또렷했다. 배부른 물고기를 닮은 비행체였다. 고래 몸집만 했다. 선체는 미드나잇블루, 밤과 잘 구분이 안 가는 색조였고, 즐겁게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긴 휘파람 소리도 섞였다. 돌아가는 환풍기들 사이로 걸어 나가는 이신추의 뒷모습이 보였다. 비행선 앞에 멈춘 이신추는 잠시 호주머니를 뒤적이다 동전만 한 리모컨을 꺼내 엄지로 한 번 눌렀다. 신속하게 해치가 열리며 둘둘 은빛 계단이 풀려 내려왔다. 대원들은 긴파람호, 긴파람호, 외치며 간간이 휘파람을 불고, 웃고 손뼉 치며 떠들썩하게 계단을 올랐다. 오직 그녀만이 다른 대원들이 다 타고 난 뒤에도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그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였지만 눈을 들어 그를 보진 않았다. 그가 소리쳤다.
나를 기억해 주시겠죠?
그녀의 눈길이 비로소 그를 향하였다. 그의 발진 난 뺨으로 희고 투명한 얼룩이 덮였다. 그녀는 너무나 안쓰러워하는 눈길이었다. 말없이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몽돌을 쥐고 있던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건 네 거야. 우리가 영향을 줄 순 있지만, 네가 아니면 작동하지 않아.
아직도 다른 곳이 있다고 믿어?
계단 중간쯤에 서서 이신추가 물었다. 그는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피식 웃고는 반문했다.
당신들이 여기 와있는 걸 보면 당신들도 그렇게 믿는 거 아닌가요?
이신추가 싱긋이 미소 지었다.
처음엔 그랬지. 하지만 다른 곳이 있다고 믿었을 땐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어. 우린 같은 곳을 찾아 온 거야. 같은 곳을 찾으려 했을 때 도달한 곳이 여기야.
이신추는 이렇게 말하며 그녀를 곁눈질했다. 그녀가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우리랑 같이 갈래?
그녀가 덥석 말해왔다. 그는 잔뜩 부은 얼굴을 하고서 다가왔다. 그녀에게 자신의 이마를 맞대었다. 눈물이 넘쳐흘렀다. 그녀는 손을 들어 그의 젖은 뺨을 쓸어주었다. 울긋불긋한 발진들이 손에 닿았다. 핏기가 없어 거의 초록빛으로 보이는 두 뺨을 온통 차지한 발진은 자신의 얼굴에 난 똑같은 것을 상기시켰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어. 그녀는 연둣빛 봉오리를 아프게 물들여가는 짙고 가녀린, 수줍도록 강렬한 꽃빛을 떠올리며 조금 미소 지었다. 그는 이마를 떼지 않고 아주 가까이서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눈동자에 그를 담으며 미풍처럼 속삭여왔다.
나는 널 기억할 거야. 끝없이, 널, 기억할 거야.
그는 그녀의 목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눈 감았다. 쥐고 있던 몽돌을 던졌다. 환풍기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