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어땠어?"라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자
2024년 3월 말 독일로 떠났고, 2025년 2월 말 한국에 돌아왔다. 대학교 4학년이었던 스물세 살에 떠난 1년간의 교환학생이었다.
독일에서 살다 보니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늘 가방에 돗자리를 가지고 다니다가 아무 데서나 펴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산책길에 혼자 벌러덩 눕는 것도 어렵지 않다. 수채화 물감을 가지고 다니다가 강물에 붓을 담가 그림 그리기. 거창한 준비물이나 마음가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연필과 작은 종이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스케치. 가끔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기. 모두가 가는 관광지 대신 나만의 장소를 찾아 동네를 걸었다. 유럽의 여행지에서 부담 없이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가까운 곳에서 온 교환학생의 특권이었다. 카우치 서핑으로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잠을 자고, 가장 저렴한 호스텔의 혼성 도미토리를 이용했다. 기갈나는 서비스나 안전한 위생보다는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경험을 만나고 싶었다. 누드 사우나도 가고 누드 스케치도 했다. 한국에서 궁금하고 낯설었던 것들이 아무렇지 않아 졌다. 본 전공이었던 사회학을 뒤로하고 미술 학생이 된 것처럼, 독일 학교에서는 도자기부터 수채화, 아크릴화, 실크 스크린까지 미술 수업만 골라 들었다. 일주일자리 미술 여행에 참가하기도 하고, 장애활동보조사가 되어 일주일간 독일의 여름휴가를 경험하기도 했다. 가장 마음을 다해 성실했던 건 친구를 사귀는 일이었다. 그냥 겉치레 같은 친구 말고 진짜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독일 친구들을 초대해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들의 고향에 초대를 받고, 그러다 형제의 결혼식에도 갔다. 겁도 많고 낯도 많이 가리는 내가 한 번 두 번 용기내고 잘 모르는 곳으로 떠나다 보니, 일 년 후 나는 용감하고 당찬 사람이라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아 졌다. 인생은 하고 싶은 걸 진짜로 할 수 있다는 걸 언제 깨닫는가로 나뉘지 않을까? 요즈음 드는 생각이다.
한국에 돌아오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매일 아침 5시 40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깨기 전에 혼자 일어나 식탁으로 갔고 전등과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적었다. 독일에서 돌아온 나에게 가족과 친구들은 늘 "독일 어땠어?"라고 물었고, 일 년의 세월을 다 말하지 못해 "정말 좋았어. 공기도 좋고 과일도 맛있었어."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마지막 학기를 다니며 일상이 흘러갔지만 지난 1년의 기억을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그것들이 너무 값졌다.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고 지나간 순간들을 멈춰두고 그곳에 당신들을 초대하고 싶다. 이 글이 아니고서는 누구에게도 "독일 어땠어?"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기분이 든다.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