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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타멀스 Oct 17. 2023

알고 보니

해가 서쪽에서 떴다. 동쪽은

천년 묵은 나무에 가리어 해가 뜰

틈이 없었고, 하루 종일 우중충한 연막을

헤치며 남북으로 오락가락하다가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서쪽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해는 그곳이 서쪽인 줄도 몰랐다

아끼고 모아 둔 빛을 조금이라도 비출

구멍이 있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한 번만이라도 해다운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해는 서쪽이 편안했고 제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에 마침내 모든 빛을 쏟아내었다

   

새벽잠을 이겨 내고 먼 길 걸어와

기어코 영광의 빛을 보게 된 해는, 그러나

휑한 눈을 껌벅이며 잠시 울먹인 듯하더니

노을을 붉게 뿌려 놓고 이내 지고 말았다

서쪽에서 뜬 해가 서쪽에서 뜬 것은

알고 보니 노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눈이 부시다고 석양빛을 등진 이는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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