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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Jun 27. 2024

천 리 '올레'길도 한 걸음부터

4코스, 아이들과 처음 걷기 시작한 길

대망의 그 날이 밝았다. 아이들과 올레길을 처음 걷기로 한 날!


3월의 어느 금요일이었다. 그 날은 아이들이 제주에서 다니고 있는 학교의 첫 번째 자율 휴업일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평일에 학교를 안 간다는 사실에 몹시 들떠 있었다.


그 날 오전에는 남편과 나의 두 번째 승마 강습이 예정돼 있기도 했다. 오전에 일정이 있다 보니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놀러 가기에도 애매한 날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이 날 올레길을 한 번 걸어 보기로 했다.


"첫 올레길로 우리 마을을 지나는 4코스 걸어 보는 거 어때?"


"4코스? 지도 보니까 진짜 우리 집 뒤쪽 길을 지나네?"


"응! 너희 학교 가는 길목이 올레길 구간이더라~ 몰랐지?"


"진짜 재밌겠다 엄마! 얼른 걸으러 가자!"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학교 안 가는 평일에 올레길을 걷게 하려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정작 아이들은 올레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신난 눈치였다.


부디 오늘 올레길을 다 걷고 나서도 딸들 입에서 재밌다는 말이 나오기를 바라며, 우리 가족은 올레길 4코스가 시작되는 표선 해수욕장 근처로 향했다.


올레 4코스의 시작, 아이들과 자주 찾는 '표선 해수욕장' 근처에 위치한 스탬프 찍는 곳.




표선은 우리 가족이 일년 동안 살게 된 지역이다.


27개나 되는 올레 코스 중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나는 4코스를 가장 먼저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우리 마을에 대한 일종의 의리랄까? ^^*


표선 해수욕장 바로 옆 도로 한 켠에 파란색 말 모양의 스탬프 찍는 장소가 보였다. 아이들은 준비해 온 올레 패스포트를 펼치고, 4코스 시작을 알리는 스탬프를 '쾅' 찍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찍은 건 4코스 시작이 아닌 3코스 도착을 알리는 스탬프였다는 걸, 그 때는 몰랐다.


스탬프 박스에 스탬프가 2개나 들어 있을 줄이야! 그저 아이들에게 스탬프 찍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려고 우리 패스포트까지 다 넘겨주며 스탬프 찍으라고만 하고, 확인도 안 한 게 문제였다.


4코스 페이지에 떡하니 잘못 찍힌 3코스 도착 스탬프를 나중에 보고는 약간 속이 상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느낌이 들었달까...


★올레 스탬프 찍는 곳에 가면 앞코스 도착점 스탬프와 뒷코스 시작점 스탬프 2개가 나란히 있어요! 저희처럼 헷갈리지 마시고 구분해서 잘 찍으시길 바라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했냐고? 어차피 표선 해수욕장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다음 번에 그 곳을 지나갈 때 4코스 시작 스탬프를 추가로 찍었지 뭐.


그 덕분에 다음 올레길부터는 우리가 걷고 있는 코스에 해당하는 스탬프인지 잘 확인하며 도장을 찍는 좋은 습관이 생겼으니, 오히려 감사한 경험이었던 걸로!


초보 올레꾼 티가 팍팍 나는, 실수로 3코스 스탬프까지 찍은 4코스 페이지 :)




엄마! 어디로 가야 돼?


딸들은 엄마인 나보다 훨씬 걸음이 빠른 편이다. 한라산에 오를 때도 나를 제치고 앞서 걸었으니 말 다 했지. 그런데 올레길을 걷는 도중에, 자꾸 멈춰 서서 나를 돌아 보며 길을 묻는 것이었다.


당장, 아이들에게 올레길 표식에 대해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올레길을 상징하는 색은 파란색주황색이야. 아빠의 올레 패스포트처럼 제주 바다를 나타내서 바당색, 엄마랑 너희들 올레 패스포트처럼 제주 귤을 나타내서 귤색이라고도 하지.


우리는 제주도를 시계 정방향으로 한 바퀴 돌 계획이니까, 화살표 두 개가 동시에 나타나면 정방향을 나타내는 바당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면 돼. 역방향으로 갈 때는 귤색 화살표를 따라 가면 되겠지?


갈림길이 나타날 때를 제외하고는 보통 나뭇가지나 기둥에 바당색귤색이 함께 묶여 있는 리본을 찾으면 돼. 그리고 다음 올레 표식이 보일 때까지는 쭉 직진해서 걸으면 된단다.


가끔 말 모양 표식이 보이는데, 걔 이름은 '간세'야. 간세는 제주 올레를 상징하는 조랑말 이름이래. 정방향으로 걷고 있다면 간세 머리가 향한 쪽으로 계속 걸으면 돼. 어렵지 않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쌩-하니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올레길 표식을 만날 때마다 기뻐하며 크게 소리를 질렀고, 올레길을 둘이서도 척척 잘 찾아냈으며, 더는 나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는 앞서 걷고 있는 아이들의 귀여운 뒷통수(?)가 올레길 표식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 뒷통수를 놓치지 않고 따라 가기 위해, 내 발걸음도 부지런히 옮겨야 했음은 물론이다.


화살표 / 리본 / 간세 / 올레길 안내 표식을 발견할 때마다 보물을 찾은 것 마냥 즐거워 하던 아이들 :)




남편 또한 아이들처럼 올레길을 걷는 건 처음이었는데, 나는 남편의 반응이 사뭇 궁금했다.


우리가 이사 오고 나서 제일 많이 가던 표선 해수욕장 근처였는데, 올레길로 걸으니 새삼 다른 풍경이 펼쳐져 나조차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남편 역시 나만큼이나 올레길의 매력에 흠뻑 빠진 듯 했다.


올레길을 걷는 내내 "와, 여기에 이런 길도 있었네? 올레길 안 걸었으면 절대 몰랐겠다!" 이렇게 연신 감탄을 내뱉었으니 말이다.


자주 가던 곳인데도, 올레길로 걸으면 다른 시선으로 보이는 신기한 마법^^




엄마, 여기 돌길이니까 걸을 때 조심해!


한참 앞서 걷던 아이들이 갑자기 멈춰 선 채 나를 돌아 보며 큰 소리로 경고 메시지를 전하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돌길'이 등장할 때마다 그랬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거실에서 걷다가 넘어져서 발가락이 골절 돼 큰 수술을 받았던 경험이 있고! 제주로 이사 오기 직전에도 집 앞 빙판길에서 넘어지며 발가락이 또 골절 돼 깁스를 해봤던 사람이다.


발가락이 몹시 불안정한, 평지에서도 균형을 못 잡고 자주 삐끗하는 사람이 본인들의 엄마라는 걸 잘 아는 딸들! 울퉁불퉁한 길이 나오면 제일 먼저 나를 걱정해 주는 고마운 아이들이다.


돌길 위에서 나는 외줄 타기를 하듯 위태롭게 걸음을 내딛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돌길을 아무렇지 않게 뛰어 가는데, 나는 돌 하나를 밟을 때마다 균형을 못 잡고 몹시 흔들거릴 뿐이었다.


돌길을 다 건너 간 딸들은 엄마인 내가 잘 오는지 걱정하며,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린 나를 한없이 기다려주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으려 필사의 노력을 하며 돌길을 건너는 내내, 등줄기로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엄마, 아래만 보면서 와요! 옳지 잘한다!"


"엄마, 힘내! 조금만 더 걸으면 돼~"


발을 자주 다치는 나에겐 너무 무서운 돌길 ㅠㅠ 그런 엄마를 기다려주는 고마운 딸들...♡




아이들 응원에 힘입어 겨우겨우 돌길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하...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산 너머 산이라고 했던가. 올레길은 그야말로 '돌길' 너머 '돌길'이었다. 4코스를 걷는 동안 심심치 않게 돌길이 등장했고, 그 때마다 나는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힘겹게 돌길을 건너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운동화 말고 트레킹화 신고 올 걸..ㅠㅠ 늦은 후회를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다음 올레길 걷기부터는 꼭 '트레킹화'를 신자고 속으로 다짐할 뿐!


돌길이 많아도 너무 많은 제주 올레길ㅠㅠ 발가락이 잘 부러지는 나에겐 트레킹화가 필수임을 깨닫던 순간!




아이들은 나와는 달리, 울퉁불퉁한 돌길이 제일 재밌다고 했다.


옆에 제대로 된 올레길을 두고도, 계속 돌길로 내려가서 걸으면 안 되냐고 묻던 아이들! 돌길 위를 날다람쥐처럼 폴짝폴짝 뛰어서 건너는 아이들이 그저 대단해 보이고 부러울 따름이었다.


한편으론 돌길이 나타나면 막무가내로 달려가는 아이들이 걱정돼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천천히 가! 돌길 위에서 넘어지면 크게 다쳐!"


혹시라도 아이들이 넘어질까 걱정돼 힘껏 소리를 질러도, 아이들은 들은 체 만 체 하며 달려 나갈 뿐이었다. 하긴, 넘어지는 건 정작 소리치고 있는 엄마밖에 없는데 씨알도 안 먹힐만 하지!


"돌길이 왜 좋아? 엄마는 무섭기만 한데.."


"그냥 재밌어! 스릴 넘치잖아!"


"평평한 길은 시시해~ 돌길 또 안 나오나?"


아이들은 올레길을 걸으며 가장 재미있는 길로 꾸준히 '돌길'을 꼽았다.


올레길에서도 특히 '돌길'이 가장 좋다는 아이들^^




두 번째로 아이들이 선호하는 길은 흙길, 혹은 숲길이었다.


마침 그 곳이 그늘이면 더욱 반가워 했다. 흙길 위에도 종종 돌이 박혀 있으니 그 돌을 밟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었다.


그 다음으로 걷기 좋은 길은 어느 정도 울퉁불퉁한 '흙길' 혹은 '숲길'이라던 아이들 :)




아이들이 제일 힘들어 했던 길은 뜨거운 '아스팔트' 길이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아름다운 바다를 구경할 수 있어 멋진 해안 도로였는데! 실제로 그 길을 걸으려니 3월인데도 매우 운 느낌이 확 들었다. 출발할 때부터 입고 있던 바람막이 점퍼를 바로 벗을 정도로.


아이들은 아스팔트 길 위를 걸어야 할 때면 하염없이 속도가 느려졌다. 가장 뒤쳐져 걷던 나는 오히려 뜨거운 아스팔트 길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 걸음을 재촉하게 되었고.


아이들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나는 앞서 걸으며 승부욕을 자극할 만한 대사들을 골라 말하고는 했다.


"와, 이제 엄마가 1등이네? 모처럼 1등으로 걸으니까 기분 좋~다!"


아이들은 내가 1등 하는 꼴은 못 보겠던지,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어서라도 나를 앞질러 가고는 했다. 내 뒤에서 걷던 아이들이 다시 내 앞에서 걷게 되어야지만, 나는 마음이 놓이는 '엄마' 사람이었다.


엄마란 존재는, 뒤에서 묵묵히 아이들이 걷고 있는 모습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가장 걷기 힘들어 했던, 땡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길...




걷다가 지칠 때쯤 등장하던 의자나 벤치는 또 왜 그렇게 반갑던지!


아이들은 앉아 쉴만한 곳만 보이면 엉덩이를 붙이기 바빴다. 챙겨온 물과 간식도 먹고, 아픈 다리를 잠시 쉬게 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시 출발하자"고 하면, 꿈쩍도 않는 아이들이 문제였다..ㅋㅋㅋㅋㅋ


가뜩이나 낮 12시에 출발한 상태였기에, 이렇게 느적느적 걷다가는 4코스 도착 지점에 해지기 전까지 도착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올레를 상징하는 '간세'가 느릿느릿한 게으름뱅이라는 뜻의 제주어 '간세다리'에서 따 왔다는데! 우리 아이들 모습이 딱 '간세'를 닮아 있었다.


"느릿느릿한 게으름뱅이처럼 걷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제 그만 출발하자고 얘들아!!!"

 

의자만 나오면 엉덩이를 붙이고, 드러 눕습니다...ㅋㅋㅋㅋㅋ 일단 쉬고 봐야죠^^




아이들을 다시 걷게 하려면 어른들이 먼저 걷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 먼저 갈게! 여기서 푹 쉬어~"


"엄마 아빠는 빨리 도착해서 둘이서만 맛있는 거 먹어야겠다!"


여기서 포인트는 걱정하는 눈빛으로 뒤돌아 보면 절대 안 된다는 것!!! 잠자코 남편과 내가 걷고 있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 소리가 바짝 가까이서 들려 오고는 했다.


"엄마! 아빠! 기다려~ 같이 가~~~"


"나도 얼른 가서 맛있는 거 먹을 거야!"




큰 아이는 '선천성 고관절 탈구'라는 병으로 왼쪽 다리에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 가족 중에서 걷기에 가장 취약한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큰 아이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뛰어 넘어 한라산 정상까지 두 번이나 다녀오는 저력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올레길 걷는 것도 수월하게 잘 할 거라 내심 기대했는데! 큰 아이는 올레길을 걷는 내내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우리 딸~ 한라산 정상까지 다녀와 놓고, 올레길은 왜 이렇게 힘들어 해?"


"산에 올라가는 건 재미 있잖아! 근데 올레길은 평지만 나와서 별로야~"


"아구... 산에 오르는 거랑 올레길 걷는 건 다르구나? 다음에는 오름 있는 어려운 코스로 갈까?


"응응! 다음엔 꼭 오름 있는 올레길로 가보자 엄마!"


아이는 한라산을 다녀온 뒤로 산에 오르는 재미를 여실히 느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바다를 보며 평탄하게 걷는 올레길은 아이에게 큰 재미를 주지 못했던 모양!


그래도 누구보다 열심히 걷는 아이였다. 고관절 수술 후 오랜 시간을 누워서만 지내야 했고 휠체어 신세도 많이 졌던 아이는, 걷고 달릴 수 있는 모든 순간을 감사히 여길 줄 안다.


아이가 고관절 수술을 받은 지도 어언 3년이 흘렀다. 다리를 절뚝이며 걷던 아이가 이제는 수술 받은 지도 모를 만큼 잘 걷게 된 것도, 더 나아가 올레길을 씩씩하게 함께 걷게 된 것도, 모두 기적 같은 일이다.


나에게 기적을 선물해 준 아이, 니가 걷고 있는 뒷모습만 봐도 엄마는 행복해!


나의 큰 아이, 힘차게 걷는 너의 뒷모습만 보아도 엄마는 가슴이 벅차구나!




올레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우선 나는 '프로 발가락 골절러'이다 보니, 발 아래만 잘 살피며 걷기에도 바빴다. 내 한 몸 넘어지지 않는 게 중요해서, 걷다가 휴대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는다는 건 사치에 가까웠다.


남편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고 싶어도, 남편은 초등학교 2학년생 둘째와 함께 내 시야에서 사라지기 일쑤였다. 나중에 남편이 말해줬는데, 힘들다고 하는 둘째를 어르고 달래서 일부러 뛰게 만들다 보니 많이 앞서  거라고..


중간중간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져도 눈으로만 담기에 급급했고, 나중에는 체력이 급격히 저하 돼서 사진 찍을 기운이 없기도 했다..ㅎㅎㅎ


그래도 내 눈에 남편과 두 딸이 한꺼번에 보이는 순간이 오면, 얼른 멈춰 서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가 되어 주는 세 사람을 한꺼번에 찍을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덕분에 내 사진첩에는 남편과 두 아이가 4코스 올레길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이 가득하다.

 

제주의 아름다운 숲과 바다를, 나의 가장 아름다운 세 사람과 함께 걸었던 순간들 :)




드디어 아이들에게 한계가 찾아 왔다.


아직 중간 스탬프 지점에도 다다르지 못했는데, 아이들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 때가 3시쯤이었는데 이른 점심으로 11시쯤 밥을 먹고 나선 터라 슬슬 배가 고플 시간이기도 했다.


"아빠, 배고파~ 어디 가서 컵라면이라도 먹고 가면 안 돼요?"


"나도 라면 먹고 싶은데! 여기 근처에 편의점 없어요?"


내 뱃속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기에, 진짜 뭘 좀 먹어야 될 것 같았다. 남편은 근처 편의점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 틈에 나는 주위 풍경을 둘러 보았다.


농협은행 제주 수련원 앞, 풍경이 가히 예술이었다! 바다 위로 아름다운 윤슬이 가득해, 그저 눈이 부셨던 곳!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올레길을 걷게 된 덕분에 발견한 이 곳은 훗날, 남편과 내가 종종 찾아가 걷는 산책로가 되었다. 보석 같은 산책로를 알려 준 올레길에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며 :)

 

올레길 4코스, 윤슬이 내린 바다는 더없이 아름다웠답니다...
해먹이 보이자 잠깐 누워서 쉬던 아이들! 남편도 힘든지 잠깐 드러 누우심ㅎㅎ




편의점 대신 우리 집 가서 라면 끓여 먹는 건 어때?


가까운 편의점을 찾던 남편은, 돌연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농협 수련원 앞에 걸린 해먹을 타고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던 중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4시를 향해 있었고, 집 근처에 도착하면 5시쯤이 될 것이었다. 그 쯤이면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을 시간이라 더는 걷지 못할 게 분명했고, 오늘 안에 4코스 완주란 불가능이었다.


그러니 오늘의 올레길 여정은 4코스 중간 스탬프 지점인 '알토산 고팡'까지만 하는 게 맞았다. 어차피 그 근처가 우리 집이니까, 우리 집까지 걷는 걸로 목표를 수정해야 했다.


"아빠가 집에 가자마자 라면 맛있게 끓여 줄게! 중간 스탬프 찍으러 얼른 가자~"


걷기 싫어서 온몸을 베베 꼬던 아이들에게 '라면'이란 미끼를 던지자, 아이들이 마지막 힘을 짜내어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얼른 라면 먹을 생각에 열심히 걸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마침내 중간 스탬프가 있는 '알토산 고팡'에 도착했다. 우리 마을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하필이면 여기서 '문어 라면'을 팔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여기 문어 라면 판다고 하니까 라면이 더 먹고 싶다!!"


"아빠가 집에 먼저 뛰어 가서 라면 물 올리고 있을게! 아빠 스탬프까지 찍고 와~"


"아빠!!!! 라면 맛있게 끓이고 있어~"


"여보, 내 꺼는 매콤하게 부탁해~!!"


남편은 세 여자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라면 물을 올리러 집까지 후다닥 뛰어 갔고, 나와 아이들은 올레 패스포트를 꺼내 4코스 중간 스탬프를 찍었다. 이게 4코스 완주 스탬프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드디어 우리 마을 도착! 중간 스탬프까지 찍으며 오늘의 여정 마무리 :)




아이들과 올레길 한 코스 완주를 하루 안에 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딱 절반만 걸었는데도 다리가 어찌나 후들거리고 아픈던지... 역시 올레길은 쉽지 않다는 걸, 13년만에 다시 걸으며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집까지 가는 동안,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엄마, 올레길이 이렇게 힘든 거였어?"


"엄마가 힘들다고 했잖아! 금방 걸으면 끝나는 길이 아니라니까~"


"아, 이렇게 많이 걸었는데도 4코스를 다 못 끝냈다니!"


"엄마도 아쉽네... 내일이라도 다시 걸어서 완주할까?"


"응, 좋아! 그러자 엄마!"


"다리는 안 아파? 엄마는 다리가 천근만근인데~"


"오늘 푹 자고 나면 금방 안 아플 걸? 그니까 내일 또 걷자 엄마!"


하하하... 엄마는 자고 일어나도 다리가 여전히 아플 같긴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걷자고 하면 걸어야지요^^ 아이들과 함께 걷는 올레길순탄치는 않지만, 혼자 걸을 때보다 훨씬 즐거운 건 사실이었다.


함께 걷는 기쁨을 알게 해준 아이들과, 남편이 끓여준 라면을 후루룩 먹으며 고팠던 배를 단숨에 채웠다. 열심히 걷고 난 뒤 먹는 라면은 얼마나 맛있게요!


내일은 4코스 도착 지점까지 걸어 간 뒤 더 맛있는 걸 먹기로 다짐하며, 아픈 다리를 주무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올레길 4코스, 절반의 걷기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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